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6-09-28 20:30
뉴스 > 연재기획
[박정석의 도쿄타워] 일본 육식문화(1)… 그들은 어떻게 육고기를 즐기게 됐나
박정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0-28 06:30:30
▲ 박정석 일본통신원·칼럼니스트
문화란 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구덩이처럼 빈 곳이 있으면 채워 주기도 한다. 우리가 타문화에 열린 자세를 가지다 보면 자신의 것과 이질적인 것을 함께 보며 스스로 정체성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계기가 된다. 식문화에 대해서도 그렇다.
 
프랑스 요리 역시 처음부터 일류는 아니었다. 17세기 프랑스 왕가에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출신이 며느리로 들어 오면서 투박하던 프랑스 식문화에 혁신이 일어났다. 다수의 요리사와 신기한 도구·재료들을 프랑스에 가져온 게 현지 식문화의 물줄기를 크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르네상스를 주도한 이탈리아의 요리가 프랑스 요리 고급화에 밑거름이 되고, 독일의 햄버거가 미국을 거쳐 세계화되었듯 발원지와 꽃피우는 곳이 다른 경우가 많다. 세계화되는 과정에서 변형·보완되면서 풍성함과 다채로움을 더하곤 한다. 일본 음식의 창조적 변형으로 ‘캘리포니아 롤스시’를 꼽을 수 있다. 생김새부터 발상의 전복(顚覆)을 보여 준다.  
 
종교 세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외부에서 전해진 종교나 사상은 토착의 것과 충돌·융합하며 새로움을 띠게 됐다. 인도의 불교가 중국 노장사상을 만나 선(禪)불교로 발전해 한반도와 일본에서 꽃을 피웠다. 일본의 전통 종교인 신도(神道)역시 백제에서 전래된 불교와 어우러지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거듭났다.
 
한반도가 일본에 전해 준 가장 대표적 선진 문화는 약 2000년 전 벼농사 법과 6세기 초·중반 백제의 불교라고 할 수 있다. 벼농사 외 한반도가 일본 식생활에 끼친 최대 영향이 근대 이후 육식 문화였다. 1차는 소고기, 2차는 근년 인기 확산 중인 돼지고기(삼겹살)라 할 수 있다. 
 
육식 문화는 고기를 세분화하는 발골(拔骨) 기술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소고기는 등심·목심·앞다리·우둔·양지·사태·갈비 등 10개로 나뉘며, 이것이 다시 안심살·윗등심살·채끝살·꾸리살·홍두깨살·보섭살 등 39개로 소분할된다. 요즘 요리사에 따라 머리·꼬리 등을 약 100개로 더 세분화한다니 발골 기술이 더욱 진화한 모양새다.
 
1200년간 지속된 일본의 육식 금지령은 메이지시대(1868~1912) 들어서야 폐지됐다. 반면 한반도에선 불교 전래 이래 고려시대에 일시적으로 육식 금지령이 있었을 뿐 13세기 전반 몽골 영향으로 육식 문화가 되살아났다. 이후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정한 조선시대 내내 육식 금지는 없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의 궁중에서 연간 소 약 500마리가 도축됐다. 오늘날 수준의 발골 기술은 없었다 해도 일본이 육식 금지령을 내린 동안 조선에는 다양한 소고기 메뉴가 있었을 것으로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특히 값싼 내장과 뼈를 우려낸 탕 종류의 발달로 보아 일반 백성도 육식 문화에 동참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은 불교에 기반한 1차 육식 금지령이 7세기 후반 텐무 천황 때 내려졌고 2차는 17세기 에도시대의 5대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徳川綱吉) 시기였다. 쇼군에게 아들이 생기지 않자 2차 육식 금지령으로 이어졌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그의 어머니가 살생을 금하며 선행을 쌓아야 자손을 볼 수 있다는 한 승려의 말에 아들을 움직여 살생 금지령을 실행하도록 한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메이지 연간은 일본이 근대 서구문물을 배우고자 필사적이었던 시절이다. 서구의 식문화 또한 학습의 대상이었다. 메이지 4년(1871년) 12월, 메이지 천황은 육식 해금령을 내렸고 천황과 정부 관료가 나이프·포크로 스테이크를 먹는 모습이 대중매체에 자주 노출됐다. 서구화를 위해 육식 해금령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유럽·미국과의 공식 외교 모임에서 육식 위주의 서양 요리를 함께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인 평균 신장이 153센치로 조선인보다 왜소해 육고기 단백질 섭취 필요성을 인식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오랜 육식 금지령 탓인지 처음엔 저항이 상당했다. “외국인 도래와 육식은 신의 땅을 더럽힌다”며 천황가에 열 명의 자객이 난입하기까지 했다. 이런 와중에 ‘절충’안으로 탄생한 게 스키야키·돈까스·카레·고로케 등이다.
 
일본의 식생활 서구화를 주도한 관(官)이 퍼뜨린 유행어 “소고기 안 먹으면 미(未)개화인”에 실소를 머금게 된다. 이렇게 근대 일본에선 상류사회부터 서서히 육식문화가 퍼지기 시작했다. 한반도인이 전한 본격적인 육식 문화는 메이지와 다이쇼 시대를 거쳐 쇼와 시대에 본격화됐다. 다만 스테이크처럼 고급 이미지가 아닌 차별의 대상, 즉 식민지 출신 조선인들이 확산시킨 야끼니쿠(焼肉)였다. (계속)
광고
후원하기
  • 정기 후원
  • 일반 후원
  •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는 공공성에 기반해 독자가 만들어 가는 언론을 지향합니다. 정기 또는 일반 후원시 맞춤형 뉴스, 독자에게 할당하는 지면 서비스, 동행하는 홍보, 유상증자시 참여기회 제공(법인에 한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4
좋아요
3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0
방문수(PC&모바일)
오늘(실시간) 128,643 ▶
어제 140,329 ▶
최근 7일 ▶
대한민국 명사들
대면 기회를 가져보세요.
팬클럽 가기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2안길 82(방배동 463-18) 청송빌딩 3,4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종합일간지 등록번호 : 서울시 가50131,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민경두, 편집국장 : 주경준, 사업자 번호 : 214-88-81099 후원계좌 : 158-910019-39504(하나은행)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진강
본지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서약사로서 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