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마디에 주먹이 얼굴로 날아들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에게 폭행당한 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말이 비유가 아니라 실제 그렇다는 걸, 라라는 깨달았다. 두개골이 깨지는 듯하더니, 푸른 하늘이 뇌우에 쪼개지는 듯 번쩍이는 게 보였다. 창 너머 하늘은 파란빛이 아니라 노랬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보았던 일, 남편한테 폭행당하는 여자 이야기가 실제라는 것. 그것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앞에서 지금 힘으로 저항할 기운조차 상실한 채, 거대한 체구의 낯선 남자, 러닝셔츠를 입고 있는 저 남자와 같은 방 안에 있는 것. 그 모든 것이 가증스럽고 혐오스럽고 두려웠다.
절-망-!
멍해서 쓰러져 가만히 있는 그녀를 보고, 그도 뭔가 심각하다는 걸 눈치챘다.
“미안해, 잘못했어. 아이고, 이를 어쩌냐. 아프니?”
라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이 남자가 지금 내 옆에서 아양을 떨듯 달래려 하고 있을까. 저 미안하다는 말과 저 비루한 눈웃음을 왜 나는 참고 견뎌야 하나.’
그녀는 무심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렇게 망망한 눈동자를 한 라라에게 준호는 덮치듯 덤벼들어 옷을 벗겼다. 라라는 저항도 잊었다.
얼마 후 자기 몸 속에 들어가 헐떡이는 그를 그녀는 아무 저항 의지도 상실한 채 견뎠다. 자신이 작은 체구의 약한 여자라는 게 이때만큼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나는 없다, 나는 죽었다.’
동거 이후 그동안 라라와 준호는 거의 매일 아침저녁으로 섹스했다. 그의 성욕은 식을 줄 몰랐다. 게다가 인간의 몸이란 게 얄궂었다. 이성의 입김과 손길이 닿으면 의지와 상관없이 반응하는 것이 육체였다. 젊은 육체는 더더욱 그랬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그가 싫었어도, 이 순간처럼 마른 나무토막처럼 굴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 행동을 한 직후 여자를 겁탈하듯 안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남자를 그녀는 그 후 벌레 보듯 쳐다보게 되었다. 남자로서의 존재 가치를 상실한 물체를 보듯 바라보게 된 거였다. 아직 싸울 만큼의 손톱만한 관심은 남아있었다. 그러나 한번 시작된 폭력은 다시 반복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주말 오후, 라라는 샤워를 하다가 자지러졌다. 왼쪽 어깨부터 팔 절반이 시커맸다. 순간적으로 이유를 몰라 멍해졌다가, 다음 순간 영화 속 장면처럼 페이드인되는 것이 있었다.
전날 다시 말다툼 끝에 준호가 라라를 향해 커다랗고 두꺼운 하드커버 어학사전을 집어던졌다. 그 거구의 손에서 그녀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그것을 막기 위해 반사적으로 팔을 쳐들어 올렸다. 머리 대신 쳐들려 올려진 어깨를 강타하면서 사전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무렇게나 펼쳐진 채 나뒹구는 그 사전과 그를 멍하니 그리고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충격에 떠밀리듯 라라는 쓰러지며 주저앉았었다.
그날도 울긴 했다. 그녀가 멍하고 얼음처럼 싸늘해진 눈빛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본 그는 당황했다. 덤벼들지 않는, 아니 오히려 조용하고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는 그녀에게 그는 호들갑스럽게 사과하며 다가와 끌어안았다.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그녀를 보자, 또, 섹스를 했다.
무기력에 빠진 무저항을 합의라고 착각한 걸까. 그녀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먼 허공만 바라보았다. 그는 저항 의욕조차 잃은 그녀를 다시 범했다. 폭행 직후의 섹스는 강간이다. 왼쪽 어깨를 가득 채운 시커먼 멍은 그 강간의 흔적처럼 크고 선명했다.
욕실 거울 앞에서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에 감춰진 뜨겁고 굵은 눈물이 라라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라라는 이날 가슴 속에 두 번째 참을 인忍자를 새겼다. 최후의 忍자가 남았을 뿐이었다. 모든 것이 바로 잡히기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일 것이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