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많이 뛰는 사람이 이기는 경기라고 믿기 쉽다. 더 많이 뛰고, 압박하고, 움직여야 승리한다고 생각한다. 감독들은 선수들에게 활동량을 요구하고, 팬들은 땀에 흠뻑 젖은 선수를 더 성실한 선수로 기억한다. 그런데 세계 최강 리오넬 메시는 경기 시간의 63%를 걷는다. 스프린트는 고작 0.1%에 불과하다. 얼핏 그는 누구보다 느슨하고, 게으른 선수처럼 보인다.
하지만 승부의 결정적 순간에 이야기는 달라진다. 메시는 단 3초 만에 수비를 무너뜨리고 골을 만든다. 경기의 대부분은 산책하듯 걷지만, 승부는 찰나의 질주로 끝낸다. 우리는 그 '3초'에 감탄하지만, 승부는 그 이전의 '63%'에서 준비되고 있었다.
손자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善戰者, 其勢險 其節短, 勢如彍弩 節如發機(선전자, 기세험 기절단, 세여확노 절여발기)” 전쟁을 잘하는 사람은 힘을 충분히 축적해 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짧고 단호하게 움직인다. 마치 활시위를 끝까지 당겨 놓았다가 한순간에 화살을 날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여기서 손자가 말하는 '세(勢)'란 “勢者, 因利而制權也 (세자, 인리이제권야)”이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요소를 포착하고, 최대한 활용해 상황을 주도하는 힘이다. '권(權)'은 권력이 아니라 저울추(權)에서 유래한 말로, 상황에 따라 무게를 달리하는 유연한 판단이다. 따라서 '제권(制權)'은 언제 공격하고, 언제 기다리며, 어디에 힘을 집중할지 판단하고 운용하는 능력이다.
메시는 이 '세(勢)'를 만드는 선수다. 그가 걷는 동안 쉬는 것이 아니다. 상대 수비의 간격을 살피고, 빈 공간을 읽고, 누구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지 관찰한다. 과르디올라는 "메시는 10분쯤 지나면 머릿속에 경기 지도를 완성한다"고 말했다. 그의 산책은 정보 수집이고, 공간 분석이며, '세(勢)'를 만드는 시간이다. 그리고 세가 무르익는 순간, 그는 3초의 폭발력으로 승부를 끝낸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많은 조직은 빨리 움직이는 데 집중한다. 회의를 앞당기고, 의사결정을 재촉하고, 경쟁사보다 먼저 시장에 뛰어든다. 그러나 빠른 실행이 곧 승리 전략은 아니다. 손자가 말한 '세(勢)'는 무조건 먼저, 열심히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여야 할 순간을 만드는 능력이다.
AI 반도체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HBM 전략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기술을 축적하며 AI시대라는 변곡점을 읽고, 결정적 순간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활시위를 오래 당긴 뒤 한순간에 화살을 날린 것과 같다. 기업의 경쟁력도, 개인의 성과도 이처럼 '얼마나 바쁘게'가 아니라 '언제 승부를 걸 것인가'에서 갈린다.
메시는 단 3초 만에 승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그 3초는 그 이전에 이미 완성된다. 활은 오래 당기지만 화살은 한순간이다. 승부를 결정하는 것은 마지막 질주가 아니라, 그 질주를 가능하게 한 '세(勢)'의 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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