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통일국가 건설 과정에서 가장 걸출한 인물로 꼽히는 세 사람이 있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이른바 일본사 3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3걸로 이승만·박정희·3김을 든다면 한국에선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있겠으나 일본의 3걸에 대해 일본 사회는 공감대가 폭넓다.
15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까지 130년간 전국(戰國)시대의 종언을 꿈꾼 이 세 인물은 모두 지금의 아이치(愛知)현 출신인데 성격이나 처신에서 선명한 차이를 보이며 저마다의 개성으로 주목받아 왔다. 현대 인물을 논할 때 이들 3인 중 어느 유형에 속하는지 자주 언급된다. 그만큼 일본인들에겐 친숙하고 이해하기 쉬운 분류법이다.
이들 3걸의 리더십 차이는 ‘두견새가 울지 않을 때의 반응’으로 흔히 비교된다. 울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노부나가), 울지 않으면 울게 하겠다(히데요시),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이에야스). 일 처리 방식, 특정 시기에 꼭 필요한 어떤 것이 결핍돼 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의 차이다.
또 천하를 떡에 비유한 것도 인물 비평으로 자주 쓰인다. ‘힘들여 쌀을 찧은 노부나가’ ‘열심히 반죽을 한 히데요시’ ‘힘들이지 않고 떡을 치지한 이에야스’처럼 말이다. 두견새가 울지 않을 때의 반응이 통일 과업에 임한 방식의 차이를 보여 준다면 두 번째 비유는 천하를 손에 넣기까지 들인 수고로움의 비교다. 정작 가장 고생한 인물이 성공의 과실을 누리지 못한 사실을 짚고 있다.
대한민국 3걸은 두 번째 비유에 적합할 것 같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은 노부나가가 힘들여 쌀을 찧었듯 제일 큰 수고로움이 있었다. 임시정부 시절 이래 오랜 망명생활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학업도 한인사회 건설도 독립운동의 일환이었다. 일본 패망 후 소련의 일부가 될 뻔한 한반도에 주권 국가를 세웠고 6·25전쟁을 거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냈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 낸 국가안보의 보장은 경제 건설의 기반이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히데요시가 힘들게 땀 흘리며 반죽을 하였듯 건국대통령의 뒤를 이어 물질적 토대를 마련했다. 3김 중 두 김 대통령은 산업화의 과실 위에서 민주화를 말할 수 있었으니 힘들이지 않고 떡을 차지한 셈 아닐까. 이들의 공헌을 폄하할 생각은 없으나 건국과 부국 대통령의 분투가 없었다면 애당초 불가능했을 일이다.
일본 3걸의 권력 탄생 배경을 좀 더 자세히 보자. 먼저 오다 노부나가는 전국 통일을 시작한 선두주자다. 아버지 노부히데가 집안 전체에 대한 교통정리 없이 세상을 뜨자 후계자 자리를 두고 동생 노부유키와 대립했다. 결국 형 노부나가는 부하에게 명을 내려 친동생을 무참히 살해한다.
성격이 포악한 노부나가는 파죽지세로 무로마치 막부를 끝장 냈다. 그의 전투 성과는 발빠르게 도입한 신무기 덕분이다. 조총을 처음으로 전투에 실전 배치시켜 연전연승했다. 그러나 통일 목전에서 노부나가는 그 과격하고 잔인한 성깔에 떨던 부하 아케치 미츠히데의 쿠데타로 비명횡사했다.
노부나가 암살 소식을 듣고 달려 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주군을 시해한 미츠히데를 그 자리에서 참수한다. 노부나가에겐 번듯한 두 아들이 있었으나 노부나가의 심복에 불과하던 히데요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노부나가의 두 아들 중 한 명은 참혹하게 죽이고 고개를 숙인 한 명은 부하로 삼았다.
노부나가의 성취에 올라타 마지막 통일의 대업을 이룬 히데요시였으나 말년에 과욕을 부려 또 다른 살육을 불렀다. 늦게까지 아들을 못 얻자 여동생의 아들 히데츠구를 양자로 들여 후계자로 삼았는데 얼마 후 첩 요도기미가 히데요리를 낳았다. 히데요시는 친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자 히데츠구를 자결하게 하고 일가를 몰살시킨다.
임진왜란(정유재란) 중 히데요시가 죽음을 앞두고 철군을 지시했다. 그리고 병석에서 충신들을 불러 모아 어린 히데요리를 향한 충성 서약을 받았다. 그중 가장 거물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이에야스는 히데요리를 대신해 섭정회의 수반이 된다.
히데요시 사후 히데요시의 충신 이시다가 도전하면서 권력의 명운을 가른 세키가하라 전투·오사카 성 전투 둘 다 이에야스의 승리로 끝났고, 히데요시 세력은 측실 요도기미 모자가 자결을 강요받는 것으로 정리된다. 일본 열도의 패권은 ‘서두르지 말 것’을 강조했던 이에야스 손에 들어갔다. 두견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 자의 승리인 셈이다.
이로써 700년 이어진 무사 정권 및 전쟁의 시대가 끝나고 그 뒤를 이은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의 기반이 차근차근 마련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집안에서 세습 쇼군(將軍)을 배출하면서 정치적 안정이 이뤄져 무사들은 사실상 문인 관료화한다. 아울러 주자학 연구와 상공업이 융성함으로써 근대 일본의 성공 가도가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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