최근 국민의힘의 위기는 윤석열 대통령의 위기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참패는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인사와 소통·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평가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짧은 정치 여정에서 이번 위기는 두 번째다. 첫 번째 위기는 대권 도전을 선언한 뒤 그의 언행에서 시작됐다.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일지 모두의 관심이 집중됐던 시기에 ‘주 120시간 근무’ ‘전두환 발언’ ‘개 사과 사진’ 등으로 스스로 논란을 불러들였다.
말하려는 진의가 잘못 전달된 측면이 있기는 했으나 유권자들은 흔들렸다. 오차 범위 밖으로 크게 벌어져 있던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갈수록 좁혀져 최종 결과는 0.73%p 박빙의 차이로 끝났다. 윤 대통령 자신의 표현대로 선거 결과가 혹시라도 뒤집혔다면 지금 나라가 어디쯤 가고 있을지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그래도 윤석열이니까 정권 교체가 가능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당시 드높았던 정권 교체의 열망에 윤 대통령이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첫 번째 위기의 여파는 아직 진행형이다. 좌파 진영은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채 극한 대립의 연장 승부를 이어가고 있다. 그만큼 윤석열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위기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시각이었다. 김 전 구청장은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으로 문재인 정권의 부패와 비리를 폭로한 사람이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감찰 무마 사건’ 등 좌파 정권의 위선적 실체가 그로 인해 드러났다. 이 폭로는 문재인정부의 국민권익위원회도 인정한 ‘공익신고’, 즉 사회 정의를 위한 고발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그의 유죄를 확정했고, 김 전 구청장은 구청장직을 상실했다. 법조인 출신의 윤 대통령은 이런 결말이 극히 부당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그를 사면해 다시 강서구청장으로 복귀하도록 길을 열어 줘야 한다고 판단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17%p의 득표율 차이가 보여 주듯이 많은 유권자들의 판단은 달랐다. 결국 윤 대통령의 관점과 현실 정치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지난 18개월의 재임 기간에 드러난 윤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은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원칙주의·법치주의 세 가지로 좁혀진다. 그는 최고의 인재를 기용해 국정 성과를 내겠다고 나섰다. 역대 정부에서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던 메리토크라시다.
지난 정권에서 사라졌던 상식을 회복하겠다는 포부는 원칙주의로 연결됐다. 그가 ‘이념’을 강조했던 것도 최소한 국가 안보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지향점이 같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원칙주의 노선으로 여겨진다. 법치주의는 그의 오랜 소신이다.
세 가지 중에서 가장 먼저 흔들린 것은 메리토크라시였다. 그가 선택하는 인재의 풀은 좁았고 공직 후보자들의 여러 흠집이 드러났을 때 이를 대하는 태도는 권위적이었다. 원칙주의와 법치주의 면에서도 그가 내세우는 ‘공정과 상식’이 지난 정부처럼 이중적일 때도 적지 않았다.
가치관의 충돌일 수 있다. 핼러윈 참사가 발생했을 때 책임 질 라인에 있는 행정안전부장관과 경찰청장을 바로 경질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최종 조사 결과가 나온 다음 그 책임 소재에 맞게 인사 조치를 하는 게 옳은지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공익신고를 했다가 보복성 문죄를 당한 사람에게 보궐선거의 출마 기회를 줘야 하는지, 어찌 됐든 국민의힘 귀속 사유로 선거가 다시 치러지게 됐으니 후보를 아예 안 내는 게 맞는지 판단이 엇갈릴 수 있다. ‘합리적 사고’와 ‘정서적 사고’의 차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아직까지 그것이 옳든 그르든 국민 정서의 영역에 속해 있다.
더구나 현재로선 그가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좁다. 여소야대의 국회 사정도 그렇고 미디어 환경도 이명박정부 초기의 좌편향 구도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럴수록 정권 초기에 바짝 성과를 내야 한다며 더 조급해질 수 있다. 이번 위기는 그런 중첩된 한계의 산물일지 모른다. 하지만 통치자의 리더십 실패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법이다.
7월 젊은 세대와의 만남에서 윤 대통령이 꺼낸 발언이 떠오른다. 그는 “정부가 국회에 법안을 내놓아도 (여소야대로) 제대로 논의되거나 통과된 게 별로 없다”면서 “그래도 희망을 가져라. 내년부터는 근본적인 대응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청년들에게 말했다. 그의 ‘희망’과 ‘근본적인 대응’이란 내년 총선 승리를 통해 안정적 의석을 확보한 뒤 본격 개혁에 나서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가 최근 ‘민생’을 앞세우고 있지만 일의 선후(先後)를 따진다면 윤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게 먼저다. 스스로 불러들인 위기 속에서 내년 총선 이후 세 번째 위기를 맞아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의 진심으로 여겨지는 ‘청년의 희망’ 실현 여부가 여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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