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는 라라에게 이혼하라고 했다.
“내가 니 표정이 왜 그렇게 어두워지고 한숨을 자꾸 쉬는지 이상했었는데, 이제 다 이해가 된다. 너 나하고 서울 가자. 도저히 안 될 인간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저런 인간은 기본이 안 된 인간이야. 너 평생 후회한다. 아직 아이랑 정들지 않았을 때 끝내라. 아들은 어차피 자기 핏줄 찾아간다. 아이 두고 나랑 가자. 내가 니 성격 안다. 너는 저런 인간이랑 절대 못 살아.”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너무 걱정하지마.”
라라와 엄마는 그날 밤 서로 등을 대고 누운 채 흐느꼈다. 울음소리를 눈치챌까 서로 등을 돌린 채 눈물을 삼키며 울었다.
“나는 여기 남을게. 아이를, 보름 지난 아이를 어떻게 두고 떠나. 난 못해. 내가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견뎌 볼게. 엄마는 다 잊고 떠나. 악몽을 꾸었거니 하고, 마음 편하게 가.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말고 돌아가. 아빠한테는 이야기 안 했으면 좋겠어.”
친정엄마는 울면서 모스크바를 떠났다. 세 번째 참을 인忍자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
신은 죽었다.
- 니체 -
1년 후, 1994년. 아이를 서울로 보낸 라라는 전에 지환이 준 전화번호를 눌렀다.
‘더 이상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스스로에게 정당하면 되는 거야.’
라라는 그렇게 자신을 설득했다.
“전화 올 줄 알았어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지환의 웃음 띤 목소리가 저쪽에서 들려왔다.
“왜 그렇게 생각했죠? 내가 그렇게 보이게 행동했나요?”
“아니요, 그냥 내가 라라 씨가 언젠간 내게 올 거라고 믿었어요.”
망설이며 했던 전화였다. 그의 말에 다소 안도감을 느꼈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라라는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서 고혹적인 마녀가 미소 짓는 듯했다.
며칠 후.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과연 내가 지금 옳은 건가. 이게 정말 나다운 일일까.’
라라는 지환의 아파트가 있는 칸코보 거리에서 멈춰선 채 망설였다. 마침내 그녀는 그의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추위로 발개진 라라를 집안으로 안내한 후, 지환은 오렌지빛 주스 한 잔을 가져왔다.
“몸이 따뜻해질 거예요. 어서 마셔요.”
밖에서 떠느라 춥고 심하게 목이 말랐던 라라는 그걸 받아 쭈욱 마셨다. 오렌지 주스치고는 왠지 쓴맛이 났다. 얼마 후 얼었던 몸이 녹기 시작하는 듯,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취기처럼 어지러운 느낌이 몰려왔다.
“아, 왜 이럴까요, 어지럽네요.”
라라가 머리를 움켜쥐며 말하자, 지환이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럴 거예요. 주스에 진과 보드카를 좀 넣었어요, 몸 따뜻해지라고. 옷 벗고 이쪽으로 좀 누우세요. 한숨 자요.”
그는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라라는 저항하고 싶지 않았다.
‘위선자가 되느니, 창녀가 되는 편이 낫지.’
그녀를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벗긴 후, 자신의 침대에 라라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지환은 잠시 그녀를 토닥토닥하더니 갑자기 일어섰다.
그리고 잠시 후, 지환도 알몸이 되어 그녀의 옆에 누웠다.
짙은 커튼으로 햇빛을 차단한 지환의 아파트 방은 색지로 감은 전등이 발산하는 불빛이 은근했고, 그가 내놓은 밸리스 칵테일만큼이나 달콤했다. 그것은 그의 아름다운 외모가 만들어내는 환영이고 환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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