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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릴 한·미 정상회담을 사흘 앞두고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협상이 막판 신경전에 들어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주요 쟁점이 여전히 교착 상태”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들이 준비됐다면 나도 준비됐다”며 ‘압박성 발언’을 내놓았다.
7월 ‘구두 합의’로 큰 틀의 관세 협정을 맺은 양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를 ‘명문화’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7월 타결된 관세 협정 후속 협의에서 투자 방식과 규모, 배당 구조 등 세부 사항을 놓고 3개월 넘게 줄다리기를 이어왔다. 미국은 한국의 대미 투자 패키지(총 3500억 달러) 가운데 2000억 달러를 직접 투자 방식으로 하되 나머지는 신용 보증이나 보험 형태로 채우길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정부는 “연간 150억~200억 달러 수준이 현실적”이라며 8년 분할 투자(연 250억 달러씩 2000억 달러) 방안을 제시했지만, 미국은 일본의 5500억 달러 투자 사례를 근거로 “직접 현금 투자 비중을 높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4일 국정감사에서 “‘250억 달러씩 8년 분할 투자’ 논의가 있었느냐”는 질의에 “유사한 논의는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구체적 금액은 확인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일부 진전은 있었지만 핵심 쟁점은 여전히 팽팽하게 맞서 있다”고 밝혔다.
핵심은 투자 구조의 ‘현금 비중’과 이익 배분 방식이다. 애초 양국은 투자금 회수 전엔 5대 5, 회수 후엔 1대 9로 이익을 나누는 안을 논의했으나, 최근 미국이 이를 9대 1로 완화하는 수정안을 제시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는 “국가 재정과 외환시장 안정성에 미치는 부담이 크다”며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트럼프 “나는 준비됐다”…정상회담 앞 ‘막판 압박’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 시간) 아시아 순방길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미 관세 협상 타결에 매우 가깝다(being finalized)”며 “그들이 준비됐다면 나도 준비됐다(If they’re ready, I’m ready)”고 말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국 측 결단을 압박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트럼프는 특유의 ‘막판 압박 전술’을 구사하며 협상 주도권을 쥐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일부 외교소식통은 “트럼프의 발언은 정상회담 직전 여론전을 통해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라며 “실질적 합의보다는 정치적 프레이밍의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반면 이 대통령은 이날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투자 방식, 규모, 일정, 손실 분담, 배당 배분 등 모든 사안이 여전히 걸림돌”이라며 협상 교착을 인정했다. 이 대통령은 “합의 지연이 실패를 의미하진 않는다”며 “모든 당사자가 수용 가능한 합리적 결과에 도달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타결 임박” 발언과 이 대통령의 신중론이 대비되며 한·미 간 협상 온도차가 드러난 셈이다.
대통령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관세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바라는 원론적 발언”이라고 선을 그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전날 KBS 인터뷰에서 “여전히 주요 쟁점이 남아 있으며 협상팀이 막판 조정을 위해 분투 중”이라며 “정상회담 계기 타결 여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APEC이라는 특정 시점을 맞추기 위해 불완전한 합의를 추진하진 않겠다”며 “국익 극대화에 초점을 두고 상호 호혜적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가 당초 자신 있게 언급했던 ‘APEC 계기 타결’ 가능성은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부분 합의보다 무리한 타결은 없다”는 신중론이 힘을 얻고 있다.
이번 협상의 또 다른 쟁점은 ‘형식’이다. 한·미는 7월 구두 합의로 25% 관세를 15%로 완화하는 대신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으나 문서화(MOU·공동성명·조인트 팩트시트 등) 절차를 밟지 않아 후속 협의가 지연됐다. 대통령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조인트 팩트시트(Joint Fact Sheet,사전에 문구를 합의해서 발표하는 문서)’ 형태로 합의문을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위 실장은 “안보 분야는 대부분 문안이 합의됐지만 관세 분야는 공통 문서로 정리되지 않았다”며 “합의문 형식은 마지막까지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쟁점을 뺀 합의문이라면 발표하지 말자”는 의견이 있어 ‘불완전 타결’의 부담이 여전히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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