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사회 곳곳에서 돈만을 좇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삼성전자 노조다. 거기에는 동료의 안위도, 공동체의 미래도 안중에 없다. 누군가는 파업 기간에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누군가는 슬쩍 수당을 챙긴다. 투쟁 구호보다 각자의 잇속 계산이 앞선다.
최근 삼성전자 노조의 행태는 탐욕의 민낯을 보여준다. 지도부는 쟁의행위 찬반 투표 과정에서 직책 수당 신설안을 끼워 넣었다. 소수 운영진이 막대한 조합비와 수당을 좌지우지하는 구조라는 비판도 있다. 현장에서는 “연차 쓰고 여행가는 게 이득”이라는 말도 나왔고, 일부 지도부는 “삼성전자를 없애버리자”는 극단적 발언도 있었다.
총파업 직전까지 치달았던 노사 갈등은 결국 정부 중재 속에 극적으로 봉합됐다. 봉합이 곧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합의로 삼성전자 노사는 영업이익 연동형 특별성과급 제도를 도입했다. 영업이익 15% 요구는 어느새 ‘영업이익 N%’논리로 확장됐다. 결국 사업 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삼는 선에서 합의했지만, 영업이익과 성과급을 직접 연동하는 구조가 앞으로 더 큰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도 남겼다.
영업이익은 특정 집단만의 성과가 아니다. 투자자·기술력·협력업체·국가 지원이 함께 만든 결과물이다. 불과 3년 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한 분기에만 4조 6000억 원 적자를 냈다. 그때 직원들이 월급 반납을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성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려면 손실과 미래 투자에 대한 책임도 함께 논의되어야 균형이 맞다.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미래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다. 용인·평택 클러스터에만 2035년까지 600조 원이 투입된다. 오늘의 영업이익은 미래 기술과 일자리를 위한 재원이기도 하다. 과거 스웨덴 노조는 당장의 임금 인상보다 기업의 미래 투자와 고용 안정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지금처럼 미래 재원을 당장의 성과급으로 소진하겠다는 요구는 다음 세대의 일자리를 갉아먹는 탐욕이라 할 수 있다.
‘손자병법’은 이렇게 경고했다. “합어리이동, 불합어리이지. 노가이복희, 온가이복열, 망국불가이복존, 사자불가이복생(合於利而動, 不合於利而止. 怒可以復喜, 慍可以復悅, 亡國不可以復存, 死者不可以復生).”
즉, 종합적으로 이익에 부합되어야 움직이고, 그렇지 않다면 멈춰야 한다는 뜻이다. 분노와 성냄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지만, 망한 국가나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삼성전자 노사는 극단적 충돌 직전에 가까스로 타협점을 찾았다. 눈앞의 이익 투쟁에만 매몰되어 기업 경쟁력과 산업 생태계가 무너진다면 그 피해는 쉽게 회복될 수 없다. 갈등은 봉합될 수 있지만, 무너진 회사와 사라진 일자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돈은 중요하다. 그러나 돈만 계산하는 순간 공동체는 무너진다. 반도체 경쟁은 한순간의 방심과 분열만으로도 주도권을 잃을 수 있는 시장이다. 손자병법은 단순히 이익을 좇으라는 것이 아니다. 전체를 보고 오래 살아남으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동이 아니라 미래를 보는 냉정함이다. 회사가 쓰러진 뒤에 쥐어질 돈다발이 무슨 소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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