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다시 ‘기술’로 승부수를 띄우며 반등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2026년 반도체 시장이 주목하는 변화는 실적 반등이 아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흔들렸던 삼성전자가 설계, 공정, 조직 전반에 걸쳐 근원적 경쟁력 복원에 나섰다는 점이다. 이는 업황 회복과는 결이 다른 움직임이다. 시장은 이를 두고 “삼성이 다시 삼성다워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 중심에는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 전영현 부회장이 있다. 기술을 이해하는 경영자가 전면에 나서면서 반도체 사업의 방향이 다시 기술 중심으로 재정렬되고 있다. 한때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으로 직접 사과문까지 냈던 삼성은 불과 1년여 만에 분기 영업이익 20조 원을 돌파하는 국면으로 반전했다. 무너진 듯 보였던 ‘메모리 왕좌’ 복귀에 파란불이 켜진 것이다.
인정-수습-반전… 1년여의 시간
2024년 상반기 삼성 반도체는 복합 위기에 빠져 있었다. AI 반도체 시대의 핵심으로 떠오른 HBM 시장에서 주도권을 내줬고 파운드리 경쟁력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실적 부진과 내부 조직 경직성 논란까지 겹치며 ‘삼성 위기론’은 현실로 받아들여졌다. 이 시점에서 전면에 등장한 인물이 전영현 부회장이다.
1960년생인 전 부회장은 1979년 서울 정동에 있던 배재고를 졸업한 뒤 한양대 전자공학과와 KAIST(전기전자공학 석·박사)를 거치며 전문성을 쌓았다.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원과 LG반도체 D램 개발팀에서 경력을 시작한 그는 2000년 삼성전자 D램 개발 연구위원으로 합류했다. 이후 메모리사업부장으로서 메모리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갤럭시노트7 화재 위기 당시에는 삼성SDI 대표(2017~2022)를 맡아 5년간 품질 혁신을 지휘했다.
2023년 반도체 15조 원 적자와 HBM·파운드리 고전 속에 깜짝 복귀한 그는 미래사업기획단장을 거쳐 2024년 5월21일 DS부문장으로 전격 선임됐다.
그의 첫 메시지는 낮은 자세였다. 2024년 3분기 잠정실적 발표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경영진이 먼저 인정하는 방식이었다. 이 장면은 삼성 내부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남겼다. 그리고 1년여. 전영현 체제는 인정, 수습, 반전이라는 단계를 밟아왔다.
HBM4 승부수… 삼성식 원스톱 반격
전영현 체제의 방향은 분명하다. 기술로 다시 이긴다는 것이다. 그 상징이 차세대 제품인 HBM4다. 삼성은 이 후속 제품에 10나노급 1c D램과 4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결합하는 방식을 택했다. 메모리와 연산 기능을 하나의 시스템처럼 묶어 최적화하는 구조다. 단순한 성능 개선이 아니라 설계, 생산, 패키징을 한 번에 구현하는 ‘원스톱 전략’이다.
이는 삼성만이 가능한 선택이다.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동시에 갖춘 IDM(종합 반도체 기업) 구조의 강점을 극대화한 결과다. 이 전략은 공정 간의 벽을 허물어 제품 출시 주기를 앞당기는 효과를 낳고 있다. 속도와 전력 효율, 설계 최적화 측면에서 경쟁력을 끌어올리며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 AI 수요에 대응할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1위를 지탱하던 조직 DNA 복원
그가 복귀 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일하는 방식이다. 문제를 드러내고 토론하는 문화, 조직 간 장벽을 낮추는 협업 구조. 이는 과거 삼성 반도체가 세계 1위를 유지하던 경쟁력이었다. 전 부회장은 이를 최우선 복원 대상으로 삼고 있다.
현재 삼성의 또 다른 과제는 노사 관계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을 포함한 DS부문 노조는 3월18일 93.1%의 높은 찬성률로 쟁의권을 확보하며 긴장감이 높아진 상태다.
전 부회장은 직접 교섭 재개를 제안하며 대화에 나섰다. 성과급과 보상 체계를 둘러싼 입장 차는 여전히 크지만 그는 “노측 입장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기술 경쟁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사람이라는 판단이다.
