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민은 4월10일 총선에서 국제적 망신을 당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세계 언론들이 ‘한국 총선에서 범인들이 검사들을 이겼다’며 ‘충격적 뉴스’를 보도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재명과 조국이 총선에서 이긴다면 말이다. 검사 출신의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범법자들에게 패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선거 역사에서 이번처럼 이상한 대결은 없었다. 이건 비극이고 민주주의 위기다. 망해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지금 선거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한 사람은 무기징역을 받을 수도 있는 중범죄 혐의자이고, 또 한 사람은 2심에서 2년 실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갔어야 할 처지다. ‘무기징역’이란 말은 판사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백현동사건 판결문을 보고 언급한 것이다.
사실 그는 이미 작년 9월21일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을 때 구속수감되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유창훈이라는 구속영장 담당 판사 덕에 기적적으로 감방행을 면했다. 2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조국도 법정구속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런 결과는 판사가 금기를 깨고 정치적 고려를 함으로써 벌어진 일이다. 이것 역시 문재인 정권이 상식을 깨고 일개 변두리 지방법원장(김명수)을 일약 대법원장 자리에 앉힐 때부터 우려되었던 불길한 예감들이 적중한 것이다.
유창훈 판사가 이재명 구속영장을 기각할 때는 미처 몰랐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비상식적인 결단(?)은 정치 심리적으로 무죄 효과를 일으켜 이재명 대표를 살렸고 결국은 체포동의안 찬성파들이 ‘공천 학살’을 당하는 참극의 원인(遠因)이 되었다.
무기징역이란 말까지 나오는 피고인과 머지않아 대법원 판결로 구속이 예상되는 사람이 총선판을 누비며 기세를 올리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 원인과 배경은 무엇일까. 많은 국민이 이래도 되나,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실패 때문인가. 여러 얘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현 정권하의 지금이 최소한 문재인 정권 때 보다는 나은 것 같다. 말도 안되는 소득주도 성장론도 폐기되었고 이른바 ‘베네수엘라 행’ 거꾸로 가는 정책들도 전면 수정되었다. 찬밥 신세였던 원전 산업도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한전의 32조 원 적자도 4조 원으로 줄었다는 소식이다. 노조와 의료 등 어려운 개혁에도 착수했다. 민주당 정권에서는 어림없었을 일들이다. 또 문 정권은 400조 원이나 빚을 늘렸고 퍼주기 정책으로 환심을 샀지만 윤석열정부는 다르다. 정치적 손해를 각오하고 ‘고통 감내’ 정책을 취하고 있다.
좌파들은 걸핏하면 먹고 보자는 식이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더니 이번 선거에도 느닷없이 25만 원씩 주자고 들고 나왔다. 예산이 없으면 국채라도 발행하자고 한다. 나중에 삼수갑산을 갈 망정 먹고 보자는 심산인가. 문 정권 때도 2020년 4월 총선에 즈음하여 1인당 30만 원씩 뿌려서 재미를 봤다. 민주당은 180석이라는 대승을 거뒀다. 이번에도 똑같은 미끼를 던졌다. 되면 좋고 안 되면 정부를 공격할 수 있으니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이재명은 13조만 풀면 국민 1인당 25만 원씩 줄 수 있다고 한다. 그의 기본 정책은 이런 현금성 퍼주기다. 기본소득제도 그렇다. 퍼주기로 환심을 사서 권력을 잡고 파탄이 나도 그것은 나중의 일이다. 이미 권력을 누릴 만큼 누린 다음의 일이다. 결국 국민만 봉이 된다. 나중에 수천수만 배의 인플레이션과 경제 파탄·국가부도가 와도 그 고통은 ‘먹튀’한 집권자가 아니라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던 국민이 매일매일의 삶에서 눈물로 감내해야 한다.
중국에 잘 보이기만 하면 된다는 이재명의 ‘셰셰 정책’도 달콤한 유혹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지정학적 입장을 무시한 말이다. 북·중·러와 한·미·일의 역학을 무시하면 결국 공산화로 내몰린다. 국가의 안보와 생존 구조는 현실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는 복잡한 것을 간단한 말로 바꾸어 얼렁뚱땅 표를 낚아채는 데 능한 재주를 갖고 있다. 남을 교묘하게 유인하는 정치적 야바위 행위다.
국힘이 선거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선거 메시지에서 뒤지고 있다. 이재명의 사법리스크와 방탄 정치가 한국 정치를 망쳐 왔지만 ‘야당 심판’을 부각시키지 못했고 조국의 등장에도 ‘범죄자 심판’을 이슈화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동훈에게서는 정직성과 진정성·선의 같은 좋은 덕목들이 보인다. 연일 ‘정권 심판’을 외치는 이재명에게서는 이런 덕목이 안 보인다. 이건 유능·무능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 하여간에 4월10일 ‘한국에서는 범죄자가 검사를 이겼다(The criminal defeated the prosecutor)’ 같은 충격적 외신 보도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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