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10일,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 게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탄두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김대중이 전 세계를 상대로 어떻게 가짜 평화를 만들어 노벨상 사기극을 벌였는지, 어떻게 노벨평화상과 핵무기를 뒷거래했는지…. 양심 증언으로 미국에서 정치적 망명을 허락받은 유일한 한국인 김기삼 변호사와 한반도 전문 국제 저널리스트 도널드 커크가 밝히는 아찔하고도 끔찍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편집자 주]

노무현정부의 황우석 지원… ‘황우석‧KI 스캔들’
김대중정부의 김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공작에 이어 이번엔 노무현정부가 황우석 박사의 노벨상 수상을 위해 발벗고 나선 정황이 한겨레신문 등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특히 황교수 팀이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KI)에 비치할 공동 연구 장비를 구입한다는 명목으로 후원금 50만5000달러를 인출해 2005년 12월12일 KI 측에 송금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러한 의혹이 더욱 증폭되었다.
KI는 스웨덴 명문 의과대학 겸 연구기관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은 KI 교수 50명으로 구성된 ‘KI노벨회의(Nobel Assembly at KI)’에서 선정, 수여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KI의 칼스테트-두케 처장은 “해당 자금은 한국과학재단의 공공 연구 자금이며 실무적 목적상 황 교수 팀의 국내 금융기관 계좌를 통해 전달된 것이라는 내용의 확인서를 한국 대사관에서 받았다”며 “황 교수 후원금이라는 얘기는 한국 측에서 듣지 못했고 확인서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KI 스캔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스웨덴‧노르웨이에서 모두 슬그머니 묻혀 버렸다. 스웨덴도 한국도 이를 둘러싼 소동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노벨상 수상이 한국의 국격을 높인다는 생각에서 상을 받는 자체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그 과정에는 관심이 많지 않았다.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일종의 환상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며,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가 과학 분야의 황우석이면 어떻고 문학 분야의 시인 고은이면 어떠냐는 것이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의 DJ 수상 소식 발표
이제 다시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2000년 10월13일, 노벨평화상 수상을 결정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의 수상 소식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과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해 2000년도 노벨평화상을 그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김 대통령은 한국에서 수십 년간 독재 통치가 계속되는 동안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오랜 기간 국외 생활을 해야 했음에도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지도적인 대변자로 점차 부상했다.
한국은 1997년 김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으로 세계 민주국가의 대열에 결정적으로 합류했다. 김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민주적인 정부를 강화하고 한국 내부의 화해를 촉진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김 대통령은 동아시아의 지도적인 보편적 인권의 수호자로서 강력한 도덕적 힘으로 아시아에서 인권을 제한하려는 시도에 맞서 왔다. 그는 또한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동티모르 탄압 반대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김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한 간의 50년 이상 지속된 전쟁과 적대감 극복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김 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남북한 간 긴장 완화 과정의 촉진제가 됐다. 이제 한국에서도 냉전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겨났다. 김 대통령은 한국과 이웃 국가, 특히 일본과의 화해를 위해서 노력했다. 노르웨이 노벨평화상 위원회는 한반도 화해 진전과 재통일을 위한 북한과 다른 국가 지도자의 기여에 대해서도 감사의 뜻을 밝히고자 한다.”
김한정, 월간중앙과 첫 언론 인터뷰
2003년 여름, 청와대에서 나온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김한정은 월간중앙과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 몇 년간 언론과 숨바꼭질하듯이 피해만 다녔던 그로서는 언론에 처음 데뷔한 셈이었다. 당시 그로서는 여러 가지로 해명해야 할 일이 많았다. 왜냐하면 지난해 가을, 최규선의 ‘블루카펫 프로젝트’ 보도로 한 차례 크게 홍역을 치른 데다, 지난겨울에는 국정원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 직원 김기삼이 양심 증언을 통해 자신을 노벨상 공작의 주역으로 거론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기삼의 양심 증언으로 촉발된 대북 송금 특검이 아직 진행 중인 때였다. 어느 수준, 어떤 형태로든지 자기방어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는 평소 그나마 덜 적대적인 매체라고 생각해 왔던 월간중앙을 그의 첫 공식 언론 무대로 선정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노벨상 수상 발표 소식을 들었을 때의 감격과 청와대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김한정… 노벨상 수상 통보받은 날의 감동 전해
“2000년 10월13일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발표된 날이죠. 통상 노벨상은 발표 20분 전에 수상자에게 통보해 주는 것이 관례였죠. 그런데 연락이 안 왔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측에서 청와대로 국제전화를 시도했는데 교환 전화로 걸어 통화 연결이 안 되었다고 하더군요.
오후 6시 정각, 저는 청와대 관저에서 몹시 초조한 심정으로 CNN 뉴스를 보고 있었지요. 군나르 베르게 노벨상위원장이 노벨연구소 발표식장으로 걸어 들어왔을 때는 숨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과 동아시아의 인권 증진,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코멘트를 듣고 바로 관저 안방으로 들어갔어요.
두 분이 나란히 의자에 앉아 계시는데 꼭 판결을 기다리는 피고인 같더라고요. ‘대통령님,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말씀드렸죠. 저도 모르게 울먹였던지 목소리가 몹시 떨렸어요. ‘오, 그래….’ 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을 잊을 수 없어요. 그렇게 환하게 웃으시던 두 분의 모습을 앞으로도 잊을 수 없겠지요.”
발표 20분 전에 통보를 받았다는 그의 말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20분이 아니라 아마도 이틀 전에는 언질을 받았을 것이다. 김한정이 소식을 듣고 흥분하고 감격했다는 말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지난 2년 반 동안 자신이 쏟아 넣었던 시간과 열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간지 등 국내 언론‧국민 모두 한마음으로 축하
어찌 김한정뿐이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응당 감격해야 마땅한 일 아니었던가. 얼마나 애타게 기다려 온 노벨상이란 말인가.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상 아니던가. 온 나라는 감동의 도가니로 변했다. 그때의 그 감격을 다시 느껴 보기 위해 잠시 시계를 거꾸로 돌려 당시의 신문을 몇 가지 들추어 보자.
“지난 주말 세계 10개국 정상들과 30명 가까운 전직 대통령‧국제기구 지도자 등으로부터 김대중 대통령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청와대에 쇄도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카를로 아첼리오 참피 이탈리아 대통령‧바츨라프 하벨 체코공화국 대통령‧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호르스트 쾰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등이 전화·서한·팩스를 보내 축하했다.
이 밖에 수상이 발표된 13일 저녁에만 청와대로 수백 통의 축하 전화가 걸려 왔으며 축하 화분도 답지했고 세계 각지의 교포‧상사 주재원과 국내 거주 국민들도 청와대 홈페이지에 수천 통의 축하 이메일을 통해 ‘한국민으로서 한없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13일 저녁 평소보다 20배나 많은 1만여 명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접속해 서버가 다운됐으며, 14일 아침에도 또 한 차례 다운됐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도널드 커크 Donald Kirk
△미 프린스턴 대학 졸업
△197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시카고 트리뷴지(Chicago Tribune)·프랑스 파리의 IHT(International Herald Tribune)지를 비롯해 50년간 한반도 문제 전문 최고령 현역 기자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