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전술’이란 표현은 영어 ‘브링크맨십(brinkmanship)’에서 왔다. 70여 년 전인 냉전 당시에 등장해 국제정치·외교 용어로 쓰이다가 상대방을 극한까지 몰아세워 양보를 얻어 내는 협상술 전반을 뜻하게 됐다. 브링크(끝자락)가 ‘벼랑 끝’으로 번역되고 보니 ‘이판사판’ ‘불리한 측의 마지막 선택’이라는 어감이 더해진 듯한데 원래부터 그렇진 않았다.
1956년 미 대선에서 민주당의 A. 스티븐슨 후보가 재선을 노리던 공화당 D. 아이젠하워 대통령, 특히 J.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이 소련 상대로 안보 위기를 과도하게 확대 생산한다고 비판하면서 ‘브링크맨십’이란 표현을 처음 만들어 썼다. 이에 덜레스가 “전쟁을 벌이지 않고 끝장을 보는 능력·기술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반박했다. 결국 아이젠하워는 재선에 성공한 후 소련을 강하게 밀어붙여 냉전 초기 우위를 점하게 된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니키다 후르시쵸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마주보고 각자의 핵탄두에 걸터앉아 팔씨름하는 캐리커쳐가 나왔다. 당대의 브링크맨십을 시각화한 유명한 시사만평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벼랑 끝으로 몰든, 스스로 벼랑 끝에 서서 상대를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든, 약소국 외교술의 최고 사례로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한미동맹을 성사시킨 것을 꼽아야 할 것이다. 그런 경우 사즉생의 담력은 필수겠지만 위대한 비전과 정확한 판세 독해가 승패에 더 결정적이다.
세계 최강 최부국과 작은 최빈국 사이의 상호방위조약 성립은 인류사에 길이 회자될 사건이다. 우남 이승만이 어떤 심정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미국을 압박해 대한민국 안보와 번영의 기반인 이 조약을 끌어냈는지 학교 안팎에서 가르쳐야 한다.
정권 안보를 위해 2600여 명 주민을 볼모 삼은 북한의 핵개발 행보에 ‘벼랑 끝 전술’ 개념을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현재 이 전술이 궁극의 상대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먹힐 것 같지 않으니 ‘판세 오독’ 아닌가.
브링크맨십은 서구어에서 다 비슷한 투로 옮겨졌다. 중국어 역시 벼랑을 끌어 온 ‘쉔야(懸崖)’ 전술이라 하는데 일본어에서만 특이하게 ‘세토기와’(瀬戸際)로 의역해 쓴다. 세토기와란 해협과 외해의 경계, 즉 위험천만한 급물살이 몰아치는 지점을 가리킨다. 그들이 이 말을 그렇게 해석한 것은 오랜 세월 왜구로 불리며 바다에서 생사가 엇갈리는 순간을 겪었기 때문이리라.
다만 대항해시대 이래 근대엔 해양력이 곧 국력이기도 했다. 한때 세계 최강의 영국 해군 또한 해적 경험이 큰 자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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