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헌과 민라라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자격 제한이 엄격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지. 물론 지금과 그 당시의 제한 기준은 달라져야겠지만, 누가 누구를 판단할 수 있느냐는 이유로 자격 무제한을 말하는 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파괴적 발상이라고 봐. 내가 보기에는 지금과 같은 단지 다수결에 의한 결정을 하는 방식이나 대중추수적인 민주주의는 절대선이 아니라 필요악일 뿐이야. 인간이 너무나 다양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 택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뿐이지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아서가 아니란 것이지. 민주제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선하게 전제해. 그것이 그러나 정당한가. 우리는 악마 같은 인간도 적지 않게 보게 되는데.”
기헌의 논리에 라라는 공감의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운동의 중심에 있었지만 기헌의 학문은 편중되지 않았다. 흔치 않은 사람이었다. 대부분 외눈박이로 살기 쉬웠다. 기헌은 전방위적 지식의 보유자로 아주 박학다식한 사람이었다.
라라도 입을 열었다.
“공산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그 이론에 입각한 언론 교육도 파국을 맞은 후, 새로운 이론이 정립되지 않은 진공의 공백기를 통해 그 자체로 소련의 옛 모습을 추측할 수 있을 듯해요. 새로운 방향 모색을 위한 그들 인텔리겐차의 치열한 고뇌와 방황을 지켜보니, 러시아 인텔리들은 존경할 만한 존재들입니다. 러시아 학문은 그들의 겨울밤처럼 깊은 거 같아요. 19세기 인텔리겐차의 가난한 나로드, 인민 다수 대중을 구하기 위한 사상적 고뇌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낳은 힘이라는 걸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죠.”
기헌에게도 라라는 말이 통하는 좋은 후배였다.
“인간은 자유의지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누구건 태어난 이상 그 사회에서 정상적이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기본이고 핵심 사상일 것이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그 방법론일 뿐이다.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실험 결과, 공산주의만으로는 선과 행복 추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라라도 공감을 표했다.
“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사회주의냐, 민주주의냐도 방법론의 문제죠. 방법은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적용되어야 해요. 방법론에 목숨 거는 것은 어리석죠. 그래서 80년대 그 시절 대학가의 분신 같은 극단적 행동과 그 숭배가 목구멍에 걸린 복숭아씨처럼 숨 막히고 고통스러웠어요. 자신의 생명보다 중요한 이데올로기, 그것은 가장 위험한 위선처럼 보이거든요. 그걸 종용하고 권유하는 사회는 정의를 원하는 사회가 아니라고 봐요. 젊은이들에게 죽음을 권하는 사회, 죽음을 위한 사회는 폭력 숭배를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러시아에 와서 보니, 한국의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은 소련의 이론을 차용하고 있었네. 그러나 그들은 분신 같은 극단주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토론과 논쟁을 통해 이뤄진다. 대화와 토론의 전통이 부족한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이방의 이데올로기가 교조적 신앙으로 변질된 거란 생각이 드네.”
“동감이에요. 방법론을 신앙화하는 것은 몰상식한 무모함이에요.”
라라와 기헌의 대화는 둘만 있을 때나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나 그런 식이어서 다른 사람들은 그냥 각별한 선후배 사이로만 보았다.
그러나 라라의 남편 전준호만은 박기헌을 질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들 두 사람 사이엔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남자의 육감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동물적 감각으로 라라와 기헌의 애정의 향기를 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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