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馬超)는 후한 말의 ‘마초맨’으로 관중십장(關中十將)의 일원이다. 관중십장은 조조를 황천길 문턱까지 보낼 정도로 위세를 떨쳤으나 분열 끝에 자멸했다.
마초는 관서(關西) 군벌의 우두머리 격인 마등(馬騰)의 장남이었다. 조조는 협천자이령제후(挾天子以令諸侯·황제를 끼고 제후를 호령한다)의 권세가 무색하게 강력한 관서 기병대를 두려워했다. 그는 큰 벼슬을 미끼로 마등을 조정에 불러들였다. 관서에 남겨진 마초는 아비의 군대를 통솔했다. 마초를 코흘리개로 여긴 조조는 안심했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었다.
서기 211년 조조는 한중(漢中)으로 출병했다. 이를 두고 관서 군벌은 자신들을 치러 오는 것 아닌가 의심했다. 마초는 한수(韓遂)·양추(楊秋)·마완(馬玩)·성의(成宜)·정은(程銀)·장횡(張橫)·이감(李堪)·양흥(梁興)·후선(候選)과 함께 거병했다.
관중십장은 파죽지세로 동진(東進)했다. 열 명은 관중에 소재한 고도 장안(長安)을 바람같이 통과했다. 또 후한의 수도였던 낙양(洛陽) 코앞까지 진출했다. 천자(天子)를 빼앗길 경우 역적으로 전락하는 건 시간 문제였던 조조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는 부랴부랴 포위·섬멸 등 반격에 나섰다.
병력이 도강하자 조조는 후미에 남아 총괄 지휘했다. ‘무식한 관서 촌놈들’을 얕잡아 본 탓이었다. 마초는 애초에 상대의 전략을 꿰뚫고 있었다. 불시에 들이닥친 관서군은 적군을 짚단처럼 베어 넘기며 조조를 향해 돌격했다. 허저(許褚)는 나룻배에 집어던지다시피 조조를 태웠으나 사공마저 관서군 화살에 맞아 즉사했다. 다급해진 허저는 한 손으로 말안장을 들어 화살비를 막고 한 손으로는 노를 저었다. 천하의 조조를 소변 지리게 한 관서군의 용명은 천하를 뒤흔들었다.
영광은 거기까지였다. 모략에 착수한 조조는 정전 협상을 빌미로 한수에게 접근해 친한 척하며 온갖 생색을 냈다. 사사롭게 보낸 편지에 중요 내용을 덧칠해 조정 실세인 자신과 한수가 내통하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한 건 덤이었다. 안 그래도 각자 사익을 추구했던 마초·한수 등은 서로를 적대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분오열된 열 명은 용두사미(龍頭蛇尾)로 패망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사법 리스크에 힘입어 야심차게 대선에 임한 보수 측이 후보 단일화를 두고 내홍을 겪었다. 민주당은 특정 후보를 두고 “바지 후보”라며 상대방 분열에 불을 질렀다. 보수 측이 집안싸움에 골몰하느라 호재를 못 살리고 제 살만 깎았다는 한탄이 지지층 사이에서 높다. “그들은 이익 집단에 불과하다”는 홍준표 전 시장의 대갈일성(大喝一聲)이 귓전에 맴돈다.
오주한 정치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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