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10일,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 게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탄두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김대중이 전 세계를 상대로 어떻게 가짜 평화를 만들어 노벨상 사기극을 벌였는지, 어떻게 노벨평화상과 핵무기를 뒷거래했는지…. 양심 증언으로 미국에서 정치적 망명을 허락받은 유일한 한국인 김기삼 변호사와 한반도 전문 국제 저널리스트 도널드 커크가 밝히는 아찔하고도 끔찍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편집자 주]

DJ의 노벨상 수상을 맹비난한 YS
2000년 10월13일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발표가 나자 온 나라가 기쁨의 열기에 휩싸여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천편일률로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칭송한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김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을 시비하거나 딴지를 거는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축하 열기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13일 오후 6시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야당 말살‧언론탄압‧부정선거 저지른 독재자가 노벨상을 받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노벨평화상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특강을 위해 고려대에 들어가려다 학생들에게 제지당한 뒤 고려대 앞에 세워 둔 승용차 안에서 ‘강연 초청을 받고 왔으나 10시간 동안 차 안에 갇혀 못 들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자유며 인권이며 정의를 얘기하느냐’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YS는 며칠이 지나도 분이 다 풀리지 않은 듯 16일 다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다음과 같이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맹비난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상 수상을 위해 북한에 너무나 많은 것을 양보하고 경제적 지원을 했다. 1973년 말 미국의 키신저와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결정됐던 레둑토 월맹(현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수상을 거부하고 1년 만에 월남을 공산화했다. 한국도 그렇게 가고 있다. 북한이 고려연방제 통일을 포기했다는 김 대통령의 말은 완전한 거짓말이며, 북한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 제안’은 ‘높은 단계’로 가는 첫 단계이다. 김 대통령이 인권주의자라면 북한에서 핍박받는 많은 정치범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을 하루속히 송환받아야 할 것이다.”
YS는 고대 사태 당시 생리 현상을 어떻게 해결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차 안에서 우유통으로 했다”고도 말했다.
YS처럼 원색적인 비난을 하진 않았지만 은근히 딴지를 거는 목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방계 단체인 재단법인 자유기업원(당시 원장 민병균)은 ‘한국 대통령과 노벨평화상’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노벨평화상은 북유럽 선진국의 고매한 세계관을 반영할 뿐이며, 평화주의 자체가 큰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 도박이라는 것을 역사는 누누이 가르쳐 주고 있다.”
“지구 반대편의 먼 나라 사람들이 ‘서로 양보하고 잘 지내라’고 칭찬하면서 멋있는 상을 주는 것이 사대주의적으로 받아들여질 경우 어떤 영향이 내포되는지 등골에 서늘한 땀을 흐르게 한다”
“진정한 평화는 적대 세력에게 호감을 사려고 애쓰고 양보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은 피해야겠다’는 평화주의자의 매물이 아니다.”
DJ 노벨상 수상에 대한 북한의 반응
그러면 당시 북한의 반응은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다음은 이에 대한 기사다.
“북한 언론은 15일까지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 아무런 보도를 내보내지 않고 있다.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정규 뉴스 시간인 오전 6시를 비롯해 7시와 8시 뉴스 시간에도 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는다는 소식을 일절 전하지 않았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된 13일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조명록 차수의 귀국 소식을 속보로 내보냈다.”
한편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간간이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던 언론은 다음과 같이 조심스럽게 지적을 하기도 했다.
“이번에 김대중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인사가 누구인지는 아직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국내에서 추천받지 않았고 외국 인사들에 의해서만 추천됐다고 청와대 측은 밝혔다. 김 대통령의 한 측근은 ‘김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외국 인사 중 특히 과거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인사들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들 중 일부는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아·태재단) 자문역도 맡고 있다’고 밝혔다.”
DJ 노벨상 수상에 정치권의 미묘한 신경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 정치권은 이에 대해 물밑에서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10일 열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유흥수 의원이 ‘노벨평화상 로비설’을 제기했다. 유 의원은 회의 도중 갑자기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지난 8월 본데빅 노르웨이 전 총리가 방문한 사실을 따져 물었다. 유의원은 ‘노르웨이 전 총리가 구주(유럽)에서는 휴가철인데 8월에 아·태재단의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느냐’며 ‘특히 그가 비밀스럽게 이산가족상봉 현장에 별도의 방을 얻어 상봉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 돌아갔다는 말이 맞느냐’고 추궁했다. 그는 본데빅 전 노르웨이 총리와 김대중 대통령 면담설의 진상도 따졌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나는 당시 뉴욕에 가서 국내에 없었고, 노르웨이 전 총리가 왔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고 비켜 갔다. 하지만 유 의원은 회의 직후 아·태민주지도자회의의 초청으로 본데빅 전 총리가 방한했다는 내용의 외교부 자료를 공개했고, 아·태 측은 “본데빅 전 총리가 서남아시아 국가를 방문하는 길에 한국에 잠시 들렀다’고 시인했다.”
“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위원회 부의장이 2일 난데없는 ‘노벨상 로비설’ 제기로 구설수에 올랐다. 김 부의장은 이날 열린 총재단 회의에 앞서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0순위에 올랐는데, 이는 ‘한국식 로비’ 덕분이라는 말이 있다’고 주장했다. 보도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 부의장이 돌출발언을 하자 놀란 사람은 권철현 대변인. 권 대변인은 김 부의장을 따로 불러내 미묘한 시점에 왜 그런 말을 하느냐며 ‘질책’을 했다는 후문이다. 권 대변인은 나중에 다시 기자들에게 ‘김 부의장의 말은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닌 만큼 취급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국정원과 청와대, DJ 노벨상 수상 위해 전력 질주
노벨상 공작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은 당시 DJ에게 경쟁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청와대와 국정원은 최선을 다해 경쟁자들과 싸웠다. 국정원은 노벨상 공작에 기관의 모든 것을 걸다시피 했다. 북한을 비롯한 대외 정보수집이 본연의 임무인 국정원 요원들은 만사를 제치고 다른 노벨상 경쟁자들에 관한 정보 수집에 몰두했다. 노벨상 공작이 북한 권력층이나 북한의 도발 위협 등과 관련된 다른 어떤 소문이나 일상적인 문제들보다 우선이었다.
1999년 10월 국정원 내부 보고서 ‘FDL 사업 관련 보고’를 보면 당시 군나르 스톨셋 주교는 DJ가 동티모르 및 미얀마 등 아시아 국가들의 민주화에 기여한 DJ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견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주교는 그것을 위해 DJ가 더 노력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현지 언론에서 수상과 관련해 김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희망 섞인 분석을 하면서 현재로서는 불필요한 로비는 배제해야 한다고 썼다.
결과적으로 1999년 노벨평화상은 세계적인 인도주의 의료봉사 단체 ‘국경없는의사회’에 돌아갔다. 그러나 이 소식이 DJ의 노벨상 공작을 주춤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이미 십여 차례나 최종 후보로 거론됐던 만큼 다음 해 수상을 위한 준비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 될 일이었다. 2000년에는 노벨평화상을 향한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질 게 뻔했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도널드 커크 Donald Kirk
△미 프린스턴 대학 졸업
△197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시카고 트리뷴지(Chicago Tribune)·프랑스 파리의 IHT(International Herald Tribune)지를 비롯해 50년간 한반도 문제 전문 최고령 현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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