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고인이 되었다. 1945년 10월17일에 나서 2013년 9월 25일에 이곳을 떠났다. 68세. 작가의 역량을 생각할 때 다소 아쉬운 숫자.
오랫동안 이 소설 제목에 홀려 지냈다. 완벽한 제목. 푸른 빛을 사랑하는 내게 ‘깊고 푸른’이라는 수식어는 다른 어떤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었다. 밤은 ‘깊푸른’보다 ‘깊고 푸른’ 밤이 되어야 한다.
1982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비평가 이어령은 최인호도 가둬두고 빨리 써내라 하신 걸까? 그랬을 것 같은 소설. 그가 장편소설 ‘지구인’을 이어령의 ‘문학사상’에 길게도 끌어 겨우 연재를 마쳤던 걸 생각하면 그랬을 것도 같다.
최인호의 문제작을 뚜렷이 확정할 만한 안목이 내겐 없다. 시간이 더 필요하고 영영 최인호 문학의 전체상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체질이나 운명 같은 것이 있다. 비록 최인호 존재에 눈떴다 해도 내게는 시간이 부족하다. 삶의 시간, 정신적 탐구의 시간. 지난 나날들의 궤적을 밑받침 삼아 더 나아가야 할 방향을 위한 시간.
한 가지 생각하는 것. ‘더블’ ‘분신’적 인물들에 관한 것. ‘별들의 고향’에서 최인호는 사람들이 못 알아볼까 봐, ‘문오’로 하여금 ‘경아’는 자신의 분신과 같은 존재라고 여러 번 말하게 한다. ‘내 마음의 풍차’에서도 형과 동생은 한 자아를 둘로 쪼개놓은 형국이다. 흐릿한 기억, ‘지구인’에서도 형과 동생이 나왔고, 이 역시 분신적 존재로 분석 가능해 보였다.
이제 ‘깊고 푸른 밤’. ‘그’는 작가이고 분노에 차 있다. 글을 쓸 수 없다. 미국으로 떠나왔다. 또 한 인물은 이름이 ‘준호’였던가. 대마초 피워 한국에서 곤혹치르고 미국으로 떠나왔다. 고교 선후배인 이들은 미 대륙 서부를 중고 자동차로 떠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였나, 어떤 저택의 한밤 파티에서 광기를 표출하고 숙취도 풀지 못하고 ‘준호’를 깨워 로스앤젤레스로, 바닷길을 경유하러 떠난다. ‘준호’는 대마초를 피우며 운전을 하고 이번에는 그 ‘준호’가 광기를 부릴 차례. 요세미티의 절벽길에서였나, ‘준호’는 자동차 엑셀을 밟아댄다. 가드레일을 들이받고서야 차는 멈춘다.
‘준호’가 건네주는 대마초를 흡입하고 해변, 바닷가로 내려간다.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다. 자신의 패배를 자각하며 자신을 괴롭혀 온 모든 것에 대한 분노가 그제야 사그라든다. 자신을 패배시킨 승리자들에게 용서를 빌며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준호’는 사회의 징벌에도 자신을 교정하지 않고 대마초에 취해 살고, ‘그’는 비록 한밤에 난리를 쳤을망정 냉정한 자기 규제형 인물이다. 여기서도 두 인물이 하나의 최인호적 자아를 둘로 나누어 놓은 듯한 인상을 받는다. 가수와 작가는 이형동질적이다. 절망에 몸부림치는 자와 절망을 유보시키려는 자도 근본에서는 ‘같다’.
‘별들의 고향’에서도 그랬고, ‘깊고 푸른 밤’에서도 최인호의 비정치주의는 은밀하면서도 깊게 정치적이다. 두 분신적 존재를 통해 최인호는 1980년대 초반의 암울한 정치 환경과 통제, 강압의 시대를 자신의 방식으로 ‘증언’한다.
탈출구가 없을 듯한 폐쇄사회를 둘은 떠나왔다.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깊은 밤의 시대를, 그는 두 피난자, 망명자를 통해 그려 보였던 것. 나는 그의 언어, 그 문장들에 감염되고 만다. 그의 문학의 힘이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