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은 지배층 사망 시 피지배층을 함께 묻던 고대 풍습이다. 고대인들은 정말 진지하게 죽은 이를 수발 들 사람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춘추시대부터 괴력난신(怪力亂神) 반대 여론이 고조됐다. 순장은 이후 정적 제거 용도로 종종 쓰였다. 거란족 요(遼)나라 태조의 아내 술율(述律) 황후도 ‘순장 마니아’였다.
신오대사(新五代史) 권73 사이(四夷) 부록 거란편 등에 의하면 아들의 섭정이 된 술율씨는 태조 붕어를 빌미로 정적 제거에 착수했다. 그는 제장들의 처를 불러 꾸짖었다. “나는 지금 과부인데 그대들이 어찌 지아비가 있나!” 그러고는 장수 100여 명을 참한 뒤 “선제(先帝)를 모셔라”고 차갑게 말했다.
술율씨는 누구나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목엽산(木葉山)의 태조 묘수(墓隧)로 보내면서 “지하에서 선제를 뵈어라”고 쏘아붙였다. 거부자는 태조에 대한 반역자로 몰아 구족을 멸했다. 허나 그는 ‘정적 궤멸’ 과정에서 뜻밖의 반격이 있을 것임은 몰랐다.
모종의 사건으로 건수 잡힌 조사온(趙思溫)에게도 목엽산행 편도 티켓이 배달됐다. 조사온이 기둥을 잡고 버티자 술율씨는 “그대는 선제의 친신(親信)을 얻었는데 얼른 뵈러 가야지?”라고 조롱했다.
기둥을 쥔 손가락이 좌우에 의해 펴지기 시작하자 악에 받친 조사온은 돌연 외쳤다. “후(后)만큼 선제와 친한 분이 없는데 어찌 먼저 가지 않으시오?!” 논파할 수 없는 돌발 질문에 당황함도 잠시 술율씨도 이를 갈며 맞받았다. “앞장서서 선제를 따라가려 했으나 자식이 어리니 그럴 수 없다. 대신 한쪽 팔을 선제께 바치리라!” 술율씨는 정말로 칼을 뽑아 제 손목을 내리쳤다.
그러나 제 꾀에 제가 넘어가 버린 술율씨의 ‘순장 파티’를 순순히 따를 이는 더 이상 없었던 듯하다. 좌우가 “당신부터 선제께 충성하시오” “우리도 자식 있소”라며 들고일어난 듯 조사온은 석방됐으며 술율씨의 권세는 하향세를 그렸다. 술율씨는 이후에도 권력을 다투다가 유배돼 목엽산에서 횡사했다.
야당이 여당 의원들을 ‘내란 선전죄’로 무더기 고발했다. 태조 사망을 빌미로 ‘정적 궤멸’에 나섰던 술율씨처럼 계엄 사태를 빌미로 ‘보수 궤멸’에 착수했다는 추측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그러나 불법 대북송금 연루 의혹으로 당대표가 재판 받는 야당은 ‘외환(外患)죄’ 논란에서 자유로운지, 경중을 따지자면 외환 혐의가 더 무거운 건 아닌지, 유죄 입증 시 야당은 ‘외환 선전범’이 되는 건지 등의 반론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야당이 술율씨 전철을 답습할지 주목된다.
오주한 정치전문 기자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