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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정원 직원의 양심 증언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 [33] ‘썅캐’의 세계 떠나 정보학교로… 美법학대학원 연수
김기삼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4-03 06:20:30
 
▲ 김기삼 전 국정원 내부고발자
 
 
 
잠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살며 밖으로는 자국 중심주의의 물결이 살벌한 칼춤을 추는 가운데 국가안보와 경제에 집중해야 할 이때 난장판이 된 정치 상황에 모두가 넋을 놓고 있지 않은가. 
북한보다도 가난했던 시절을 이기고 전 세계 국력 순위 6위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우리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혼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살피다 보면 그 꼭짓점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좌파 세력의 득세와 한반도와 세계의 안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북한 핵 개발의 출발점이 김대중 정권임을 고발한 전 국정원 직원의 기록… 이 절박한 시점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착하다’는 게 칭찬이 아닌 세계
 
사실 이 바닥에서는‘착하다’는 말은 칭찬이기보다 욕으로 해석될 때가 많았다. 썅캐의 세계에서 ‘착한 사람’이란 ‘공작관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과 동의어였다. ‘공작관은 무자비하고 냉혈한이어야 한다’는 미신이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신 과장의 진정 어린 충고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쉽게 하기 어려운 충고를 해 준 것이었다. 몇 년 후 연수를 마치고 그에게 귀국 인사를 갔던 적이 있다. 98년 어느 늦여름이었다. 그땐 이미 정권이 바뀐 후라 그의 입장이 몹시 어려운 때였다.
 
그날 우리는 강남의 진동횟집에서 소주를 한잔했다. 진동횟집은 언제나처럼 북적거렸다. 그는 말없이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전에 내가 한 말을 생각해 보았나”고 불쑥 물었다. 나는 “예, 생각해 보았습니다”고 짧게 대답했다. 신 과장의 충고가 아니었더라도 나는 이미 ‘정보기관이란 곳이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시 정보학교로
 
1996년 8월 실무에 배치된 지 3년 만에 나는 다시 정보학교로 돌아왔다. 정규과정 시절에는 교육생 신분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었는데 이제 다시 교육생이 되니 해방된 듯한 기분이었다. 연수 기간은 2년으로 처음 1년간은 정보학교에서 영어교육을 받은 다음 나머지 1년은 해외에서 현지 연수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 김기섭 기조실장은 “정치공작 하는 데 쓰던 돈을 직원들 재교육하는 데 쓰겠다’며 직원들 연수에 엄청난 예산을 투자했다. 정보학교에서는 영어‧일어‧중국어‧러시아어를 가르쳤는데 네 과정을 합해 매년 백 명가량을 선발했다. 영어 과정은 모두 60명가량이었는데, 15명씩 4개 반으로 나누었다. 나는 영어 D반에 배속되었다. 우리 담임이었던 신종○ 교수님은 우리를 “드림반(Dream Team)으로 이름 짓자”고 제안했지만 나는 “돌반(Dol Team)으로 하자”고 우겼다.
 
우리는 편의상 영어로 이름을 불렀다. 나는 제임스라고 불렸다. 제임스(짐)는 내가 초등학교 때 처음 읽은 외국 책인 ‘보물섬’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했고, 카투사 시절 가장 친했던 미군 병사의 이름이기도 했다. 또 제임스 본드라는 유명한 007 영화 시리즈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했고,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성을 영어로 읽으면 비슷한 발음이 나기도 했다. 나는 김씨를 영어로 Kim이 아니라 Gim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영어를 썩 잘하지는 못했지만 웬만큼은 했다. 우리는 여러 명의 외국인 강사로부터 영어를 배웠다. 강사들은 대체로 친절한 편이었지만 그중에는 가끔 한국 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덕분에 나는 영국 출신 강사와 감정 대립을 겪기도 했다.
 
“당신은 도청당할 만큼 중요하지 않다”
 
우리와 잘 어울리던 캐나다 출신의 젊은 강사가 있었는데, 한번은 그가 수업 중에 자신들에 대해서도 도청을 하는지 물었다. 나는 “당신은 도청당할 만큼 중요한 인물이 아니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해 줬다. 그런데 웬일인지 몇 년 후 그가 마약사범으로 구속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결국 그도 도청 대상이었던 셈이다.
 
