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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작원 김동식 회고록- 죽기 위해 살아야 하는 운명
[평양에서 왔습니다] <43> 남조선 사람 되기… 외국어보다 어려운 서울말
김동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4-24 06:25:00
▲ 김동식 前남파공작원‧대북전략컨설팅 대표
적구화 교육이란 한국인화 교육
 
공작원들이 공작 활동 지역의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는 것은 임무 수행을 위한 필수 과정이다. 이것은 제3국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해외 공작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남조선, 즉 대한민국을 공작 활동 무대로 삼고 있는 대남 공작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대남 공작원이었던 나에게도 남조선 사람이 되기 위한 적구화 교육, 즉 한국인화 교육은 중요한 의무이자 과제였다.
 
수십 년 동안 분단되어 살아오면서 남북 간에 언어는 물론 문화와 풍습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이는 엄청난 문화적 차이로 나타났다. 북한의 언어와 문화가 상대적으로 토속적이면서 러시아와 중국 등 사회주의권이나 북방의 영향을 받았다면 남한의 언어는 외래어가 많고 서양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공작원들에 대한 적구화 교육을 실시할 때 외래어를 따로 암기하도록 했다.
 
사실 나를 비롯한 새세대 공작원들은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 이론적으로 배운 것이 전부였다. 그런 책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 본 적 없는 북한의 학자들이 사회주의적인 시각에서 보고 분석한 자료에 기초해서 작성한 일반상식 수준에 불과한 것이었다. 
 
특히 남북 간 언어와 생활풍습 등 문화적 차이가 상당히 심각해 남한을 공작활동 무대로 하는 대남 공작원들은 남한의 말과 생활 풍습·행동 방식·사회 환경 등을 제대로 모르고서는 공작임무 수행은커녕 남한 지역에서 한 발짝도 옮겨 놓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적구(敵區)에 침투하기 위한 ‘한국인화 교육’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작원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북한 출신 새세대 청년들이 대남 공작원 집단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면서 과거 남한 출신 공작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던 적구화 교육 문제가 새롭게 제기되었다. 따라서 북한 출신 공작원들에게 있어서 적구화 교육은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필수적인 과제가 되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언론에서는 대남 공작원들의 적구화 교육을 ‘이남화 교육’이라고 표현하는데, 오히려 ‘한국인화 교육’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남파됐다”고 하지만 북한 대남공작부서에서는 “적구에 간다” 혹은 “적구에 침투한다”고 하므로 ‘적구화(敵區化) 교육’이라는 단어 자체가 말해 주듯이 공작원들을 적 지역 사람, 즉 한국 사람처럼 만드는 교육인 것이다. 그래서 대남공작부서에서는 ‘적구화 교육’이란 용어를 공식 사용한다.
 
남조선 사람이 되어라
 
이러한 적구화 교육은 1980년대 초에는 기간도 6개월 쯤으로 하고, 그 수준도 간단한 대화나 며칠간 임시로 생활할 수 있는 정도로 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부터 교육 기간을 8개월~1년으로 늘리고 교육 내용도 남한에서 중·장기적으로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는 수준으로 향상시켰다.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함으로써 남한 현지인들의 의심을 받지 않게 하고, 생활방식이나 남한의 문화에 대해서도 최대한 숙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때 대남공작부서에서 공작원들에게 요구했던 적구화 교육 수준은 남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평범한 일반인이 알고 있는 수준의 상식을 소유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보통 18개월 이상의 적구화 교육을 받는다고 하며, 그 수준도 대학생 정도의 상식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남한 사람보다 남한을 더 잘 아는 대남 공작원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나는 1987년 가을부터 1988년 여름까지 8개월 동안 사상교육도 체력 훈련도 잠시 중단한 채 오직 적구화 교육에 집중했다.
 
한국 표준어 서울말을 배워라
 
적구화 교육에서 기본은 어디까지나 언어이다. 남한의 생활방식이나 풍습·사회 환경 등 문화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몰라도 어느 정도 용서가 될 수 있지만 북한 말을 그대로 쓰거나 북한 지역에서만 쓰는 사투리가 나오면 절대로 용서될 수 없다.
 
