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강을 북쪽으로 마주한 초고가 주거지 에테르노청담. 단 29가구. 외부와 단절된 듯한 좁은 진입로, 그 위로 고전 신전을 연상시키는 수직 기둥과 테라스가 층층이 쌓여 있다. 주변은 리모델링 공사로 어수선하다. 스페인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가 설계한 이 건물은 그리스·로마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원(Eterno)의 건축이다.
이 집의 첫 인상은 화려함보다는 묘한 이질감이 든다. 북향으로 펼쳐진 한강은 탁 트였지만 왠지 모르게 차갑고 어둡다. 또한 주변은 청담동이라는 고급 이미지와는 달리 정제되지 않았다. 고립된 요새처럼 보이는 이곳은 공화국 만세라는 한 경영자의 철학과 묘하게 어긋나 있다.
이 공간에 사는 인물은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다. 그는 2021년 약 130억~150억 원에 이 주택을 분양받았다. 현재 시세 기준 100억 원 가까운 차익이 예상된다. 이 집은 한 창업자의 성공 스토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치과의사서 벤처 기업가로… 문제를 다시 묻다
이승건의 시작은 탄탄대로였다. 1982년생으로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영동고를 거쳐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치과의사. 그는 야심가였다. 2011년 보장된 미래 대신 창업이라는 가시밭길을 택했다. 이후 2년여간 모바일 SNS 울랄라포스트, 투표 플랫폼 다보트 등 8개의 서비스를 내놓았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2억 원의 통장 잔고는 바닥을 보였고 함께한 팀원들에게 미안함만 쌓여가던 시기였다.
그가 찾은 돌파구는 관찰과 질문이었다. 그는 벼랑 끝에서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팀원들과 함께 한 달간 사람들이 일상에서 스마트폰을 어떻게 쓰는지 관찰하던 중 가장 사소하지만 지독하게 반복되는 고통을 발견했다. 바로 송금이었다.
공인인증서, 액티브X, 보안 카드 입력. 당시 금융은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사용자에게 불편을 강요하고 있었다. 이승건은 이를 보안이 아닌 사용성의 문제로 봤다. “전화번호만으로 돈을 보낼 순 없을까?” 이 사소한 질문이 8전 9기 끝에 탄생한 토스의 시작이었다.
토스의 위상 변화
단순히 돈을 보내는 기능을 넘어 토스는 금융의 문턱을 무너뜨렸다. 금융을 놀이터로 바꾼 토스의 방식은 금융을 딱딱한 서비스가 아니라 즐거운 경험으로 재해석했다. 그 핵심에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 있다.
버튼 하나로 즉시 이자를 받는 구조, 미션을 수행하면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 만보기와 같은 헬시프레저 참여형 콘텐츠. 이러한 장치들은 사용자가 금융 업무가 없는 날에도 습관적으로 앱을 열게 만들었다.
금융을 해야 해서가 아니라 재미있어서 들어오게 만드는 구조. 이 전략은 사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데이터를 축적하며 모든 금융 생활을 하나로 잇는 슈퍼앱 생태계로 이어졌다. 과거에는 토스가 특이한 시도를 하는 도전자였다면 현재는 기존 거대 금융사들이 토스의 UX(사용자 경험)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이것이 2026년 4월 기준 토스가 3000만 가입자와 2600만 월간 활성 이용자(MAU)라는 압도적 숫자를 확보하며 대한민국 금융 앱의 표준이 된 배경이다.
‘공화국 만세’라는 이름의 무게
토스의 진짜 이름은 비바리퍼블리카(Viva Republica)다. 프랑스 혁명기의 구호에서 따온 ‘공화국 만세’라는 사명은 의미심장하다. 누구나 금융에 평등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신념, 정보와 자본의 장벽을 허물겠다는 지향점이 담겨 있다.
