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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정원 직원의 양심 증언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 [23] 오정소 실장은 ‘문민정부 해결사’… 악역 도맡아
김기삼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12 06:30:35
 
▲ 김기삼 전 국정원 내부고발자
 잠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살며 밖으로는 자국 중심주의의 물결이 살벌한 칼춤을 추는 가운데 국가안보와 경제에 집중해야 할 이때 난장판이 된 정치 상황에 모두가 넋을 놓고 있지 않은가. 북한보다도 가난했던 시절을 이기고 전 세계 국력 순위 6위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우리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혼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살피다 보면 그 꼭짓점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좌파 세력의 득세와 한반도와 세계의 안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북한 핵 개발의 출발점이 김대중 정권임을 고발한 전 국정원 직원의 기록… 이 절박한 시점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안기부 최고 한량 최모 씨… ‘남촌 사건’의 주인공
 
제2부실장 방에 단골로 드나들던 두 명의 고참 직원 진모 씨와 최모 씨 중 최씨는 안기부 최고의 한량으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그는 주색잡기에 일가를 이룬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김대중 정권 당시 일약 감사관으로 승진하여 거들먹거리더니 급기야 보안 사고를 쳤다.
 
그는 이른바 ‘남촌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남촌 사건’이란 천용택 원장 부임 직후에 벌어진, 국정원의 해이해진 기강과 전라도 출신들의 전횡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양재역 부근의 ‘남촌’이란 고깃집에 국정원 간부들이 단골로 드나들며 심지어 그곳에서 보고서를 손보고 여주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등의 일이 알려져 감찰실이 나서서 조사를 한 것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한창 잘나가던 목포고등학교 출신의 이른바 4인방이 이 사건에 연루되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국정원 고참 직원 최모 씨였다.
 
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정보기관이란 사람을 잘 뽑아야 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초인적 성실함으로 권영해 부장 비서실장 된 제3 부실장
 
제3 부실장은 이강○ 단장이란 분이었는데 그는 언론을 총괄했다. 제3 부실장은 언론을 조정하는 협력 단장을 겸했다. 이 단장은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전혀 정보기관 사람 같지 않았다.
 
그는 초인적으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내가 국정원에서 겪어 본 사람 가운데 이 단장만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는 10시 이전에 퇴근하는 경우가 없었다. 매일 저녁 8시에 가판(街販)이 나오면 직접 꼼꼼히 챙겨 읽고 문제 기사를 조정한 후에야 퇴근하곤 했다. 일이 터지면 12시를 넘기는 것이 예사였다. 그러고도 다음 날 아침 8시가 되기 전에 꼬박꼬박 출근했다.
 
오정소 실장은 그런 이 단장의 성실성을 높이 샀다. 그 후 그는 권영해 부장의 비서실장으로 영전했다. 그는 비서실장 시절 YS의 사생아 문제를 제기하여 물의를 빚은 손모 씨를 관리했던 모양이다. 이 단장이 언론 전문가이다 보니 그 일에 적임이었을 것이다.
 
1997년 대선 당시 손씨는 ‘김대중 X파일’이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 단장이 그 일에 어느 정도 연루되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정권이 바뀐 후 이 단장은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소문에 의하면 이 단장은 발가벗긴 채 극심하게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나는 언젠가 수사국 친구에게 “어떻게 한솥밥 먹던 전직 간부에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며 따진 적이 있다. 그 친구가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물었다. 이 단장은 그 후 “국정원이 나에게 가혹행위를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 진승현 게이트는 1998년 정권이 바뀐 후 정성◯ 씨가 엄익준 차장과 김은성 차장 아래에서 특명사업을 수행하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2001년 11월29일 서울구치소에서 수감 중이던 진승현 씨가 서울지법에서 3차 공판을 받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계명구도와 낭중지추
 
오정소 실장은 ‘문민정부의 해결사’였다. 모든 악역을 도맡아 했다. 실제로 “오 실장이 96년 12월 전격적으로 잘리지만 않았더라면 문민정부가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주간동아 2005년 8월29일자 ‘오정소 침묵에 국정원 떤다’는 제하의 기사 참조). 나는 그러한 견해가 일리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오 실장은 평소 계명구도(鷄鳴狗盜)와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중국의 고사성어를 즐겨 인용했다. 계명구도란 말은 ‘점잖은 사람이 배울 게 못 되는 하찮은 기술이나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씩 재주는 있기 마련’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낭중지추란 말은 ‘능력 있는 사람은 마치 가죽부대 속에 들어 있는 송곳처럼 그 능력이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오 실장은 특별히 재주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곁에는 괴팍하고 특이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언젠가 오 실장이 “내 주위에는 왜 이렇게 꼴통들만 모이냐?”고 농담 삼아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당신이 꼴통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꼴통은 꼴통끼리”라는 말이 목구멍 안에서 맴돌았다.
 