말하자면 남한의 문화나 상식 같은 것을 모를 경우에는 책을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있지만 언어에 문제가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북한 사투리를 그대로 쓰다가는 금방 노출·신고되어 남한에서의 공작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만큼 언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 2015년 3월27일 북한 조선중앙TV는 국가정보원의 지령을 받은 남한 간첩 2명을 정탐·모략 혐의로 체포했다며 이들의 기자회견을 녹화 방영했다. 북한은 체포된 최춘길 씨가 남한 드라마를 불법적으로 유포하려 했다면서 남한 드라마 일부 장면을 노출시켰다. 연합뉴스
 
 
서울말·경상도말·전라도말 중 하나에 통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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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은 남한의 여러 지방에서 쓰고 있는 서울말 또는 표준어, 경상도말, 전라도 말 등 세 지역 언어 가운데 공작원이 속한 부서의 요구에 따라 특정 지역의 언어를 선택해서 배운다. 각 지역 언어를 가르치는 강사는 해당 지역에서 살다가 월북한 사람들이거나 강제로 납북된 남한 사람, 즉 한국인들이었다.
 
남한 출신 강사들은 공작원들과 하루 24시간 초대소에서 함께 지내며 해당 지역의 언어와 함께 춤과 노래까지 남한 사회 전반에 대한 학습을 책임지고 지도했다. 교육 방법은 강사들이 만든 교재로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처럼 강사의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따라 하고 녹음해서 들어 보면서 수정하는 방식과 TV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아나운서·탤런트들의 말을 반복해서 따라 하는 방식으로 했다.
 
나는 공작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서울말(표준어)을 배우게 되었다. 공작원들이 어느 지역 말을 배우느냐는 전적으로 담당 부부장 등 간부들에 의해 결정되는데 나 역시 스스로 서울말을 배우겠다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공작부서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서울말 강사는 용산 출신 박 선생 
 
당시 나를 담당한 서울말 강사는 ‘박 선생’이었다. 박 선생은 서울 용산구 후암동 출신으로 당시 명문고인 용산고등학교와 한국외국어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공군에서 통역 장교로 근무한 뒤 1980년대 초 프랑스에서 유학하다 월북한 엘리트였다.
 
나는 박 선생으로부터 두음법칙 등 한국말의 일반적 특징에 대한 강의를 듣고 그에 기초해 서울말 교재를 보면서 그의 발음을 직접 따라 하고, 그것을 녹음해 들어 보면서 수정·보완하는 방법으로 서울말을 배웠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숙련된 다음에는 TV에 나오는 아나운서·탤런트 가운데 말하는 스타일이 비슷한 대상의 말을 반복해서 따라 하는 방법으로 했다.
 
외국어보다 더 어려웠던 서울말
 
서울말을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같은 ‘조선말(한국말)’인데도 남과 북에서 쓰는 어휘와 발음·억양 등이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예를 들면 ‘근사하다’는 단어를 북한에서는 ‘비슷하거나 유사하다’라는 의미로만 사용하지만 서울에서는 그러한 본뜻 이외에 ‘아름답다·멋지다’는 의미로도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20년 이상 써 오면서 완전히 몸에 밴 북한말을 버리고 같은 ‘조선말’이면서 발음과 억양만 약간 다른 서울말을 하려다 보니 오히려 전혀 모르는 외국어를 처음부터 새로 배우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한두 마디 흉내내는 정도야 잠깐이면 할 수도 있겠지만,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장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으로 익히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외국어도 6개월 정도 집중적으로 배우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는데, 같은 나라의 언어를 8개월씩 배운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리라. 더욱이 발음과 억양을 고치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쓰던 북한의 고유한 사투리를 버리고 해당 지방의 고유한 언어(방언)와 외래어까지 새로 배워야 하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남한 TV를 보면서 아나운서나 배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이해되지도 않았다. 발음과 억양이 달라서 귀에 들리지 않았고, 그나마 알아들은 것도 외래어나 서울에서만 쓰는 말이어서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물론 이런 어려움은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문제는 남한 사람들의 말을 완벽하게 알아듣고 그들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황해도 말과 비슷한 서울말, 그래서 조금은 쉬웠던 ‘서울말 배우기’
 
