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스티브 잡스는 슈퍼볼 광고 한 편으로 기술사의 방향을 바꿨다.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매킨토시 광고 ‘1984’는 IBM의 제국적 질서에 맞서 인간성과 자유를 되찾겠다는 선언이었다. 그 해머 한 방은 ‘기계적 권력’에 대한 반란이자 ‘인간 중심 기술’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40년 뒤, 또 다른 제국의 중심에 선 인물이 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다. 그는 AI 반도체의 제왕이자 GPU 생태계의 설계자, 인공지능 문명의 구조를 짜는 실질적 설계자다. 최근 그는 서울에서 삼성의 이재용 회장, 현대차의 정의선 회장을 만났다. 겉으론 치맥 회동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기술 문명의 패권이 이동하는 시점에서 새 질서를 설계하려는 전략적 동맹의 신호였다.
엔비디아는 지금 AI 문명의 제국이다. 그러나 젠슨 황은 IBM의 몰락, 인텔의 정체, 잡스 이후 애플의 혼란을 기억하며 기술 제국이 완벽에 도달한 순간부터 무너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이 불안정성을 감지하고 먼저 움직였다. GPU 판매를 넘어 “당신 나라의 AI 공장을 설계하겠다”는 국가 단위 전략으로 방향을 틀고, 지난해 9월 영국 총리 리시 수낵과 만나 160억 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를 약속했다. 데이터센터와 스타트업, 대학, 벤처를 아우르는 국가 단위의 ‘AI 산업 설계자’로 자신을 재정의한 것이다.
“영국의 창의성은 AI 혁신의 심장”이라며 상대를 높이고 스스로를 낮춘 그는 곧 서울로 향해 삼성과 현대를 잇는 ‘AI 동맹 외교’를 펼쳤다. 이제 엔비디아는 단순한 반도체 기업이 아니라, 세계 산업 구조를 설계하는 ‘AI 문명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의 리더십은 인간 중심이면서도 철저히 시스템적이다. 젠슨 황은 하루 100통의 이메일을 직접 읽으며, 전 직원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를 행동 중심으로 보고하게 한다. 태그가 달린 이메일을 통해 ‘현장(edge)’의 생생한 신호를 직접 읽고, 측근의 필터를 거치지 않은 날것의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한다. 그는 워크 라이프 밸런스가 아닌 ‘워크 라이프 하모니’를 추구하며 일과 삶을 하나의 유니버스로 통합한다. 반면 내부 정치나 부패에는 단호하다. 잘못은 즉시 공개적으로 처벌하고, 성과만이 평가 기준이다. 사람을 지배하지 않지만, 데이터와 원칙으로 제국을 움직이는 리더다.
이재용과 정의선은 이런 젠슨 황의 제국을 분석하며 새로운 생존 방식을 택했다. 상속된 권력자이지만, 시장은 그들에게 ‘언더독’의 자세를 요구한다. 삼성은 HBM과 파운드리로 AI의 두뇌를, 현대는 모빌리티와 로보틱스로 AI의 몸을 담당하며 엔비디아 제국에 올라탔다. 단기 종속처럼 보이지만, 이는 기술 학습의 시간 벌기이자 ‘세컨드 무버 전략’이다. 상속된 권력자가 언더독의 얼굴로 시대를 배워야 하는 역설, 그것이 오늘의 한국형 2세 리더십이다.
AI 제국의 황제와 산업 제국의 후계자들이 만난 서울의 치맥 한잔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문명의 중심이 다시 인간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대적 전환의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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