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을 읽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최근 서울행정법원의 한 판결문은 예외였다. 첫 문장부터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남겼다. "당신이 이겼습니다." 마치 한 사람에게 건네는 편지 같았다.
필자도 오래전 판결문을 받아 든 적이 있다. 첫 문장은 "아래와 같이 주문한다"였다. 순간 '주문'이 무슨 뜻인지 몰라 사전부터 찾아봤다. 일상에서 주문은 음식을 시키거나 물건을 요청하는 말이다. 그런데 법정에서는 '판결한다'는 뜻이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냥 "판결합니다"라고 쓰지 않을까.
법률용어만 그런 게 아니다. 공공기관의 안내문, 행정문서, 보험약관, 병원의 설명서까지 우리는 쉬운 것도 어렵게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설명을 위해 만든 문서가 정작 읽는 사람에게는 가장 어려운 글이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법의 언어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번 판결은 지적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단어를 사용하고 그림까지 넣은 점이 특이하다. ‘원고 승소’ 대신 ‘당신이 이겼습니다’라고 썼고, 판결 이유도 당사자의 눈높이에 맞춰 친절하게 설명했다. 사실 법률용어 앞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가릴 것 없이 누구나 길을 잃기 쉽다. 이번 판결은 장애인을 향한 배려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공공의 언어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 모두에게 던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제도의 이름이다. '이지리드(Easy Read)'.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읽기 쉬운'이라고 해도 의미는 충분하다. 쉬운 말을 쓰자고 하면서 또 다른 어려운 말을 덧붙이는 모습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어렵게 표현하는 일'에 익숙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인지도 모른다.
이번 판결의 진짜 변화는 쉬운 말을 썼다는 데 있지 않다. 사법부가 처음으로 '누가 이 글을 읽는가'를 먼저 생각했다는 데 있다. 법률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본 것이다. 그래서 '원고'는 '당신'이 되었고, 판결문은 법률가를 위한 문서에서 당사자를 위한 문서가 되었다.
우리는 정의를 흔히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법은 판결 내리는 데서 끝나서는 충분치 않다. 그 판결이 당사자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이해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완성된다. 이번 판결이 특별한 이유는 결론이 아니라, 그 결론을 전하는 언어의 온도였다.
이것은 법원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공공기관이 새겨야 할 자세다. 행정기관의 안내문도, 병원의 설명도, 보험. 은행의 약관도 마찬가지다. 문서를 작성하는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그것이 공공서비스의 출발점일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정의를 한 치의 기울어짐 없는 저울에 비유한다. 그러나 정의는 저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저울을 건네는 손에도 온기가 있어야 한다.
이번 판결이 남긴 것은 새로운 판결문 양식이 아니다. 공정함과 따뜻함은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이겼습니다." 이 한 문장에는 사람을 먼저 생각한 판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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