비바리퍼블리카는 토스뱅크, 토스증권, 토스페이먼츠 등 핵심 금융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 지주회사로 거듭났다. 토스 생태계에서 중요한 전략은 복잡한 금융 권력을 사용자에게 재분배하는 실험이다. 그 결과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게 바로 투자 영역이다.
토스증권은 2021년 3월 출범 후 짧은 시간 안에 업계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소수점 매매, 실시간 자동 투자, 직관적인 모바일 UI, AI 기반 실적 번역 서비스를 통해 전문가의 영역이던 해외 투자를 전 국민, 이른바 서학개미들의 일상으로 끌어내렸다.
그 성과는 숫자로 증명된다. 2026년 기준 토스증권의 누적 가입자 수는 650만 명을 돌파했고 영업이익은 4500억 원 고지를 넘어섰다. 특히 전체 수익 중 해외주식 수수료 비중이 50% 이상을 차지하며 업계 1위권의 수익성을 확보했다. 덕분에 출범 3년 만에 분기 및 연간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비바리퍼블리카 전체 손익 개선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초고속 성장은 동시에 숙제를 남긴다. 특정 수익원(해외주식 거래)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대규모 트래픽을 감당해야 하는 시스템 안정성 논란, 성숙기에 접어든 국내 시장 확장 과제가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집을 팔겠다”… 만우절에 던진 질문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의 거주지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최고급 공동주택 ‘에테르노청담’이다. 그는 2021년 9월 해당 단지의 한 호실을 분양받았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해당 주택은 전용면적 230.67㎡(약 70평) 규모다. 당시 분양가가 3.3㎡(1평)당 1억6000만 원에서 2억 원 수준으로 매입가는 약 130억 원대로 추정된다. 현재 동일 평형의 매물 시세는 약 230억 원 안팎까지 올라 있다. 단기간에 100억 원에 가까운 평가 차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에테르노청담은 지하 4층~지상 20층, 1개 동 총 29가구로 구성됐다. 전 가구에서 한강 조망이 가능하며 가구당 5대의 여유로운 주차 공간을 제공한다. 올림픽대로와 영동대로가 인접해 교통 편의성이 높고 청담역과 압구정로데오역 등 대중교통 접근성도 확보된 입지다.
금융의 장벽을 낮추겠다는 사명 아래 성장해온 이 대표는 최근 본인의 주거 자산을 경영 철학과 연결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는 2026년 4월 1일, 사내 게시판을 통해 소유 중인 주택을 매각해 직원 100명의 주거비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러한 선언은 과거 그의 보상 체계와 궤를 같이한다. 이 대표는 2022년 4월 직원들을 대상으로 테슬라 차량 지원 보상을 실시한 바 있다. 또한 직원 해외 워크숍 등 파격적인 복지 정책을 시행해왔다. 이번 주거비 지원안 역시 내부 논의를 거쳐 직원 10명 대상 1년 지원 등 현실적인 실행 안으로 구체화 돼 진행 중이다.
IPO 대박 노린다
시장에서는 이 대표의 이런 행보를 두고 자산 환원을 통한 기업 문화 강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기업가치 10조~20조 원 규모의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창업자가 직접 본인의 부동산 차익을 조직에 재분배하는 모습이 투자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로 전달될지가 관전 포인트다.
투자자는 숫자로 기업을 검증한다. 그러나 마지막 결정을 움직이는 건 대중이 환호할 수 있는 이야기다.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그가 외쳐온 공화국 만세는 단순한 이름이었나, 아니면 실재하는 밸류였나. IPO는 숫자가 아니라 이런 신뢰를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북향의 차가운 한강과 공사 중인 어수선한 주변 풍경 위에 선 그의 집처럼 토스 역시 지금 화려함과 불완전함 사이에서 자신의 진짜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순간에 서 있다. 공화국의 깃발을 올린 지 15년. 3000만 가입자를 등에 업은 비바리퍼블리카의 실험은 이제 지속 가능한 금융 혁신이라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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