나는 고향이 황해도였기 때문에 내가 어려서 쓰던 말이 서울·경기 지역 말과 억양과 발음이 비슷해 그런대로 조금 나은 편이었다. 또한 내가 살아온 세월이 다른 공작원들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20년 남짓한 기간이었고, 영어도 어느 정도 배웠기 때문에 나이도 많고 고향이 함경도이거나 평안도인 다른 공작원들보다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다.
 
당시 나와 함께 적구화 교육을 받은 조장 김명걸은 고향이 양강도(과거의 함경도)여서 억양이 강했다. 그런 관계로 부드러운 서울말을 배우느라 무척 고생했다.
 
또한 1990년 내가 처음으로 남파되었을 때 공작조 조장으로 함께 활동했던 권중현의 경우에는 40대 말의 나이에 적구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40년 이상 써 온 말을 완전히 버리고 다른 말을 다시 배워 쓰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게다가 고향이 평안도인 그가 상대적으로 억양이 강한 경상도 말을 배우려다 보니 적구화 교육을 두 번씩 반복해서 받으며 고생했다는 얘기를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고졸 학력의 남한 일반인 수준의 소양 갖추기
 
적구화 교육은 단순히 남한에서 쓰는 말을 배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말을 배우는 목적은 공작 임무 수행을 위한 것이며, 이 공작 임무는 남한에서의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할 때만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말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말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작원들은 한국말 학습과 함께 남한의 정치·경제·군사·문화·교육 등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와 관련된 전반적인 지식과 더불어 남한 사람들의 생활방식·풍습 등에 대해서도 강의를 듣고 각종 자료를 보면서 연구한다.
 
또한 배운 것에 기초해서 여러 가지 상황을 설정해 놓고 그 상황에 따라 실제로 말과 행동을 해 보는 실습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몸에 배도록 함으로써 남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일반인 수준의 소양을 갖추는 것이 목표였다.
 
 
▲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다
 
2021년 11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 후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마친 아들과 내가 직접 나눈 대화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는 형식으로 본 연재의 각 회차 마무리를 대신하려 한다.
 
아들 : 아버지는 북한에서 어떤 스포츠 활동을 하며 학교 생활을 하셨나요? 한국에서처럼 다양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북한에도 체육 시간은 따로 있을 거 같아요. 영어로 된 말들을 우리말로 바꾸어 사용한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스포츠’라는 말은 어떤 말로 대신해서 사용하는지도 궁금해요.
 
아버지 : 북한에서는 ‘스포츠’라는 말을 쓰지 않고 한자어라고 할 수 있는 ‘체육’이라는 용어를 써. 북한 아이들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스포츠 종목은 그렇게 많지 않아. 물론 평양이나 대도시 아이들은 시골 아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하겠지만, 그것도 경제 사정 때문에 학교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스포츠 종목은 한정되어 있어. 아이들이 가장 쉽게 많이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축구와 농구·육상·기계체조, 그리고 태권도 정도일 거야.
 
내가 1970년대에 학교 다닐 때는 축구공이 없어서 축구도 못 했고, 기껏 한다는 운동이 철봉·평행봉 정도였어. 그때는 태권도 종목도 북한에는 도입되지 않았을 때였거든. 물론 평양을 비롯한 대도시에는 과외 교육시설인 ‘학생소년궁전’이 있는데, 이런 곳에서 엘리트 양성을 위해 자기 지역에서 잘할 수 있는 종목의 스포츠 클럽(북한에서는 일본식 표현인 ‘구락부’라는 표현을 사용)을 운영하면서 각 스포츠 종목에서 특별히 잘하는 아이들을 선발해 유도나 레슬링·축구·농구·배구·사격·예술체조 같은 종목의 엘리트들을 양성하고 있기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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