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희소식이 들린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이 한국에 인공지능(AI) 센터를 설립한다는 소식이다. 향후 9억 달러의 자금을 모집해 일본 등과의 협력으로 자유 진영 간의 오픈소스 AI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미국보다 빠른 속도로 AI 분야에서의 패권을 노리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독자적인 대응으로는 충분치 않고 동맹국과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필요에 의해 한국에 AI 센터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에는 샘 울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해 한국의 AI 경쟁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협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각국의 AI 역량 평가를 하면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 우위에 있고 한국은 6~7위 수준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3위부터의 순위는 별 의미가 없고 언제든지 변동이 가능할 정도로 차이가 크지 않다.
대선 정국이 달아오르면서 모든 주자가 AI 강국 진입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100조 혹은 200조 예산을 투입해 세계 3위 AI 강국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틀린 말도 아니고 그렇게만 된다면 오죽이나 좋겠나. 인재 양성, 기술 개발, 연구개발(R&D) 지원 등을 언급하지만 가야 할 길이 너무 멀다. 미·중과의 격차가 너무 크고 아직도 후발국과 유사한 마이너 리그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AI 강국 3위권 진입은 구호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치밀한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어야만 성공에 근접할 수 있다. 첫 발은 글로벌 빅테크 데이터 센터 국내 유치다. 이를 통해 설비 투자를 유인하고, 빅테크 엔지니어들이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우리 힘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시장을 열고 협력의 범위를 극대화해야 한다.
왜 모두가 AI를 말하는 걸까. AI가 글로벌 미래 먹거리 선점 경쟁에서 우월적 지위를 보장해 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에너지·반도체·자동차·가전·정보기술(IT)·조선·바이오·방산·콘텐츠·의료 등 모든 산업 분야가 AI 인프라와 접목되지 않으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앞서가는 것은 다른 나라들보다 이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일본이나 유럽 국가들은 AI 분야로의 출발이 늦어지면서 따라잡으려고 해도 격차가 더 벌어지는 추세다. 기본적으로 미국에는 AI 관련 기업·인재·자금이 계속 몰려든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책에 더해 미국에서 수학한 AI 인재들의 중국 유턴이 끊임없이 늘고 있다. 연봉 등 파격적 대우에다 우수한 연구 환경 덕분이다.
AI 대국 운운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과제가 있다. 기업 생태계에 활력이 생겨나면서 나가는 것보다 들어오는 것이 많아져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기업은 국내보다 해외로 나가는 것에만 집중한다. 정부 정책에 일관성이 없고 각종 규제가 줄기는커녕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구태여 한국에서 기업을 할 명분과 이유가 갈수록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AI 스타트업들도 국내 시장을 외면하고 우리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되는 일본 시장에 연이어 진출하고 있다. 5년 후 일본의 AI 시장이 한국 시장의 2.5배 규모인 54조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에 한몫한다. 일본 내에 뚜렷한 경쟁 기업도 없는 데다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당근책도 이들을 유혹하는 요인이다. 구태여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한국 시장보다 좀 더 가능성 있는 일본 시장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K제조업의 탈(脫)한국에 따른 ‘메이드 인 코리아’의 종언(終焉)이다. 세계는 지금 AI 경쟁에 더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서 비롯되는 제조업 경쟁이 점입가경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 이 경쟁에서 거의 무방비 상태에 있으며 계속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기업은 점점 줄고 국내에서 나가는 기업만 지속해서 늘어난다.
이런 판국에 중국이나 동남아 혹은 멕시코에서 관세 전쟁 후폭풍을 맞고 있는 한국 기업이 국내는 거들떠보지 않고 또 다른 보금자리를 찾는 중이다. 각종 규제와 관련 정책의 일관성 결여, 경직된 노동 환경,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산업 정책 리더십 실종 등으로 K제조업의 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서 공장이 소멸해 가고 있는 것이다.
소비·투자·수출이라는 3대 성장 엔진이 멈추면서 한국 경제에 최대 위기가 실시간으로 닥쳐오고 있다. 제로 성장이 현실화되면서 한국이 가장 먼저 오랜 잃어버린 세월을 경험한 일본에 이어 제2의 일본의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수출을 줄이고 내수를 살리자, 지방 경제를 활성화하자는 등 틀에 박힌 구호가 다시 난무한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선 주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성장 동력을 살려 내겠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국가가 동원 가능한 재원에는 한계가 있고, 시들어 가는 제조업 생태계를 복원하는 건 천상의 대책과 뼈를 깎는 노고 없이는 불가능하다.
AI 강대국으로 가기 위해서도 국내 제조업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 누가 더 꺼져 가는 한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적임자인가 냉정하게 가려내야 한다. 나가는(Outbound) 경제가 들어오는(Inbound) 경제로 전환될 수 있는 경제 리더십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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