 
▲ 2003년 9월23일 안기부 예산 불법 선거지원 사건인 이른바 `안풍(安風) 사건’과 관련, 기소된 김기섭(오른쪽) 전 안기부 운영차장이 서울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두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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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종일 영어만 배웠는데도 영어 실력은 생각만큼 잘 늘지 않았다. 외국어를 배우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나이였다. 나는 영어 공부에는 별 재미를 붙이지 못했지만 카투사 시절에 익힌 기본실력으로 그럭저럭 별 어려움 없이 지냈다. 나를 특별히 아껴 주시던 신 교수님은 “제임스가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해 줬으면 좋겠다”며 나의 나태함을 안타까워하곤 했다.
 
영어 듣기가 어느 정도 되었기 때문에 문법을 좀 소홀히 해도 토플 점수가 그런대로 나왔다. 특별히 준비하지 않았는데도 첫 토플 시험에서 627점이라는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다. 나이 든 선배들은 토플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많았다. 일정 수준의 토플 점수를 받지 못하면 연수 기회가 무산되기 때문이었다.
 
1년간의 해외연수… ESL 대신 법과대학원 LLM 과정 선택
 
영어 과정을 마칠 즈음 나는 1년간 연수 갈 학교를 찾아보았다. 나는 ‘미국 대학에서 개설하고 있는 부설 어학 과정을 이수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미국 대학들이 개설한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프로그램들은 등록금만 비쌌지 교육 내용은 그저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영어 과정보다는 법과대학원의 LLM 과정을 이수하기로 결정했다. 회사에서는 1년간의 어학 연수비 상한선을 1만 달러로 정해 놓고 있었다. 그 이상은 자기 부담이었다. 내가 가려던 법과대학은 대개 등록금이 1만5000달러 이상이었다. 당연히 차액은 자체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
 
美 법대, JD 과정과 박사과정 사이에 LLM 개설
 
이참에 미국의 법과대학 프로그램을 간단히 소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요즘은 한국에도 로스쿨이란 것이 생겨 미국식 법과대학 교육을 도입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당시에는 미국 법대로 유학 가는 경우가 요즘처럼 흔하지 않았다. 나는 미군 부대에서 법무 행정병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미국의 법과대학 시스템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미국의 정규 법과대학은 대학원 과정으로 교육 기간은 3년이다. 이를 ‘주리스 닥터(Juris Doctor)’ 또는 줄여서 그냥 ‘제이디(JD)’ 과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 법과대학들에는 JD와 법학 박사과정 사이에 1년 기간의 LLM 과정이 개설돼 있다. 말하자면 LLM 과정은 본래 3년간의 정규 법학대학원 과정(JD 과정)을 마친 학생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법과 교육 체계는 지극히 실용적이기 때문에 LLM이나 박사과정을 선택하는 학생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법과대학 교수들도 대개는 평생 학문을 한 사람들이 아니라 변호사로서 실무를 하던 사람이 대부분이다.
 
LLM은 유학생의 법학대학원 입문 과정
 
사정이 그렇다 보니 LLM 과정은 대개 외국 학생들이 미국의 법학대학원에 입문하는 과정으로 변질되었다. 대개는 외국 유학생들로부터 현금을 벌어들일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물론 LLM 과정이 대학의 등급 평가에도 영향이 있기 때문에 웬만한 법과대학엔 LLM 과정이 개설돼 있다.
 
펜실베이니아주 카일라일로
 
나는 여러 대학의 입학허가를 받았는데 그중 펜실베이니아주의 카일라일(Carlisle)이라는 소도시에 있는 디킨슨 법과대학이 마음에 들었다. 등록금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시골에 있는 게 좋았다. 애팔래치아산맥 안의 시골 벽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아마도 1년간은 한국 사람을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현지에 도착해서 보니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있었다. 그런 시골구석에도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제는 미국의 어느 시골 벽지에 가도 한국 사람이 없는 동네는 없는 것 같다.
 
카일라일은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사람들은 더 없이 친절했다. 마을 전체가 가로수에 푹 파묻힌 듯, 수백 년 된 가로수들이 줄지어 늘어져 있었다. 펜실베니아주에는 나무가 많다. ‘실베니아’는 ‘숲’이란 뜻으로 펜실베이니아는‘펜의 숲’이라는 말이다. 영국 왕이 펜(Pen)씨에게 숲으로 덮인 땅을 하사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카일라일에는 법원과 교회와 참전용사 기념비가 마을의 상징처럼 마을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담벼락도 없는 고색창연한 대학 캠퍼스가 마을 안에 있었다. 시냇가에는 팔뚝만 한 물고기가 우글우글했지만 그것을 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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