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周)가 비록 오래된 나라이나 그 명(命)은 새롭다.” 시경의 이 구절을 통해 ‘유신(維新)’이란 표현이 세상에 전해졌다. 하(夏)에서 상(商=은殷), 거기서 또 주나라로의 교체를 주역은 ‘천명을 바꾸다’(혁명)로 풀이했으나 다시 세월이 흘러 ‘새로움의 유지’가 주나라 권위의 명분으로 제시된 셈이다.
유신, 하면 흔히 일본의 메이지유신(1868)을 떠올린다. 교과서나 대중 서사를 통해 그 시대의 밝은 면만 접해 온 일본인들도 비슷한데,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을 지나오며 어두운 측면을 조명한 연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메이지유신이라는 과오-일본을 멸망시킨 요시다 쇼인과 쵸슈 테러리스트’(2017) 저자의 경우, 쵸슈번(藩) 출신들에게 장악된 육군의 중심 세력이 쇼인(이토 히로부미의 스승)의 주장을 받들어 아시아를 침략한 최종 결과가 패망이었다고 본다.
메이지유신 100주년 기념식은 1만여 명이 모인 성대한 행사였으나 2018년 150주년엔 300여 명이 모였다. 야당은 전원 불참한 가운데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메이지 시절 용기와 영단, 부단한 노력·분투를 벌이며 세계를 향해 가슴을 열고 세계의 문을 열었다. 일본 근대화 과정의 빛과 그림자를 귀중한 경험으로 생각하며 배워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반응은 썰렁했다.
변법 운동을 통해 청나라가 입헌군주국으로 거듭났다면 신해혁명 대신 ‘○○유신’이 남았으리라. 서태후 측의 반격에 무너진 ‘100일 천하’, 즉 1898년 무술(戊戌)변법을 일각에선 ‘무술유신’이라고 한다. 개혁 노력 자체를 평가한 입장이다. 갑신년(1884) 조선의 개화파가 14개 혁신 정강을 내걸고 나섰다가 사흘 만에 청나라 군대에 진압된 사태는 어떤가.
별명으로나마 ‘갑신유신’이 등장할 수 있을까. 갑신정변을 ‘정변’(쿠데타), ‘일본식 급진 개화파의 망동’으로만 배운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관련자들의 망명 및 멸문지화로 끝난 것에 일본 식자층이 얼마나 절망했고 서구와 맞선 동북아 연대의 꿈도 폐기된 사실 역시 대부분 금시초문일 수밖에 없는 것도 그렇다.
한편 유신 이름이 붙었으되 쿠데타 취급받는 게 박정희 말기 7년의 ‘10월 유신’이다. 국민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어 진행된 시월유신의 배경, 목표의 당위성과 큰 성취가 가려진 채 험악한 해석만 교육돼 왔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과 압박, 닉슨 독트린 및 미군 철수 예고 등으로 야기된 안보 위기, 1971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의 대중경제론, 베트남 전황 등을 함께 살펴야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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