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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주사파와 북한의 대남공작 비록(祕錄)
[김동식 기획연재]<8> 김정일 “김대중은 친미주의자… 환상 버려라”
김동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21 06:25:00
 
▲ 김동식 前남파공작원‧대북전략컨설팅 대표
드디어 막 내린 신광수의 공작 활동
 
한편 신광수는 방원정으로부터 위장 거점인 뉴코리안 주점에 왔던 한국 연예인들이 귀국했는데 이들과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들이 한국에 가려고 하니 이들과 함께 입국하면 의심을 사지 않을 것이라는 대남 침투 구상도 보고받았다.
 
신광수는 이번 기회에 방원정과 함께 한국에 침투해 국내 간첩망을 확인 검열하면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북한 공작지도부에 자신의 계획을 보고해 허락받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85년 2월24일 방원정과 같이 대한항공편으로 나리타공항을 출발해 김포공항으로 입국한 신광수는 이성수를 만나 북한의 조국통일 3대 원칙과 5대 방침·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 을 선전 교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안기부에 검거된 것이다.
 
이로써 12년 동안 북한과 일본을 비밀리에, 혹은 공개·합법적으로 오가면서 일본인을 납치하고 그 일본인의 신분으로 정체를 위장한 후 일본을 거점으로 재일교포 포섭·헌금 강요 방식의 공작자금 조달 등 공작 활동을 해 오던 북한 중앙당 조사부 소속 공작원 신광수의 간첩 활동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검거된 신광수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다가 1988년 12월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김대중정부 시절인 1999년 12월31일 광주교도소에서 석방되어 서울 관악구 봉천동 ‘만남의 집’에서 다른 장기수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리고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에 따라 9월2일 다른 비전향장기수들과 함께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그 후 2008년 9월 북한 언론에 등장했고 2016년 7월21일 평양에서 열린 통일운동단체 결성 70주년 기념 중앙보고회 영상에 신광수로 보이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김정은 정권에서도 건재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는 필자가 1985년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졸업한 뒤 북한 대남공작부서에서 소속 간부들과 공작원들에게 배포했던 책자의 제목이다. 책자에는 국내 운동권에서 제작 배포한 각종 이념서적과 이적 표현물·유인물 등에 실려 있던 내용이 그대로 편집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라는 책자는 한국 국내 운동권의 내부자료 편집본이었던 셈이다.
 
당시 북한 공작지도부가 배포한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에는 서울대 출신 김영환이 쓴 품성론을 비롯한 ‘강철 서신’과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의장 김문수의 ‘옥중 수기’ ‘해방 선언’ ‘사회구성체 논쟁’ 관련 기고문 등 각종 자료가 편집되어 있었다. 물론 품성론 같은 경우에는 김영환의 실명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인지 필자를 밝히지 않았다. 이와 함께 내용이 긴 자료의 경우에는 단행본으로 인쇄해 배포하기도 했다.
 
편집본이나 단행본에 실렸던 국내 운동권 관련 자료들은 당시 북한과 연계를 가지고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지하당 조직(고첩망)에서 입수한 후 일본과 유럽 등 해외연락망을 통해 북한에 들여온 것들이었다.
 
북한 공작지도부에서는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한국의 학생운동이 과거와 달리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을 접목하는 등 이념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전개되자 이에 고무되어 그들의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를 예의 주시했다.
 
북한 공작지도부에서 운동권 내부 자료를 편집해 간부들과 공작원들에게 배포한 것도 그것을 보면서 당시 남한의 운동권 인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파악하라는 것이었다.
 
재야 운동권 단체 결성에 흥분한 북한 공작지도부
 
당시 북한 대남공작부서 간부들은 한국에서 김근태의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과 김문수의 서노련, 그리고 1980년대 말 이부영을 주축으로 하는 민주화 세력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결성과 노동 운동권 인물들의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결성 등을 지켜보면서 흥분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그것은 북한이 바라던 대로 대남 혁명의 주력군인 노동자와 농민·청년 학생은 물론 종교인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시민이 의식화·조직화되어 반미·반정부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래서였는지 김일성과 김정일은 대남공작부서에 노골적으로 종교인들에 대한 공작을 강화하라고 강조했다.
 
 
▲ 2003년 6월15일 평양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앞에서 열린 6.15남북공동선언발표 3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개막식에 지난 2000년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들이 참석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더욱이 당시 국내 운동권 일부 세력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변혁 운동(북한식으로 표현하면 ‘남조선혁명’)의 지도 이념으로 삼고 비밀집회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으로 칭송한다는 소식에는 놀라지 않는 간부들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데모를 하거나 좌익 성향의 지하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검거되어 감옥에 들어간 국내 운동권 인물들이 이미 수감되어 있던 비전향장기수들에게 사상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는 것은 물론 노동당에 가입시켜 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고 있다며 머지않아 대남 혁명이 승리할 것 같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간부들도 있었다.
 
당시 연락부 대남공작담당 부부장이었던 이원국을 비롯한 일부 대남공작부서 최고위급 간부들은 어디서 입수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남한에서 노태우정부가 당원 명단을 제출하는 조건으로 공산당을 합법화시킬 것 같다며, 그렇게 되면 정말 해 볼 만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아무튼 1980년대 후반은 북한 대남공작지도부 간부들과 공작원들이 국내 운동권의 움직임에 한껏 고무되어 당장이라도 대남 혁명이 승리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시절이었다.
 
포섭 대상 선정 기준 마련 “주사파를 포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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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 중앙당 연락부를 비롯한 북한 대남공작부서 내부에서는 국내 주체사상 신봉자들, 즉 주사파 운동권 인사들을 ‘알맹이’ ‘투쟁패’ 등으로 명명하고 이들을 어떻게 포섭해 조직화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함께 열띤 논의에 들어갔다.
 
