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개인투자자는 ‘개미’다. 1980년대 후반 신문에서도 ‘개미군단’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게 유래다. 한 마리는 작지만 모이면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개미가 물렸다’ ‘개미털기’ ‘구조대’처럼 작고 힘없는 쪽의 이미지가 더 익숙하다.
해외도 비슷하다. 브라질에서는 개인투자자를 상어에 먹히는 정어리에 비유하고, 중국에는 끊임없이 자라 자금을 수확당하는 부추가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소액투자자를 소떼, 한국식으로 하면 흑우로 빗댄다. 미국의 ‘엄마 아빠 투자자(mom-and-pop investor)’는 표현이 그나마 순하다.
정어리·부추·소떼라는 별명에는 개인투자자를 시장의 약자로 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작거나, 잡아먹히거나, 반복해서 털린다. 몇 만 원을 투자하는 소액주주도, 수억 원을 굴리는 개인도 기관이나 대주주 앞에서는 개미가 될 수 있다. 금융시장의 약함은 자산 규모보다 상대적인 힘의 차이에 가깝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약자 이미지는 정치권에서 힘을 얻는다. ‘개인투자자’는 하나의 이해집단처럼 들리지만 ‘개미’에는 거대 자본에 맞서는 평범한 사람의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시장에서는 ‘개미’였던 개인투자자가 정치에서는 ‘서민’과 비슷한 보호 대상이 되는 셈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1400만 개미’는 반복해서 호명됐다. 코스피 부흥과 주주권 강화부터 세제까지 개인투자자는 주요 정책 대상이 됐다. 최근에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을 둘러싼 논란도 커졌다.
주주일 때는 더 들어오라고 하고, 크게 다칠 것 같으면 말려야 한다.
미국은 이 문제에 먼저 직면했다. 성인의 절반을 훌쩍 넘는 사람이 주식을 직접 또는 연금·펀드를 통해 보유한다. 주식은 월가 투자자만의 자산이 아니라 중산층의 노후자금과도 연결돼 있다. 미국에서도 주식 보유는 대중화됐지만 금융자산 상당 부분은 상위 계층에 집중돼 있다.
한국도 퇴직연금이 500조 원을 넘어섰고 ETF와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돈이 이동하고 있다. 앞으로는 퇴직연금과 ETF로 수억 원을 보유한 은퇴자와 이제 막 몇 십만 원을 투자한 청년을 모두 같은 ‘개미’라고 부르냐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기관 앞에서는 둘 다 개미지만 서로의 처지는 같지 않다.
부동산에서는 이미 집 한 채를 가진 사람을 한 덩어리로 묶기 어려워졌다. 집값이 오르고 무주택자와의 자산 격차가 벌어지면서 같은 한 채를 두고도 ‘서민의 집’과 ‘자산보유자의 재산’이라는 시선이 갈렸다.
주식 보유가 더 대중화되면 ‘주식을 가진 사람’을 모두 서민이나 약자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도 커질 수 있다. 개인투자자가 많아질수록 ‘개미’라는 이름만으로 보호 대상을 가르기는 어려워진다. 자본시장 대중화가 계속된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개미 전체를 보호하는 일이 아니라, 개인투자자 가운데 누가 실제로 더 취약한지 가려내는 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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