실제 전 부회장은 본인의 보수를 통해서도 책임 경영과 성과 보상 메시지를 동시에 던지고 있다. 2026년 3월 공시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급여 17억1100만 원과 상여 35억 7800만 원 등 총 56억600만 원을 보수로 지급받았다.
이는 전 부회장 취임 후 단행한 체질 개선이 실적으로 증명된 결과다. 삼성전자 DS부문은 2025년 매출 약 130조 원, 영업이익 24조9000만 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 경신을 주도했다. AI 열풍을 타고 고부가 제품 판매를 확대한 성과가 전 부회장의 연봉 56억이라는 숫자에 반영된 셈이다.
검증 후 선택한 집, 대치동 미도아파트
실용성을 중시하고 꼼꼼한 성격의 전영현 부회장은 주거지 선택에서도 그 성향을 드러냈다.
전 부회장이 거주하는 대치동 미도아파트 2차 단지의 해당 세대는 1985년 입주한 전용 201.39㎡(약 61평) 규모의 대형 평형이다. 특히 이 가구가 속한 동은 남쪽으로 양재천을 정면으로 마주해 조망이 탁월하고 주거 환경이 정숙한 단지 내 대표적 ‘로열동’으로 꼽힌다. 대치·학여울 더블 역세권에 단지 내 울창한 수목까지 더해 쾌적한 주거 여건을 자랑한다.
전 부회장은 이 단지의 입지와 환경을 실거주로 검증한 뒤 2014년 2월 아내와 공동 명의로 한 호실을 21억9000만 원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거주지와 평형은 같으나 층수만 다른 세대를 선택할 만큼 주거 만족도가 높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면적의 세대는 2025년 7월 70억 원에 거래됐으며 최근(2026년 3월) 부동산 시장 불안 여파로 시세가 다소 조정돼 63억 원대 매물이 시장에 나와 있다.
미도아파트는 대치동 ‘우선미(우성·선경·미도)’ 중 하나로 불리는 대표적인 부촌이자 재건축 추진 단지다. 준공 40년을 넘겼음에도 철저한 배관 교체와 관리 덕에 주거 환경이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재천 근접, 우수한 학군, 편리한 교통 여건을 두루 갖춰 실수요층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은마에선 자식 자랑 말고, 미도에선 돈 자랑 말고, 선경에선 권력 자랑 말라”는 말은 대치동의 높은 교육열과 재력, 사회적 위상을 보여준다.
미도아파트는 2017년부터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시장 불안으로 지연됐다. 그러다 2021년 11월 ‘신속통합기획’ 대상지로 선정되며 사업이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제도는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도입된 재건축 활성화 정책이다. 이로써 미도아파트는 최고 50층, 총 3914가구 규모의 대단지로 탈바꿈하는 정비 계획을 2025년 7월 확정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학여울역과 바로 연결되는 출입구가 신설되고 역세권 상가 재배치를 통해 보행 친화적 환경을 조성한다. 단지 내 오랜 수목은 최대한 보존하며 대치, 개포 생활권을 잇는 보행교를 설치해 양재천과 어우러지는 주거 공간을 구현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시 질주하는 삼성
대치동의 아파트에서 시작되는 그의 하루는 치열하다. 외부에서는 글로벌 기업과의 기술 경쟁이, 내부에서는 조직 재정비라는 과제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전 부회장은 말한다. “우리 고유의 열정에 다시 불을 붙이겠다.”
그가 말하는 열정은 감정이 아니다. 시스템이다.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함,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문화. 삼성 반도체가 과거 세계 정상에 올랐던 방식 그 자체다. 설계‧생산‧조립 시스템을 모두 갖춘 통합 구조. AI 시대 이 조합은 여전히 강력한 무기다.
삼성의 반등은 이제 막 시작 단계에 들어섰다. 그것이 일시적 회복에 그칠지, 다시금 초격차를 만들어낼지는 단정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삼성이라는 슈퍼카의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그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아는 ‘베테랑 정비사’라는 점이다. 이 사실이 시장에 강한 신뢰를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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