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계단을 한 칸씩 올라간 성공보다 훌쩍 뛰어넘은 성공에 더 열광한다. 바텐더가 의원이 되고, 무일푼 청년이 억만장자가 되면 사람들은 그의 현재보다 먼저 출발점을 이야기한다. “저 사람이 저 자리까지?”라는 반전이 성공담을 더 강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도 이런 ‘점핑된 성공’이 정치적 화제가 되고 있다. 위스콘신주 주지사 선거에 도전한 프란체스카 홍 하원의원은 식당을 창업해 운영했고 현재도 시간제 바텐더로 일한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 역시 바텐더 출신이라는 이력과 함께 젊은 진보 정치인의 상징으로 급부상했다.
정치에서 이런 서사는 특히 강한 힘을 발휘한다. “나도 평범한 사람이다”라는 말 한마디가 복잡한 정책보다 빠르게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람들은 그의 논리보다 그의 이야기에 더 끌린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멈춰볼 필요가 있다. 극적인 성공과 현재의 역량은 다르기 때문이다. 바텐더였다는 사실이나 무일푼에서 부자가 된 경험은 훌륭한 이력이지만, 그것만으로 그 사람의 능력까지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성공담을 그 사람의 실력으로 착각한다.
손자는 ‘군형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古之所謂善戰者,勝於易勝者也(고지소위선전자 승어이승자야)” “옛날에 이른바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쉽게 이길 수 있는 조건에서 승리한 사람이다”라는 뜻이다. 이어서 손자는 “無智名 無勇功(무지명 무용공)”이라 했다. 지략으로 얻은 명성도, 용맹으로 세운 공적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 승리라는 말이다. 이미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미리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평범해 보이는 것이다.
성경의 관점도 흥미롭다. “자기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그는 평범한 사람 앞이 아니라 왕 앞에 서게 된다.(잠언 22:29)”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왕’이 아니라 ‘능숙한’이라는 말이다. 더 높은 자리로 이끄는 힘을 자기 일을 제대로 해내는 데서 찾는다.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손자는 승리를 설계하는 능력을 보았고, 잠언은 자기 일을 능숙하게 하는 사람을 보았다. “어디에서 왔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물론 바닥에서 올라온 사람의 성공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경험에는 분명한 가치가 있다. 그것은 끈기와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그러나 출발선은 실력의 성적표가 아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과거의 이야기보다 현재의 성과가 중요하다. 바텐더였다는 사실보다 의원으로서 어떤 역량을 발휘하는지가 중요하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보다 경영자로서 어떤 판단으로 회사를 성장시켰는지가 중요하다.
성공에는 두 번의 시험이 있다. 올라가는 시험과 그 자리를 감당하는 시험이다. 전자에는 도전과 용기가 필요하지만, 후자에는 전문성과 판단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전자의 극적인 장면에 박수를 보내지만, 진짜 평가는 다음부터다.
점프는 정상에 데려다줄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 남게 하는 것은 실력이다. 출신은 성공의 스토리가 될 수 있다. 실력은 그 스토리를 완성하는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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