정모 씨와 공모 씨… 오 실장의 오른팔과 왼팔
 
오 실장 주위의 인사들 중에서도 정성○ 씨와 공운○ 씨는 내가 국정원에서 만난 가장 별종 인간들인 동시에, 해결사 오 실장의 오른팔과 왼팔이었다. 정성○ 씨는 후에 진승현 게이트의 주인공이 된 사람이고, 공운○ 씨는 안기부 미림팀장으로 언론에 소개된 사람이다. 나는 부속실에 근무하면서 이 두 사람의 얼굴을 매일 보았다.
 
깡패들의 친구 정모 씨
 
정성○ 씨는 광주의 어느 명문고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고 한다. 육사 1학년 때 진해 해군사관학교로 하계 훈련을 갔다가 철모로 해군 제독의 머리를 내리쳤다가 퇴학당했다고 한다. 그는 서울의 모 대학 법학과를 마치고 안기부 정규과정 13기로 입사했다. 그는 신입직원 시절부터 깡패들과 어울렸다고 한다.
 
90년대 초 노태우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을 벌였을 때 그는 큰 사고를 쳤다고 한다. 수원지법 강모 부장과 모 조직폭력배 두목 등과 함께 룸살롱에서 술을 마셨는데 옆방에서 술을 먹던 부하 깡패들끼리 시비가 붙어 칼부림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일은 한참 후에야 언론에 한 줄 기사가 났다.
 
이 일로 인해 그는 세네갈 파견관으로 나갔다. 정보기관에서 도피시켜 준 것이다. 그때 해외공작국 인사과장이 오정소였다. 그는 파견관 생활을 마치고 국내에 들어오면서 대공정책실에 합류했다. 오 실장이 그를 대정실로 부른 것 같았다.
 
시한폭탄 정모 씨… 진승현 사기 사건 연루
 
정성○ 씨는 언제 봐도 시한폭탄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검찰과 깡패 사회에 가장 정통한 사람이었다. 그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오 실장의 특명사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놀랍게도 검찰의 청와대 보고서를 입수해 오기도 했다. 청와대 보고서는 검찰이 극도로 보안에 신경을 쓰는 문건이었다. 가히 ‘검찰의 영혼’이라 불릴 만한 것이었다. 안기부에서 이 보고서를 입수하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고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이런 일을 해냈다.
 
그는 1998년 정권이 바뀐 후 한동안 전라도 출신들에게 찍혀서 한직을 맴돌았다. 그러다가 어느새 다시 권력 핵심으로 진입해 엄익준 차장과 김은성 차장의 최측근으로 행세했다. 진승현 게이트는 그가 이 두 차장 아래에서 특명사업을 수행하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진승현 게이트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정성○ 씨는 진승현 사기 사건으로 1년 6개월간 감옥 신세를 졌는데, 출옥한 후에도 뒤에서 진승현을 계속 조종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일찍부터 정치권에 줄을 댔던 것 같다. 2001년 구속되면서 그는 조선일보와 전격 인터뷰를 했다. 그는 그때 폭탄선언을 하듯이 자신과 김홍일의 관계를 밝히기도 했다.
 
정성○ 씨는 출옥하고 난 후 DJ의 사생아 문제(2005년 4월20일 방영 SBS 뉴스추적 ‘DJ의 숨겨진 딸’ 참조)와 정몽헌 씨 피살 의혹 등을 언론에 제보했다(*월간조선 2006년 2월호 ‘정몽헌 현대 회장의 죽음의 행로’ 및 3월호 ‘정몽헌 회장 죽음의 5대 미스터리’ 기사 참조). 그는 동교동의 배신에 배신으로써 답한 것으로 보인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김기삼 프로필
△서울대 법대 졸업
△미국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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