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본 남조선 드라마
적구화, 즉 한국인화를 위해 사용하는 자료는 여러 가지다. 주로 사용하는 것은 남한의 전반적인 사회 실상과 생활방식·풍습 등에 대해 월북자들과 남한 연구자들이 쓴 각종 서적과 참고서 등인데 이와 함께 남한 TV에서 방영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녹화한 테이프와 일간지·주간지·월간지 및 남한에서 출판된 소설과 관광자료 등 각종 서적이 있다.
나는 적구화 교육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한국 TV 드라마를 보았다. 당시 대표적으로 교육에 활용된 프로그램은 KBS와 MBC에서 방영했던 메인 뉴스와 드라마·각종 쇼·스포츠 프로그램 등이었다. 지금도 그때 시청했던 드라마 중에 ‘사랑과 야망’ ‘도시의 얼굴’ ‘서울뚝배기’ ‘사랑이 뭐길래’ ‘서울의 달’ ‘숙희’ ‘여울목’ 등과 그 후에 봤던 ‘모래시계’를 비롯해 일일 및 주말 드라마 제목이 생각난다.
무삭제본으로 남조선 TV 프로그램 섭렵
그리고 ‘일요일 일요일 밤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등의 오락 프로그램, 각종 다큐멘터리, ‘가요대제전’ ‘10대 가수 가요제’ ‘강변가요제’ ‘가요무대’ 등의 가요 프로그램과 야구ㆍ복싱 등 각종 스포츠 녹화본도 교육 자료로 활용되었다.
남한 TV 녹화는 대외연락부 산하 314연락소에서 하고 있는데, 적구화 교육을 받는 공작원 교육용 녹화 테이프는 보통 실제 방영일보다 2~3일 정도 늦게 전달된다. 녹화 테이프는 뉴스같은 데서 김일성·김정일이나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내용만 삭제하고 오락물 등 나머지는 하나도 삭제하지 않고 무삭제로 며칠 분씩 편집해 넘겨주었다.
그 후에는 강사가 “지금 저 뉴스를 진행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면 “KBS 류근찬, MBC 백지연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식으로 테스트도 진행되었다.
대중가요 100곡 이상은 불러야 공작원이다
한편, 강사들은 남조선 대중가요 100곡을 부르고 유명 가수 이름을 줄줄 외워야 공작원 자격이 있다며 한국 대중가요가 녹음된 테이프를 되풀이해서 틀어 주었다.
나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허공’ 등을 비롯해 배호·윤항기·남진·나훈아·서유석·혜은이·주현미·이은하·이선희 등 1960~80년대 대표적인 가수들의 이름과 히트곡을 외워서 불렀다. 당시 적구화 초대소에는 일본 가라오케 시설이 있어서 실제로 가라오케에 카세트를 넣고 음악을 틀어 놓은 다음 노래를 부르며 연습할 기회도 가졌지만, 이상하게도 팝송은 학습 목록에 없었다.
6대 일간지·주간지·월간지로 남조선 정세 파악
당시 6대 일간지였던 조선일보·한국일보·서울신문·경향신문·동아일보·중앙일보도 구독하며 남한 시사에 대한 지식을 넓혔다. 주간조선과 주간경향·선데이서울·주간한국 등 주간지, 신동아·월간조선·월간중앙·말·길·낚시춘추 등 월간지도 남한 정세와 사회상을 파악하기 위한 교육에 활용되었다.
위에 언급한 내용 가운데는 1980년대 말에 방영되었거나 출판된 것이 아닌 것들도 있다. 적구화 교육은 정해진 기간에만 하는 게 아니라 일반 초대소 생활 기간에는 물론 남파되기 직전까지 지속적으로 하기 때문에 내가 본 것들을 몇 가지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다.
북한에는 없는 야구… TV 보며 선수 이름도 외워
또한 정치인과 10대 재벌 그룹 회장의 이름을 외우고, 가전제품·화장품·의류·신발류·식료품은 어떤 회사 제품이 유명한지 등도 암기했다. 이 밖에 스포츠·군대·대학·백화점·재래시장·숙박업소·교통수단·술집·카바레 등 남한 사람으로 위장하는 데 필요한 세부적인 사항들까지 익혔다. 북한에는 없는 야구의 경우는 TV를 보며 야구 규칙을 습득하며 이만수·선동열·최동원·김성한 등 당시 유명했던 선수들 이름도 외웠다.
