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세희 장편소설 ‘라라의 랩소디’는 류가 다르다. 한국에서 지금 쓰이고 읽히는 소설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 주인공의 이름이 라라, 이 라라는 파스테르나크의 문제작 ‘닥터 지바고(1957)’의 여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 라라 안티포바.
시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소설은 시대를 그리면서 시대 속을 헤쳐나가는 여주인공의 영혼의 드라마를 그려내려 한다. 괴테가 한 말이 있다. “개성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성격은 세류 속에서 형성된다.” 기억 속의 이 말을 다시 찾아본다. “재능은 고독 속에서 가장 크게 발전시킬 수 있지만 인격은 세상의 험난한 풍파 속에서 가장 잘 형성된다(Talent is nurtured in solitude; character is formed in the stormy billows of the world).”
주인공 ‘민라라’는 대학의 86학번, 태생적으로 솔직하고 똑똑하고 ‘실행적’이다. 본마음을 어겨 가며 이득 취할 수 없고 그릇된 세태와 타협할 수 없고 선택한 것을 실행에 옮긴다. 올바름을 추구하지만, 그것은 공준된, 통용되는, 가식적이기까지 한 윤리가 아니다.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는 것, 원하는 것을, 한국에서 소비에트 해체 이후의 러시아로, 다시 한국을 오가는 여정 속에서 깊이 갈구한다. 이것은 이 소설 작가가 가리키고자 했을, 어떤 ‘진정한’ 윤리일 것이다.
한 386 여성의 일대기인 이 소설 속 러시아는 어떠한가? 러시아 시인 츄체프가 이렇게 말했다 한다. “이성으로 러시아를 이해할 수 없다.” 어디 러시아뿐이던가? 오늘의 한국도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을 듯하건만.
이 해체와 새로운 구축의 시대 분위기 속에서, 라라는 준호와 동반 유학, 결혼을 하고, 식당 ‘구로반점(=파랑새)’을 운영하고, 모스크바를 찾아드는 인간 군상들을 차례로 접한다. 유학생들, 파견된 사람들, 교회 사람들, 고려인들, 조선족들, 심지어는 탈북여성 ‘진혜’에 이르기까지, 이 소설은 “까레예츠(통칭 ‘한국인’)”와 “유좐(‘남한’에서 온 한국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라라의 재능은 무능력하고도 폭력적인 남자 준호와의 삶 속에서 마모되어 간다. 민담에서나 현대소설에서나 아이는 여성을 남자 곁에 머무르도록 한다. 민담에서 선녀는 날개옷을 입고 승천할 수 있었으나, 현대 여성의 삶은 더 복잡하고도 거칠고 불행한 경로를 밟아가야 한다. 이 경로 속에 시간의 길이와 깊이, 인생의 우여곡절, 신의 시험이 ‘풍부하게’ 응축된다. 작가는 서로 다른 시간대를 요령껏 배치하는 ‘능률적인’ 플롯 속에 한 여성 주인공의 형성을 오롯이 새긴다.
랩소디(rhapsody)란 우리말로 ‘광시곡(狂詩曲)’이다. 자유롭고 즉흥적인 형식의, 감정의 유로(流露) 변화무쌍의 음악이다. 여주인공의 심리 흐름이 그러하다.
이 소설에는 극적 긴장이 흐르는데, 그러면서도 압도적인 것은 모든 삶의 국면들, 사람들과 접촉하여 어둠과 밝음, 슬픔과 기쁨, 메마름과 관능을 함께 연주해 가는 여주인공의 형상이다. 1980년대 후반 세대가 산출한 가장 ‘강력한’, 여성 인물의 소설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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