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에드 마키 등 4명의 상원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난1월30일 서한을 보냈다. 작년 10월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 팩트시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농축·재처리를 지지하고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것을 철회하고 핵무기 잠재력이 되는 원자력 활동을 더 엄격하게 감금하라고 요구한 건의였다. 박정희 시절의 해묵은 역사까지 소환하면서 한국을 ‘민감 국가’로 규정했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시기에 핵무장도 아닌 핵잠재력을 놓고 그렇게까지 요구하는 것은 몰인정하고 비현실적이며 비논리적이고 무책임하다.
우선, 26기의 원전을 운영하는 세계 제5위의 원자력 강국인 한국의 농축·재처리를 계속 봉쇄하라는 것은 몰인정하고 가혹하다. 한국산 APR-1400 원자로가 미국의 설계인증을 획득하고 한국산 소형원자로의 경쟁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금에도 핵연료주기의 두 눈동자에 해당하는 공정을 계속 금하겠다는 발상이 놀랍다. 일본에는 1988년부터 허용해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농축·재처리가 핵무기 제조에도 필요한 이중용도 공정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미국이 비핵 동맹국들에게 핵우산을 제공해왔다는 점에서,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미국의 반확산 정책에 순응했다. 하지만, 에너지 안보가 국가생존의 일부가 된 오늘날에 와서도 한국의 원자력을 절름발이로 묶어 두겠다는 발상은 지나치다.
마키 의원 등의 요구는 전략적으로도 비현실적·비논리적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보면, 미국이 신고립주의 세계전략으로 급선회하는 중에 미·러 간 마지막 핵군비통제조약인 신전략핵감축조약(New START)이 종말을 맞았고, 핵세계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동맹국들에게 제공하는 미 핵우산이 신뢰성을 잃어가는 중에 중국이 미·러와 맞먹는 핵강국으로 부상하고 NPT 체제가 붕괴하여 ‘3강·6중·다약(多弱)’의 무질서한 핵 다극화 또는 무극화 시대가 도래할 기능성도 있다. 중·러·북 ‘북방삼각’의 핵공조는 동북아와 한반도를 더욱 압박할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동맹국의 핵잠재력을 더 강하게 감금하라는 것은 이 지역의 전략적 균형은 안중에도 없는 논리이며, 동맹국들과 함께 다자안보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의 안보와 한미동맹 차원에서도 논리적이라기보다는 모순적이다. 한국은 자주국방에 힘써야 하지만, 핵문제는 자주국방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의 핵보유를 말리면서 대신 핵우산을 제공해왔고, 한국은 핵우산을 철통같이 믿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런가? 지금 미국은 ‘거래적’ 동맹관을 내세우고 있으며, 안보전략서(NSS)와 국방전략서(NDS)를 통해 서반부 이외 지역에 대해서는 ‘불개입’ 또는 ‘개입 최소화’를 천명하고, 동맹국들에게 스스로의 안보를 책임지라고 요구한다.
이런 맥락에서 2025년 미 국방부와 애틀랜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의 ‘가디언 타이거’ 도상훈련(TTX)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중국의 대만 침공에 이어 북한이 한국의 해·공군 기지에 전술핵 공격을 가해도 미국은 대북 핵응징에 나서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그래서 한국의 전략가들은 ‘치명적인 안보공백’과 ‘전략적 마비’를 우려한다. 즉, 임박한 핵 공격과 미국의 침묵 사이에 갇힌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낭패스러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 핵우산의 신뢰성이 뿌리째 흔들리는 데도 한국의 손발을 더 강하게 묶으라는 것이 논리적인 요구일 수가 있겠는가.
요컨대, 한국이 농축·재처리를 확보하고 고도화된 운반수단과 핵추진 잠수함을 운용하는 것은 최소한의 대비책이다. ‘NPT의 범주 내의 평화적 핵주권’이자 한국이 평시에 머금고 있어야 할 핵잠재력이다. 핵추진잠수함도 그렇다. 핵잠은 당장의 대북 견제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다자간 안보협력에서 한국의 역할을 확대하고 미국의 부담을 줄이는 긴요한 무기체계다. 즉, 미국이 원하는 ‘동맹 현대화’의 일부다. 이는 함부로 레드라인을 넘어 핵 무장에 나서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은 미군 3만 7천 명이 흘린 피로 6·25에서 생환하여 동맹의 방패 하에 경제 기적을 이루었다. 한국인들은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저주 ’하에서 동맹이 전쟁 억제에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며, 그래서 동맹에 반하는 핵무장은 한국의 선택이 아님도 잘 안다.
마키 의원 등에게 요청한다. 이재명-트럼프 정상회담의 결과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한국의 원자력 선진화를 돕는 차원에서, 그리고 핵우산이 흔들릴수록 ‘NPT 범주 내의 핵잠재력’을 허용하는 것이 논리적이고 현실적이며 동맹국의 주권을 존중하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농축·재처리를 반대하기보다는 성원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것이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하는 아시아 정책과 ‘한미동맹 현대화’의 방향이기도 하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