또한 남한에서 신문·방송을 통해 수시로 보도되는 대학생 및 운동권 인사들에 의한 지하 혁명조직 및 좌익 조직 사건 관련 기사들을 듣고 보면서 그런 지하조직들과 핵심 인물을 어떻게 찾아내 북한 노동당과 연계시킬 것인지 연구를 거듭했다.
 
이와 같은 고민과 연구를 통해 남파 공작원들이 남한에 침투해 운동권 인물들을 포섭할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을 포섭할 것인지 포섭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도 마련했다.
 
당시 북한 공작지도부에서 정했던 포섭 대상의 첫 번째 기준은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북한의 포섭 대상이 되려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르는 사람, 즉 PD 계열(사회민주주의·민중민주파)은 안 되고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NL 계열(좌익민족주의·주체사상파)만 포섭 대상으로 삼으라는 것이었다. 특히 김씨 일가에 대한 우상화와 후계 세습에 대해 부정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인물은 아무리 뛰어난 학생운동 지도자라도 포섭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당시 북한 공작지도부의 확고한 방침이었다.
 
이는 현재 북한의 3대 세습과 주체사상을 부정하거나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인물은 이미 북한에 포섭된 인물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포섭 대상의 두 번째 기준은 남조선혁명, 즉 대남 적화 혁명이 승리할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투철한 의지와 신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대학에 갓 입학한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충동적으로 다른 친구들이 하니까 나도 한번 해 보자는 식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든 사람은 포섭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한 것은 기본이고, 대학 졸업 후에도 계속해서 신념을 가지고 재야 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지도적인 위치에서 운동을 이끌어가고 있는 인물을 포섭 대상으로 선정하라는 것이었다.
 
포섭 대상의 세 번째 기준은 조직·대중 지도 능력이었다. 이는 포섭 대상이 되려면 대학에서  총학생회장 또는 정책위원회(정책위) 의장 등 학생회 간부를 역임하면서 학생운동을 기획하고 지도해 본 경험이 있어야 하고, 또한 그 과정에서 구속되었던 경력이 있으면 더 좋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지하에서 묵묵히 활동한 인물이 그렇지 않은 인물보다 훨씬 많았을 텐데, 그러한 운동권 인물들의 경우에는 그가 아무리 골수 주사파라 할지라도 북한으로서는 파악할 수가 없었고, 그들을 포섭한다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네 번째 기준은 포섭 대상을 선정할 때 올바른 도덕과 품성을 소유하고 있느냐, 그리고 가족 가운데 과거에 남로당이나 빨치산 등에 가담한 사람이 있느냐 하는 것도 고려 사항이었다.
 
제대로 된 지도자가 되려면 일단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하고 품성 또한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포섭 대상의 가족 가운데 좌익 계열·지하당 조직(간첩 조직)에 가담했던 사람이 있다면 대를 이어 혁명 투쟁을 한다는 의미에서 더 좋다는 것이었다.
 
당시 북한이 남파 공작원들에게 과거 간첩 사건에 연루되었던 당사자 또는 통일혁명당 사건 관련자였던 김종태의 부인과 같이 좌익 활동 관련자의 가족들을 찾아보라고 지시하는 한편, 그들을 다시 연계시키려고 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공작지도부에서는 이처럼 포섭 대상 선정 기준을 정해 놓은 다음, 이 기준에 부합되는 인물들을 찾기 위해 한국 TV와 라디오·일간지·주간지·월간지 등 언론 매체들과 국내에서 발행한 운동권 관련 서적들을 가져다 놓고 집중적인 연구와 분석에 들어갔다.
 
 
김정일에게 ‘친미 사대주의자’로 낙인 찍힌 김대중
 
1980년대 중반 북한 대남공작부서 간부들을 흥분시킨 또 다른 사건은 바로 김대중의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이었다.
 
사실 미국으로 망명했던 김대중이 1985년 2월 망명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 동교동 자택에서 가택연금 상태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북한 대남공작지도부 간부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7년 4월 김대중이 사면 복권된 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는 소식이 발표되자 북한 공작지도부의 일부 간부는 김대중이 완전한 북한 편, 또는 이미 포섭된 인물인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당장이라도 남북통일이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김대중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던 대남공작부서 내부의 분위기를 보고받은 김정일은 “김대중은 친미사대주의자”라며 그에 대한 환상을 버릴 것을 강조해 간부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김정일의 지시가 하달되자 대남공작부서 내부에서는 더 이상 김대중과 관련된 이야기를 내놓고 할 수가 없었다.
 
◆프로필
 
△김정일정치군사대학 졸업
△노동당중앙위 대외연락부 남파공작원으로 15년 활동(1981~1995)
-1990년 1차 침투 후 이선실 대동 복귀·간첩망 구축 등 공작임무 수행 후 복귀. 공화국영웅 칭호 및 국기훈장 제1급 수여
-1995년 2차로 남파되어 간첩망 구축·거물 간첩 접선 등 임무 수행하다 검거
△국군기무사령부(현 방첩사) 분석관(1999~2006)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2008~2020)
△경남대 북한대학원 북한학 석사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학 박사
△유튜브 ‘김동식의 북한S파일’ 운영
△대북전략컨설팅 대표
 
저서
△박사논문 ‘북한의 대남혁명전략 전개와 변화에 관한 연구’
△‘아무도 나를 신고하지 않았다’(기파랑, 2013)
△‘북한 대남전략의 실체’(기파랑,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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