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널리즘의 역사 수업 시간에 알렉세이 파블로비치 교수가 물었다.
“저널리즘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직업이죠. 그러면 가장 오래된 직업은 무엇인지 누구 아는 사람 있습니까?”
“매춘입니다.”
라라가 러시아어로 대답하자, 모두들 놀란 표정으로 라라 쪽을 바라보았다.
“오호, 놀랍군요. 러시아어 공부한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어려운 단어를 알고 있네요. 맞아요. 창녀죠. 매춘이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확인되고 있습니다.”
여기 언론대학은 러시아 혁명의 산실이었다. 19세기 러시아 인텔리겐차의 사상 논쟁은 저널들을 통해서 이뤄졌다. 세계사를 뒤바꾼 사람들의 혼이 깃든 공간. 그들의 사유와 사상이 멈춰진 시간. 그 역사의 현장을 그녀는 매일 걸어다니는 것이다.
어떻게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펜의 힘이 필요하다고 라라는 생각했다. 자신의 꿈이 현실이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멋진 일이다. 권력의 심장, 크레믈린과 마주보고 있는 곳, 언론대학은 참으로 상징적인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권력에 맞서 저항도 할 수 있고, 권력의 친구도 될 수 있고, 권력의 시녀도 될 수 있는 위치다. 스크바국립대학 본관이 위치한 레닌 언덕을 지금은 원래 명칭인 참새 언덕으로 바꾸었지만,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지대인 그곳에 학문의 전당 대학이 위치한다는 사실 역시 러시아 인텔리겐차에 대한 신뢰를 갖게 했다.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굽어보고 살피게 만들면서 동시에 세상을 품에 안는 꿈을 꾸게 만드는 곳에 대학을 짓는다는 사실은 의미가 적지 않았다.
사람들이 스탈린을 독재자라고 욕해도 모스크바대학교 하나만 보면, 그 건축의 명령자인 스탈린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게 한다. 모스크바대학 대강당을 보면 학문의 전당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된다. 교육에 대한 순수함과 그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이 무작정 정적이라고 숙청했을까, 그런 의구심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소련에서 스탈린은 한국의 박정희와 대중적 위상이 비슷했다. 나라를 일으킨 독재자. 쿨트 리치노스치. 우상적 존재. 부정적 이미지는 어쩌면 베리야 등 측근의 과잉 충성과 정적들 간 권력 경쟁 때문이었을지 몰랐다.
언젠가 라라는 박기헌과 그 테마를 놓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이런 민감한 테마의 대화가 통할 사람은 기헌뿐이었다. 기헌은, 닥터 한이 서울로 귀국한 후 라라가 유학생 모임에서 알게 된 선배뻘 박사과정 유학생이었다.
“독재자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어에서 왔다. 전시 등 비상 상황에서 정상적 통치가 어려울 때, 모든 권한을 위임해 통치를 위탁받은 군사령관을 말한다. 독재자란 말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과민 반응 아닐까. 모든 자연적 역사는 인간의 상황과 시대정신이 낳은 결과일 거야. 박정희가 군사혁명을 위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어쩌면 이런 원칙에 토대한 것일 수 있다. 그는 그 시대에서는 선진 군사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사회주의 국가에서 종신직이 일반화된 것은, 좋은 리더라면 얼마든지 장기 집권이나 종신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한 것 아닌가. 그것이 어째서 비민주적인가. 자질이 안 돼도 누구든 원하면 나와서 거짓 선동으로 속여서라도 권력을 얻겠다고 하는 것이 어째서 민주적인가. 원래 데모크라시는 아무나 통치나 권력을 갖는 것을 의미한 적이 없다. 오직 현대에 이르러서 뿐이지. 발상지 그리스에서조차 데모스라는 인민의 자격은 엄격히 제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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