뚫린 입이라고 요즘 누구나가 민주주의 만세를 부른다. “섣부른 계엄 선포로 내란죄를 저질렀다”고 윤석열 대통령을 조롱·저주하면서 “이젠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더 발전시키자”는 자화자찬이다.
며칠 전 성공회 주교를 지낸 김성수는 조선일보와의 이른바 원로 인터뷰에서 태평양전쟁과 6·25전쟁까지 겪었던 자신이 계엄과 탄핵 사태에 깜짝 놀랐다며,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한 말씀을 했다.
연세대 교수인 정치학자 박명림도 그렇다. 그는 중앙일보 칼럼에서 “이번 내란 사태가 한국 민주주의와 문화 수준에 비춰 경악과 충격이었다”면서 대통령의 폭주를 막자고 호소했다. 마침 김앤장 변호사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김한규란 자까지 나서서 “당분간 민주주의가 화두”라고 운을 뗐는데, 좋다. 오늘 내가 아는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을 말할 생각이다.
재확인하지만 대한민국은 기적이다. 건국 자체가 이승만이 연출했던 미션 임파서블의 드라마였고, 이후 체제 방어의 갑옷을 갖춰 입지 못한 채 70년 가까이 버텨 온 것이 또 한 번의 기적이다. 실제로 한국 민주주의란 늘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했다. 그래서 완생 아닌 ‘미생(未生) 민주주의’라는 게 오래전부터 나만의 판단이다. 그 현실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을 때 위선이 싹튼다.
그런 무책임의 극치인 한국인의 시민 종교는 민주주의교(敎)인데, 이런 식이다. 완전무결한 민주주의가 건국과 함께 ‘짜잔’ 하고 주어졌다. 이젠 마냥 누리기만 하면 되는 그 고결한 민주주의를 욕심 많은 독재자들이 차례로 훼손해 왔다. 때문에 현대사란 민주주의 금자탑을 지키기 위한 민중 저항의 역사라는 좌빨의 논리로 치닫는다. 요즘 누구도 민주주의를 작동시키기 위한 경제적 토태·헌법 가치에 대한 존중 그리고 분단 상황의 특수성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박명림의 스승인 정치학자 최장집 같은 이들이 민주주의교의 거룩한 사제인양 으스댄다. 그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궤변을 늘어놓더니 급기야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외친다. 그가 좌파라서 그런가? 그것만도 아니다. 그보다 훨씬 윗세대 정치학자 차기벽(1924년생)도 오십보백보였다. 그가 오래전에 펴낸 ‘민주주의의 이념과 역사’도 어슷비슷한데, 저들은 조선시대 사대부처럼 명분과 공담에 매달린다.
때문에 그들 대부분은 박정희의 용어를 빌자면 환상적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환자들이다. 물론 저들은 지금도 박정희의 유신 소리만 나오면 부글부글 끓는다. 국민기본권을 제한한 그 나쁜 풍토를 윤석열이 이번에 재현하려 했다며 더욱 흥분한다. 그 극단에서 정규재·조갑제 같은 위선적 리버럴리스트가 춤춘다. 그 둘은 지금도 군대를 동원한 계엄 선포는 미치광이 짓이었으며,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끼고 도는 건 “더럽게 미친 것”이라고 무한 저주를 한다.
어이없다. 말기암 4기에 접어든 대한민국호에 메스를 대려 한 행위를 두고 저들은 왜 저렇게 발광하는가. 명분 좋은 민주주의를 끌어안고 죽을 병의 상태로 사는 게 좋다는 얘긴가. 실은 이 나라 풍토 전체가 왜곡됐다. 광복 직후부터 그러했다. 당시 좌익 세력이 장악했던 중·고등학교와 대학의 캐치프레이즈가 몽땅 ‘민주 학원’이었다. 한국인 모두는 “민주주의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식의 조숙(早熟)한 민주주의, 과잉 민주주의에 중독돼 있다.
그 결과 우리가 외치는 민주주의에는 어느덧 자유민주주의의 함량보다 인민민주주의 함량이 더 많다. 이 통에 온갖 민주팔이들이 끼어든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불과하다고 조롱하는 간첩 신영복, 인민민주주의와 닮은꼴인 진보적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이석기 등의 존재가 그러하다.
그들은 모두 민주주의 사기꾼에 불과하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실패 앞에 더 많은 민주주의를 외치는 인간들은 자신들이 신영복·이석기 아류임을 알긴 알까. 그런 선무당식 민주주의자는 끝내 대한민국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실제로 1980년대 이후 거세게 전개됐던 민중민주주의의 실체가 무엇이던가. 그건 한국 사회의 공산화를 목표로 한 좌익 혁명운동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도 그들이 국가의 민주화에 기여했다며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또 지급한다. 걱정이다. 지금 계엄 실패 이후 상황은 저들 민중민주주의의 궁극적 승리로 갈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봐도 제2차 체제 전쟁이 맞다. 민주주의를 앞세워 대한민국을 거꾸러뜨리려는 세력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대한민국 세력 사이의 숨가쁜 전쟁이다.
안타까운 건 “우리가 계엄을 막은 정당”이라며 설치다가 결국엔 쫓겨난 한동훈을 포함해 국민의힘 소속 의원 중 멀쩡한 사람이 드문 점이다. 자유우파 중 얼치기 정규재를 포함해 언론인 조갑제·헛똑똑이 경제학자 이병태도 그쪽이고, 진중권 등 3류 좌파는 물론 조·중·동 기자들도 예외없이 그 지경이다. 대한민국이 이러고도 온전할까. 오늘, 마음이 무거운 가운데 2024년 마지막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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