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 혐의에 대해 9월20일 법정 최고형인 징역 2년을 구형한 데 이어 30일 위증 혐의에 대해서도 양형 기준상 최고형인 징역 3년을 구형했다.
형사재판에서 법원은 검사의 기소가 없으면 재판할 수 없고, 검사가 기소한 사건에 한하여 재판을 해야 한다. 이를 불고불리(不告不理) 원칙이라고 한다. 증거 조사와 피고인 신문이 종료되면 검사와 피고인 측에 마지막으로 의견을 진술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때 양형에 관한 검사의 의견 진술을 구형(求刑)이라고 한다. 검사의 구형은 권고적 의미라서 불고불리 원칙처럼 판사를 구속하진 않는다. 그래서 검사의 구형보다 높은 형이 선고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구형보다는 낮게 선고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형벌의 기능에는 이를 통해 일반인에게 영향을 줘서 범죄를 예방하려는 일반예방의 기능과 피해자와 사회 일반의 응보 감정을 충족시켜 주는 응보의 기능이 있다. 일반예방과 응보 측면에서 개별 범죄·범죄자에 대해 얼마의 형을 선고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는 법원보다는 교정 기관인 법무부 산하 검찰이 더 잘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검사의 구형이 존중되는 것이 관례이다.
반성하지 않고 피해 배상도 하지 않은 피고인에게 검사가 징역형을 구형했는데 판사가 벌금형을 선고하진 않는다. 징역형이 선고돼도 예컨대 그 형량이 구형량의 절반 이하인 경우 검사는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를 한다. 그러면 법원은 계속 재판 부담을 안게 된다. 그래서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으면 검사가 항소하지 않을 정도의 형을 선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표에 관한 두 재판 모두에서 규정상 최고의 징역형이 구형됐다는 것은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정상적인 재판이라면 징역형을 면할 수 없는 형국이다. 그래서인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검찰 친위 쿠데타” “파렴치한 정치검찰” “불리한 증거 감추고 짜깁기” “사법질서 교란” “정치사냥” “무도한 구형” 같은 날선 언어로 검찰을 공격하고 있다. 11월15일과 25일로 선고가 예정되어 있는데 이때까지 검찰과 이재명과 민주당 간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긴장 상태가 오래가는 것은 국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빨리 종결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담당 판사들이 보통 한 달 간격으로 잡는 선고일을 이례적으로 두 달 가까이 미룬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판사들이 유독 이재명 재판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통 사건에서는 꿈도 못 꿀 ‘특혜’를 부여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좌파 성향 판사들이 이재명 측에게 마지막 수단으로 정권을 무너뜨릴 시간을 줬다는 식의 극단적 평가를 하고 싶진 않다. 이재명 판결에 걸린 정치적 파장이 워낙 크니 최대한 신중하게 판결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고 싶다.
제일 우려되는 곳은 법원이 아니라 국회다. 지금 국회에선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는 “법 왜곡죄”를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심사 중이다. 검사와 사법경찰관 등 수사기관 종사자들이 수사 등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피의자를 처벌하거나 처벌받지 않게 할 목적으로 수사를 하지 않거나 기소를 하지 않거나 또는 증거를 은닉·조작하거나, 증거 해석·사실 인정·법률 적용을 왜곡하는 등의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이다.
수사기관이 편파적으로 수사·기소하거나 증거를 조작한다면 이는 당연히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점에서 입법 취지 자체는 일리가 있다. 현행 형법에 직무유기죄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증거인멸죄가 있지만 이는 모든 공무원이나 피의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법 왜곡죄는 수사기관만 대상으로 특별히 규정하고 형을 가중한 것에 의의가 있다.
사실 법 왜곡죄 발의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18년 20대 국회에서 당시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이 최초 발의했고 2020년 21대 국회 민주당에서 김남국 의원도 발의했다. 이 법안들은 수사기관뿐 아니라 법관도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법 왜곡’이 무엇인지 개념부터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이번 법안은 법 왜곡 행위를 구체적으로 열거해 이 문제는 피했다
그러나 도입 목적에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법 왜곡죄는 독일의 프로이센 형법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독일은 나치에 부역한 비밀경찰과 공무원들, 통일 이후에는 동독의 법관과 검사들을 이 법으로 처벌했다. 이들이 당시 실정법을 따랐지만 ‘법률적 불법’이라는 법철학자 라드브루흐의 공식을 적용해 처벌한 것이다. 이 점에서 법왜곡죄는 극단적인 체제 변혁의 산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이 법을 도입하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생뚱맞다.
법체계 면에서도 문제가 크다. 독일은 기소법정주의를 택하고 있어서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무조건 기소를 해야 한다. 그래서 조건이 되는데도 기소를 안 하면 당연히 불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사정을 고려해 검사 재량으로 기소를 안 할 수도 있는 기소편의주의를 택하고 있다. 그런데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검사의 정당한 불기소와 법 왜곡적 불기소의 경계가 불명확해진다. 결국 검사의 기소를 두고 법정에서 무죄를 다투는 게 아니라 검사와 수사경찰을 법 왜곡죄로 고소·고발하는 일이 빈번해 질 것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당장 민주당부터 이재명 대표의 수사 검사를 고발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하다.
우리나라의 고소·고발 건수는 인구가 2배가 넘는 일본보다도 무려 50배나 많다. 쉽게 말해 ‘고소 천국’이다. 여기에 권력을 가진 자·돈을 가진 자의 수사기관에 대한 고소·고발까지 허용되면 그야말로 ‘고소 지옥’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법적 문제를 떠나 정치적으로도 법 왜곡죄는 이재명 대표를 위한 방탄용·검사 협박용이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아수라장에 종지부를 찍을 주체는 결국 사법부일 수밖에 없다. 다가올 11월15일과 25일에 사법부가 현명한 판결을 내려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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