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핵심적인 세계전략은 중국의 위협을 봉쇄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서방주도 국제질서 타파를 위해 결속하고 있는 권위주의 세력, 즉 CRINK(중국·러시아·이란·북한) 국가들을 분리해 현 신냉전 대결구도를 허물어야 한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푸틴 대통령을 달래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을 강권했고, 중동 패권을 노리면서 대리세력들을 키워 차도살인(借刀殺人) 전략으로 이스라엘을 소멸시키려 했던 이란을 때렸으며, 김정은 위원장과의 핵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연신 ‘군불’을 때고 있다.
하지만, 이란을 멈칫하게 만든 것 이외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9월30일 중국의 80주년 전승절 행사에서 시진핑·푸틴·김정은 세 정상은 손을 맞잡고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나란히 서서 미국의 세계전략에 도전하기 위해 오히려 더욱 단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중국과 북한이 열병식을 통해 펼치고 있는 국제정치다.
중국은 열병식을 통해 불굴의 중화(中華)패권 의지와 러·중·북 북방 삼각의 결속을 과시하면서 반미 연대의 확대를 시도했다.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DF-61 신형 ICBM과 JL-3 SLBM, 미국 함대를 위협하는 DF-17 및 YJ-17 극초음속미사일, 위성 킬러로 알려진 HQ-29 차세대 지대공요격체계, 초대형 무인 잠수정 등을 선보이면서 ‘군사강국’의 위상을 뽐냈다. 이 행사에는 이란, 쿠바, 벨라루스, 세르비아 등 반미 국가들은 물론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라오스 등 중국의 영향력을 의식해야 하는 나라들도 대표단을 보냈다. 인도의 모디 총리는 9월1일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에는 참석하고 9월3일 열병식에는 불참했다. 중국은 SCO 회의와 열병식을 통해 이런 ‘회색지대’ 국가들을 반미 연대에 끌어들이는 국제정치를 펼쳤다.
북한도 10월10일 노동당 창당 80주년을 맞아 중·러의 권력서열 2위 등 11개국의 대표단을 초청한 가운데 열병식을 거행하여 내외를 향해 강한 메시지를 날렸다. 김 위원장이 연설에서 미국과 한국에 대한 적대적 입장과 ‘반제국주의’를 강조한 것은 내부 단속과 함께 중국의 반미 연대 확대 노력에 부응한 것이었다. 핵 보유의 정당성을 강조한 가운데 미국을 위협하는 화성-20형 신형 ICBM과 괌을 사정권에 넣는 화성-16형 극초음속 IRBM을 선보인 것은 “우리를 핵보유국으로 대접하라”라는 워싱턴을 향한 외침이었고, 극초음속 활공체(HGV)를 탑재하는 화성-11마형 SRBM, 천마-20형 전차 등을 내보인 것은 고도화된 ‘북한판 핵-재래 통합(CNI) 전력’으로 한국을 군사적으로 압도하겠다는 메시지였다.
중·북의 이런 열병식은 몇 가지를 분명하게 해주고 있다. 각국의 셈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북·중·러는 더욱 강한 결속을 시도할 것이고, 중국은 중국대로 그리고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미국에 도전하는 양상의 국제정치는 계속될 것이다. 북한은 ‘당당한 핵보유국’ 위상으로 미국과 만나려 할 것이며, 군사적 우위를 통해 남북관계를 지배하려 할 것이다. 10월30일 김해공항에서 열린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무역전쟁을 진정시키는 진전이 있었지만, 이런 국제정치의 흐름은 이어질 것이다.
한국의 지도자들과 전략가들은 열병식이 보여주는 흐름을 빈틈없이 읽어내야 하며, 우선은 한미동맹을 추스르는데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10월29일 경주에서 열린 두 번째 이재명-트럼프 정상회담이 거둔 진전이 무역과 관세 문제를 공식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안보와 동맹에 대한 협상은 아직 송두리째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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