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
“라라? 당신, 혹시 우리 러시아에 친척이 있나요?”
러시아어 교수 베라 이바노브나가 수업 시간에 그녀의 이름을 묻더니 흥미를 느낀다. 예비학부 때부터 시작된 이 질문은 언론학부에 올라와서도 계속되었다. 모스크바대학 언론학부에 서울에서 온 학생 이름이 러시아의 위대한 문학 작품 ‘닥터 지바고’의 여주인공 이름과 같다는 사실이 그들을 즐겁게 만든 모양이다.
교수들뿐 아니라, 거리의 택시 운전사들도 ‘닥터 지바고’를 언급하며 동양 여자 라라를 반가워했다.
“당신은 우리의 라라군요. 지바고의 라라는 매력 있는 인물이죠.”
이곳에 온 직후인 1991년 8월, 공산주의로 회귀하려는 보수파 세력과 동조 군인들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을 당시, 어떤 정보도 제대로 얻을 수 없어서 탱크가 다니는 거리로 나서야 했던 라라는 미소 지으며 인사하는 모스크바 사람들 속에서 러시아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떨쳐내곤 했다.
라라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꺼리던 시절이 있었다. 유년 시절 그녀는 아이들의 놀림의 대상이었다.
“라라! 너는 왜 그리 이름이 이상하니. 무슨 이름이 그래?”
왜 나에게 다른 애들처럼 좀더 예쁜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을까. 지희, 소희, 영애, 수연, 민아, 은하…… 예쁜 이름이 얼마든지 많은데.
이름에 대한 서운함이 사라진 것은 중학 시절이었다. 라라가 세계적 명작의 주인공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언젠가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가 아버지와 결혼한 이유가 그의 청혼의 말 때문이었다는 걸 알고는 더욱 그랬다.
“나는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다. 있는 것이라곤 튼튼한 몸과 마음뿐이다. 내 마음을 받아준다면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
작은 시골학교 교사 초년생이던 아버지의 청혼에, 6‧25때 양친을 잃고 친척 집에서 자란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결혼을 약속했다고 한다. 그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첫 아이가 라라였다는 거였다.
나이가 들면서 완고한 사람이 되어갔지만 아버지는 젊었을 때 무척 진취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소중한 첫 아이에게 뭔가 시대를 앞서가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단다. 더구나 아버지가 아이의 눈동자가 어찌 이리 별처럼 밝게 빛날 수 있을까, 감동하며 ‘아름답고 아름다우라’고 나나라고 지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 프랑스 소설에서 나나가 창녀의 이름임을 기억해내고는 라라로 바꿔 불렀다는 것이다. 한자는 필요한 경우 ‘아리따울 나’ 자로 쓰고, 한글로 쓸 때는 라라로 썼다.
평범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던 라라는, 이름이 가진 사연이 나름 특별해서 자기 이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이름이 러시아에서 대문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 주인공 이름과 같다는 이유로 환영받자, 라라는 자신이 모스크바의 히로인이 된 것만 같았다.
명칭은 때로 메타포나 상징일 때가 있다. 라라의 운명이 에밀 졸라가 창조한 희대의 창녀, 나나를 닮은 듯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나나Nana가 아니라, 나나娜娜이고 라라Lara였다.
“나는 당신이 프랑스 나나보다는 러시아 라라이길 바래요.”
라라의 이름에 담긴 사연을 들은 러시아의 문학 교수는 말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