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는 준호와의 잠자리가 혐오스러웠다. 그가 몸 위로 올라오면 발로 걷어차 내려보내기 일쑤였다. 그러면 그는 그녀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부부관계가 아니라 강간이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임신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결혼식 후 모스크바로 돌아온 지 불과 일주일이었다. 임신이 아니라고 확신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테스터를 뜯었다. 겁도 났다.
“낳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낙태하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아이를 낳는 것만큼이나 낙태하는 것도 못 할 짓이다.”
모스크바 25번 산부인과 병원에서는 의사가 초음파 검사로 임신 사실을 확인해 주면서 말했다.
“축하해요. 아들입니다.”
그러면서 의사가 덧붙였다.
“왜 이렇게 늦게야 왔어요? 일찍 왔어야지. 벌써 임신 4개월째 접어들었어요. 이미 중절할 좋은 시기로 보이지는 않는군요. 물론 낳을 거라고 믿지만.”
5개월 후 라라와 준호는 아들을 낳고는 유모를 구했다. 유모 라나는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러시아 여자였다. 그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도움을 받았지만 아무래도 육아는 라라의 책임일 수밖에 없었다. 라나가 돌아간 뒤 저녁부터 아침까지는 오로지 라라가 맡아야 했다.
당연히 학업에 지장이 생겼다. 한 번도 결석하지 않던 라라가 아이가 아파 학교에 가지 못하기도 하고 수업에 늦는 일도 잦아졌다. 한 학기를 휴학하면서까지 가사와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려 했지만, 결국 아이를 한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아이가 도무지 먹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뭘 줘야 먹으려나, 늘 고민인 라라는 학교 수업을 마치면 시내 아동용품 전문 백화점에 가서 유아용 먹을 것을 고르느라 시간을 보냈다. 한국 엄마들 사이에 인기가 있어 고가에 팔린다는 스위스제 시밀락 분유부터, 독일제, 미국제, 영국제는 물론 러시아제까지 두루 먹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8개월 된 아들 주원을 서울 친정집에 맡아달라고 부탁하자 라라의 엄마는 흔쾌히 허락했다. 한국 것을 먹으면 좀 나아질 거라고 어른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친정엄마는 라라가 아들을 낳자 홀가분한 심정이었다. 손자를 키워보고 싶은 욕구가 컸던 친정엄마에게는 첫 손자가 금동이 옥동자였다.
라라는 친정엄마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소위 사위라는 작자에게 그런 일을 당하고도 아이를 키워달라고 청하는 딸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여준 데 대해서였다.
출산 직후, 산후 조리를 돕기 위해 모스크바에 온 라라의 엄마 앞에서 준호는 어이없는 행동으로 라라와 엄마를 충격에 빠뜨렸다.
사태의 시작은 이랬다.
친정엄마가 와 있는데도, 준호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누워서 빈둥거리기 일쑤였다. 그걸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든 엄마가 라라에게 물었다.
“전 서방은 왜 저러고 있냐, 학교는 안 가는 모양이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내가 아이를 보고 있는데, 왜 저러고 있냐. 나가서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해야지. 덩치는 남들보다 커서, 허우대 멀쩡해서 결혼 허락했더니, 덩치값도 못 하는 인사로구먼.”
라라는 마침내 그날도 누워 자는 그를 깨워 일으켜 세웠다.
“그만 일어나. 엄마 있는 동안만이라도 제발 학교에 나가라고.”
그는 그대로 누워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결혼할 때 학력 가지고 따지는구나. 나는 그런 거 다 저속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경멸했었는데. 결국 본교 나왔다고 속이고 결혼하더니. 그런 사람이 유학을 왔으니 매일 집에서 뒹굴고 있는 거겠지. 속은 내가 바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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