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사람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저널리스트인 키셀료프를 제외한 다른 언론인들과는 인터뷰를 가질 수 있었다. 파르표노프도 만나서 대화를 나눴다. 외국인 학생이 러시아 변혁기에 러시아 저널리스트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가지고 인터뷰를 청하자 그들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렇게 솔직하게 속내를 이야기하는 걸 어디서도 본 일이 없다. 아마도 외국인 여학생이 논문을 쓰기 위해 인터뷰를 청하니까 그럴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게 우리의 추측이다. 가치 있는 자료다.”
논문 발표회에 참석한 교수들이 그렇게 말했다.
교수들 같은 러시아 인텔리겐차들과의 교류는 라라에게 끊임없는 활기를 불어넣었다. 지도교수의 깊은 애정과 관심 속에서 라라는 활짝 피어날 수 있었다.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저승사자였고 러시아 학생들에게조차 혹독하고 엄하기로 악명높은 미론스키 교수로부터 라라는 최고점을 받은 유일한 외국인 학생이 되기도 했다. 러시아 학생들도 어렵다는 현대러시아어 시험에서도 만점을 받았다. ‘대단한 한국 여학생’이라는 평가가 라라의 이름 뒤에 따라다녔다.
진수연은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한국인 영화감독과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한국으로 귀화한 중국 한족이었다. 라라와 대학 동창이란 이유로 둘은 빨리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다른 한국 여학생들보다 더 아량이 있고 더 선량했다. 뒷담화로 날을 새는 한국 사람들보다 수연에게 라라는 친근함과 편안함을 느꼈다. 수연은 얼굴이 가무잡잡하면서도 매력적인 서구적 미모를 지녔고, 성격도 솔직했고 직설적이었다.
“난 중국이 내 나라지만 싫어. 중국은 너무 더러워. 한국이 좋아, 깨끗하잖아. 난 돈 많이 벌고 싶어. 그래서 한국이 좋아. 열심히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으니까.”
라라와 수연이 더욱 깊이 친해진 것은 미론스키 교수의 과목 시험 덕이었다. 라라 앞자리에 수연이 앉았다. 문제지를 뽑아서 자리로 돌아온 라라에게 수연이 뒤로 손을 내밀어 쪽지를 건넸다.
“라라, 우리 문제 서로 바꾸지 않을래. 나 전혀 모르는 문제가 걸렸어.”
“난 대충은 공부한 문젠데 만점은 자신 없다. 어디 바꿔 볼까.”
둘은 문제지를 교환했다. 라라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넌 어때, 그 문제 괜찮아?”
“응, 바꿔. 나 이거 좋아.”
수연은 흔쾌히 바꾸며 좋아했다. 라라 역시 어젯밤 열심히 외운 부분이 그녀의 문제지에 적혀 있어서 쾌재를 부르며 기뻐했다.
라라가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정확하게 대답하자,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론스키 교수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5점 만점이군. 이의 없네.”
그렇게 성적 카드에 기록하고 사인을 한 그는 그녀에게 가도 된다고 했다.
먼저 시험을 치른 수연은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4점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매우 만족해하고 있었다. 그 교수한테는 4점도 좋은 점수였기 때문이다.
시험을 마친 둘은 쥬르팍 건물 밖으로 나와 크레믈린 앞 알렉산드롭스키 공원과 아르바트 거리를 산책하며 홀가분함을 만끽했다.
라라가 수연에게 물었다.
“너 결혼은 안 해?”
“응, 자꾸 싸워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 모르겠어.”
“누구, 전에 말한 그 화교 그 남자?”
“응, 좋아하기는 하는데, 말이 잘 안 통할 때가 많아. 너무 고집에 세. 여자는 집에서 살림하는 게 좋대. 나는 일하고 싶거든.”
“그러니. 나도 전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조금 생각이 바뀌는 중이야. 남자가 벌어다 주면 집에서 살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
그들의 속깊은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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