이와 함께 한국에서 출판된 각종 연감과 최인호의 ‘고래사냥’, 황석영의 ‘꼬방동네 사람들’ 같은 소설도 읽었다. ‘한국의 여로’ ‘뿌리 깊은 나무’ 등 관광 자료·서울시 도로 교통지도 등 내가 북한에서 적구화 교육 등 공작원 생활을 하는 동안 본 자료를 여기에 다 나열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것이다.
‘참고통신’ ‘자료통신’ 등… 간부용 자료
북한에서 간부들에게 보급하는 대표적인 대남 관련 자료로는 ‘참고통신’‘자료통신’ ‘참고신문’‘남조선 조사연구 자료’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참고통신’은 남한의 방송 내용 가운데 정치·사회 및 사건·사고 등 일부 중요한 내용만을 녹취해 A4 용지에 프린트한 인쇄물이다.
‘자료통신’은 남한 방송의 시사 해설이나 세계 각국의 방송 내용을 그대로 녹취해서 일자별로 묶어 참고통신 자료처럼 A4 용지에 프린트한 인쇄물이다. ‘참고통신’과 ‘자료통신’은 모두 조선중앙통신사에서 발행하는데 대남부서 간부들과 군당 책임비서 이상의 고위간부들에게만 배포된다.
한국 정치권 동정을 손금 보듯이
또한 중앙당 부부장 이상 간부들에게만 배포되는 자료로 ‘8호통신’과 ‘9호통신’ 등의 제목을 붙인 것도 있다. 이 자료들은 한국의 대통령과 주요 인물 등 정치권 동정을 보다 상세하게 기록해 놓은 것이다. 물론 이러한 출판물 역시 조선중앙통신사에서 발행하며, 공작원이라면 모두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참고신문’은 중·하위급 간부들을 대상으로 배포되며 그 내용은 위의 ‘참고·자료통신’에서 주요 내용만 발췌해서 격일간으로 발행하는 일종의 신문이다. ‘남조선 참고신문’은 대외연락부 산하 314연락소에서 남한의 주요 일간지들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스크랩한 다음 그것들을 편집해 만든 ‘짜깁기’ 신문이다. 이 신문은 2~3일에 한 부씩 발행하며 주로 김정일정치군사대학 재학생들이나 대남부서에서 일하는 일부 사람만 보게 되어 있다.
‘남조선 조사연구자료’와 ‘남조선 조사자료’ 등은 314연락소와 통일전선부 산하 남조선 연구소에서 남한의 1차 자료를 분석, 가공한 자료이기 때문에 적구화를 위한 자료로는 사용되지 않고 남한 정세를 연구하거나 침투준비를 할 때 활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적구화교육에는 북한 내부에서 만들어진 자료와 함께 강사들이 특별히 만든 서울말 교재와 상용 어휘집·외래어 사전 등이 이용되고 있다.
적구화 교육은 공작원들이 남한에서 현지 주민들과 어울려 대화하고 생활해야 하므로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남한에 사는 일반인이 알고 있는 내용을 모두 다룬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익힐뿐 아니라 실제 행동에 옮길 수 있도록 실습을 하는 등 완전 습득을 목표로 한다.
공작원 세대교체로 남한 출신 필요해져
공작원들의 적구화 교육을 담당한 강사들은 모두 남한 출신이다. 그중에는 자진해서 월북한 사람도 있지만 일부는 납북자였다. 나는 그것을 한국에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 대남공작부서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한마디로 ‘공작원 세대교체’라고 하는 중대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북한은 남북통일이 비교적 단기간 내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성급한 판단하에 6·25전쟁 전후로 월북한 수많은 남한 출신 가운데 우수한 사람을 선발하여 공작원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남한의 말과 문화를 잘 아는 남한 출신을 공작원으로 활용하면 교육 시간도 절약되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판단하에 북한 출신은 배제하고 남한 출신들만 공작원으로 활용했다. 다시 말하면 장기전에 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1970년대를 지나면서 나이가 많아 고도의 육체적 훈련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어렵고 힘든 대남공작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공작원들에 대한 세대교체 문제가 불가피하게 제기된 것이다.
