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고(趙高)는 진(秦)나라에서 세 명의 임금을 섬긴 환관이자 간신·역적이다. 첫 번째 임금 대에는 유죄로 평가받고 두 번째 임금 대에는 무죄로 평가받았으나 세 번째 임금 대에 악행의 대가를 치른 인물이다.
조고가 형법에 능통하다는 소문을 접한 진시황(秦始皇)은 그를 기용했다. 조고는 죄를 짓고 사형 판결까지 받는 등 사고뭉치였으나 진시황은 재능을 아껴 살려 줬다. 그러나 그 인간성을 꿰뚫어보고서 국정 개입은 엄금했다.
기원전 210년 진시황은 전국 순행 중 사망했다. 조고는 “장남 부소(扶蘇)를 이세황제에 봉한다”는 시황제의 유언을 조작해 호해(胡亥)를 옹립했다. 또 부소에게는 자결을 명했다. 조고에게 큰 빚을 진 호해는 그에게 국사를 맡겼다. 조고는 부소의 형제들을 사지를 찢어 죽이는 한편 부정축재에 탐닉했다. 폭발한 백성은 진승(陳勝)·오광(吳廣)을 필두로 봉기했다.
자연히 조고를 향한 백관들의 분노도 고조됐다. 조고는 나라야 망하든 말든 제 권세 유지에만 몰두했다. 그는 호해에게 “폐하의 춘추가 어려 신하들이 무시하고 있다. 저들과 상종 안 하는 게 상책”이라 간언했다. 호해는 깊은 궁궐에 틀어박혔다. 조고는 황제의 ‘문고리’를 자처하면서 국정을 오로지했다. 황제에게는 “세상이 태평하다”는 허위 사실만 고해 올렸다.
신하들은 황궁으로 몰려가 “민란으로 나라가 결딴나기 직전이다. 허위 사실만을 고하는 조고를 처단하라”고 호소했다. 조고는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자신이야말로 결백하고 청백리들이 역적이라 몰아갔다.
어느 날 조고는 황제·백관을 소집한 뒤 사슴 한 마리를 보여줬다. 그가 “이게 무슨 동물이오?”라고 묻자 정상인들은 당연히 “사슴”이라 답했다. 반면 조고에게 빌붙던 잡배들은 “말(馬)”이라 우겼다. 심지어 호해마저 동조했다. 조고는 청백리들에게 “어디서 말을 사슴이라 조작하는가”라 꾸짖고선 모조리 목을 베었다. 자타공인 지존무상이 된 조고는 나중엔 호해까지 시해하고서 대권을 노렸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었다. 조고는 끝내 부소의 아들 자영(子嬰)에 의해 비참히 처단되고 만다.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판결됐던 야당 대표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심 재판부는 유력 증거로 제시된 사진에 대해 “조작됐다”고 판단했다. 이에 조고의 지록위마(指鹿爲馬)를 떠올리는 국민이 적지 않다. 최종심을 진행하게 될 대법원은 사슴은 영원히 사슴일 뿐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주한 정치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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