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노나(Venona)’는 1943년 2월1일부터 1980년 10월1일까지 미 육군의 암호해독 부대인 신호정보국(SNIS·일명 알링턴 홀)과 그 후신인 국가안보국(NSA)이 비밀리에 진행한 소련 암호 통신 전문의 해독 작전 이름이다.
이 작전으로 37년간 수십만 건의 교신 중 약 2만5000여 건의 전문을 감청하는 데 성공했다. 이 중 해독에 성공한 것은 3000여 건이다. 이를 분석하여 349명의 소련 스파이나 협조망을 찾아낼 수 있었으나 실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모두 암호명(code name)으로 적시되었기 때문이다.
베노나 암호 해독 요원들의 끈질긴 노력 외에도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부(CIA)의 축적된 정보와 추적과 함께 영국의 정부통신본부(GCHQ), 비밀정보부(SIS· MI6), 캐나다와 호주의 방첩기관과의 공조 수사로 소련이 미국과 세계 각국에서 전개한 경악할 만한 스파이 활동의 양상을 파악하게 되었다.
베노나 작전으로 처음 적발된 스파이는 주디스 코플론(Judith Coplon)이다. 그녀는 1921년 뉴욕 브루클린의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했으며 바너드 대학 재학 때 청년공산동맹에서 활동할 정도로 투철한 공산주의자였다. 그녀는 1944년 미국 법무부에 채용되어 외국인 요원 등록(FAR) 부서의 분석가로 근무하면서 수집한 극비 정보들을 소련으로 빼돌렸다. 그녀는 소련 NKVD(내무인민위·KGB의 전신)에 소속된 간첩으로 암호명은 ‘SIMA’였다.
그녀는 1949년 FBI에 체포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FBI가 사법 절차에 일부 위배되는 활동을 했고 결정적 증거인 베노나 문건을 보안 유지 때문에 법정에 제출하지 못해서였다. 이런 사유로 소련 스파이로 특정된 수많은 자들이 법망을 피하는 것을 미 수사 당국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베노나 작전 결과 드러난 대표적인 사건은 원자폭탄 기술을 소련에 넘긴 것이다. 로젠버그 부부, 핵 물리학자 시어도어 홀, 핵 기술자 데이비드 그린글래스 등이 원폭 기밀을 제공한 덕분에 소련은 단기간에 낮은 비용으로 원자폭탄을 개발할 수 있었다.
시어도어 홀은 18세에 하버드대학에서 물리학 학위를 딴 천재 물리학자로 ‘Mlad(젊은이)’라는 암호명으로 소련에 원자폭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영국 물리학자 클라우스 푹스와 연락책 해리 골드는 우라늄 동위원소 분리의 두 가지 방법, 즉 기체 확산법과 전자기법의 비밀을 제공했다.
소련은 백악관·의회·군·정보기관·정부부서 등에 광범위하게 스파이 망을 구축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가장 신뢰한 백악관 경제 고문이었던 로클린 커리와 미국 재무부의 가장 영향력 있는 관리였던 해리 덱스터 화이트(국제통화기금 설계자)도 소련 스파이였다. 미국 최고의 정보기관인 CIA의 전신인 전략정보국(OSS)에서도 무려 20여 명의 스파이가 암약했다.
OSS 분석 부서장이었던 모리스 핼퍼린은 엄청난 양의 군사 및 외교 기밀을 소련에 넘겼다. 베노나 작전 본부인 ‘알링턴 홀’의 해독 요원인 윌리엄 와이스밴드도 소련 스파이였다. 이 밖에 새무얼 딕스타인(대법원 판사), 피오렐로 과르디아(미 하원의원·제99대 뉴욕 시장), 리차드 라우터바흐(타임지 모스크바 지국장), 엘저 히스(미 국무부 고위 관료) 등이 있다.
또한 소련에 충성한 영국·캐나다·호주 간첩들의 신원도 밝혀졌다. 영국 내 소련 스파이 망인 ‘케임브리지 5인방’의 좌장격 킴 필비(MI6 워싱턴 지부장), 외교관 맥클린과 버제스는 베노나 작전으로 포위망이 좁혀 오자 모두 소련으로 도주했다. 특히 킴 필비는 베노나 작전 사실을 입수하여 소련에 제공했으나 유력한 MI6 수장 후보였던 필비를 보호하기 위해 직접 대응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베노나 작전을 통해 1930년대 이후 소련 스파이들의 조직 운용과 작전 방식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냉전의 역사가 다시 쓰여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인권운동가로 알려진 헬렌 실버마스터가 주도하는 인권·평화·정의 운동이 소련의 영향권하에서 전개되었음이 밝혀졌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