남로당·빨치산 2세 데려다 공작원으로 양성하라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고심하던 대남공작부서에서는 손쉬운 방법으로 남한 사람들을 공작원으로 쓰기로 결정하고 이를 추진하게 된다. 순수 북한 출신을 선발해 공작원으로 양성하는 경우 남한의 말과 문화를 잘 몰라 그것을 가르치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현지인, 즉 남한 사람은 공작에 필요한 교육과 훈련만 시키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공작원으로 양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에 따라 북한 대남공작부서에서는 과거에 남로당원이었거나 빨치산 활동을 했던 사람들의 자녀를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월북시킨 다음 공작 교육과 훈련을 시켜 대를 이어 남조선 혁명가로 양성해 다시 남파하는 방법을 구사했다.
▲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다
2021년 11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 후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마친 아들과 내가 직접 나눈 대화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는 형식으로 본 연재의 각 회차 마무리를 대신하려 한다.
아들 : 아버지께 처음 술을 배웠던 날이 기억납니다. 아버지가 북한에서 생활하실 당시 그곳에서도 음주는 자유로웠을 거라 생각하는데, 아버지도 저처럼 할아버지로부터 술을 배우신 건지 궁금해요. 또, 지금도 생각나는 북한만의 전통주가 있나요?
아버지 : 나는 어린 나이에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술을 배운 적은 없어.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에서는 대학에 가기 전에는 드러내 놓고 술을 마시지 않는 문화가 있었어.
그런데 내가 졸업한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는 일반 사회대학과 달리 특별히 설날(1.1), 김정일 생일(2.16), 김일성 생일(4.15), 노동당창건 기념일(10.10), 이렇게 1년에 네 번 연회(파티)를 베풀어 주는데 이때마다 1인당 맥주 2병씩을 식탁에 올려 놔 줘. 그리고 파티에는 대학교 총장·부총장·학과장·교수·지도원 등 교직원들과 학생들이 모두 참석해 같이 어울려 맥주를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음주문화를 접하게 돼.
이렇게 대학교 총장부터 교직원들이 전부 참석하는 파티에서 학생들이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거나 싸울 수는 없잖아. 그래서 결국 친구들 대부분이 조용히 안주와 함께 술을 마신 다음에는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침실로 돌아가 잠을 자는 방식으로 당시 대학의 술 문화가 형성되었고, 내가 술을 마시는 습관도 그때 생긴 거지.
대학을 졸업한 후 공작원으로 일하면서는 대학교 총장보다도 직급이 높은 장관·차관들과 술을 마시니까 더더욱 조심스럽게 술을 마시게 되었고, 집에 가서는 아버지와 같이 마시니까 또 조심하게 되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술 마시는 습관이 만들어지다 보니 지금도 나는 술 마실 때 조용히 마시는 편이야.
그리고 북한에는 각 시·군마다 자기 지역의 물로, 자기 지역에서 나오는 특산물을 가지고 술을 만들기 때문에 술 종류가 많을 수밖에 없어.
그런데 시·군 단위에서 만드는 술은 대체로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만 배급하고 다른 지역에는 유통시키지 않아서 어느 지역 술이 좋은지 모르는 게 사실이야. 다만, 평양에 있는 이름난 술 제조업체에서 만드는 술이나 일부 지역에서 옛날부터 만들어왔던 술 가운데 괜찮은 술은 노동당 고위 간부들이 가져다 마시는데, 그런 술 종류를 ‘명주’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
노동당 고위 간부들이 주로 많이 마시는 술 가운데 지금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인삼주(개성)·대평곡주(남포 강서 대평)·용성술(평양시 용성)·백로주(자강도 강계)·인풍술(자강도 강계)·양덕술(평남도 양덕)·동양술(평남도 양덕)·들쭉술(양강도 혜산) 정도야.
이 가운데 양강도에서 나오는 들쭉술을 남북 관계가 좋을 때 일부 장사꾼들이 남한에 들여와 판매한 적이 있는데, 그 들쭉술은 평양에서 내가 마셨던 오리지널 들쭉술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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