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찬종 소장(이삭애견훈련소/이웅종 동물매개치료센터)
그 이전의 개들과 고양이는 각자의 ‘임무’에 충실하게 사육되거나 품종이 개량돼서 야생에 풀어놓는다 하더라도 생존이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애완견, 애완묘로 특성화 돼 사람 품에 안기게 됐고, 이들은 이제 자연에서의 생존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됐다.
좀 더 쉽게 설명해 보자면, 온 몸이 새하얀 포메라니안, 말티즈가 자연 상태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포식자로 사냥을 하려고 하더라도 피식자들에게 눈에 잘 띄어 사냥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반면에 포식자들에게는 너무 눈에 띄어 너무도 쉽게 사냥 당할 수가 있다.
또한 인간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 퇴화된 턱관절의 경우는 자연 상태에서의 식사를 어렵게 만들고(사료에 최적화 됐다), 연약한 관절은 사냥이나 도망을 어렵게 만든다. 이들은 인간의 품을 떠나서는 생활하기 어렵게 만들어진 품종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인간의 품을 떠나 인간이 만든 공간(도시)에서 생활을 한다면, 어떨까? 그래도 생존이 어려울까? 분명 말하지만, 인간의 품 안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그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품을 떠나서 생활하는 건 ‘사형선고’와 다름이 없다.
도시에서 생활하다보면 사람들이 길양이나 떠돌이 개들에게 음식을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인간이 만들어 준 환경 속에서는 먹이를 구하기도 쉬운데 설마 죽기야 하겠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는 사정을 모르는 이야기이다. 이들이 당신들의 품을 떠나는 순간 이들의 생은 죽음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요소를 나눠보면 크게 3가지 정도로 확인할 수 있는데 바로 식사, 의료, 로드킬을 포함한 주변의 위협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식사
모든 유기체는 먹어야 산다. 그것도 자신에게 ‘맞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우리가 ‘맛있다’라고 각인된 음식들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음식들이다. 그럼 개와 고양이는 어떠할까? 이 부분에 있어서 개는 고양이보다 일정부분 우위에 서 있다. 개는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을 순 있다. 물론 몸에 좋지는 않지만, 어쨌든 먹을 순 있다. 그러나 고양이의 경우는 사람의 음식을 먹을 경우 그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 아니, 두 종류 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
▲ 개나 고양이들은 인간에게 버림받은 상태에서 가장 손쉽게 음식을 얻는 방법은 인간의 음식 쓰레기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음식을 먹는 순간 이들 신체가 처리하지 못하는 기능으로 인해 수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다. [사진=필자제공]
고양이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고양이 사료가 등장하기 이전에 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얼마나 됐을까? 놀랍게도 5년 내외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고양이 사료가 등장한 이후 고양이 사료만을 제대로 잘 챙겨주고, 충분한 의료혜택과 영양공급이 주어진다면 평균 10년 이상을 살아갈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15년을 바라볼 수도 있다.
개도 마찬가지다. 개 전용 사료의 등장과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면서 두 품종 다 평균 수명 15년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의 음식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소금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내놓은 1일 염분 섭취 권장량은 5㎎이다. 이는 사람의 경우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경우는 이 2배 이상을 가뿐히 넘게 소금을 섭취한다. 한국의 음식문화 때문이다(당장 김치만 생각해 보라. 소금 덩어리다). 이걸 사람보다 작은 체구의 개나 고양이가 먹는다면, 그 건강이 어떻게 되겠는가? 특히나 고양이의 경우에는 치명적이다.
사람의 몸에 있는 신장은 혈액 속에 있는 노폐물을 걸러내고, 체내의 수분을 조절해 준다. 만약 신장이 좋지 않다면, 몸이 붓고, 쉽게 피로해 진다. 고양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아니,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는 게 신장에는 사구체란 게 있다. 혈액을 오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사구체인데, 고양이는 이 사구체의 수가 사람의 1/4 밖에 안 된다. 한마디로 말해, 사람에 비해 신장이 약하다는 소리다. 이 상황에서 사람이 먹는 짠 음식을 먹는다면, 신장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개나 고양이들은 인간에게 버림받은 상태에서 가장 손쉽게 음식을 얻는 방법은 인간의 음식 쓰레기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이 음식을 먹는 순간 이들의 수명은 갉아 먹히는 것이다.
의료
개나 고양이들이 사람 손에서 키워질 당시에는 충분한 예방접종과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덕분에 이들의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간단한 장염 정도는 예방주사나 항생제 처방으로 쉽게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길거리로 나오는 순간 이 가벼운 장염이 이들의 생사를 결정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영역다툼’이다. 거리로 나온 순간 이들은 정글의 법칙에 자신의 몸을 내맡기게 된다. 이 경우 필연적으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지든 이기든 이들은 싸워야 하고, 싸우는 순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이들은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이 작은 감염 때문에 이들은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별거 아닌 충수염(맹장염) 때문에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 하는 것이 야생의 삶이다.
인간도 의료혜택이 없는 야생에서는 그 생명을 장담할 수 없다. 하물며 개나 고양이인 경우는 어떠할까? 물론 개나 고양이의 경우는 그 적응력이 더 뛰어날 수 있다. 문제는 이들 개나 고양이(사람의 손에 의해 품종이 개량된)들은 사람 품안에서만 생존할 수 있도록 개량된 경우가 많다. 관절이 약해 사냥이 어렵거나 눈에 띄는 털 색깔, 그리고 교배에 의한 유전병 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사람의 손에 의해 키워진 개체이기에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다.
로드킬을 비롯한 주변의 위협
※로드킬(roadkill) : 동물이 도로에 나왔다가 자동차 등에 치여 사망하는 것을 말한다.
현대생활의 필수품은 자동차다. 인간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부터 도로교통에 관련된 여러 규칙들을 숙지하지만 동물의 경우에는 이럴 수도 없거니와(언어 자체를 모르지 않은가?) 이런 경험 자체가 전무하다(사람의 품에 있을 경우 사람이 이런 위협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에).
▲ 교통체계나 위험성을 모르는 버려진 반려동물의 길은 크든 작든 그야말로 죽음의 도로다. 한해 수만마리의 주인 잃은 반려동물들이 길에서 교통사고로 횡사하는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사진=필자제공]
그러나 도시에 나온 순간 이런 위협은 현실이 된다. 2006년 한 해 동안만 고속도로에서 사망한 동물의 수가 5600마리에 이른다. 이는 고속도로에 한정한 수치다. 국도나 지방도, 도시의 고속화 도로나 기타 주변부 도로에서의 사건사고는 제외한 수치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자동차는 움직이는 살인자인 것이다.
여기에 더해 사람이 만들어 낸 도시 자체의 위협(각종 울타리나 도로변의 날카로운 모서리), 사람 자체의 위협(사이코 패스의 동물학대) 등등을 고려한다면 도시는 동물들에게는 최악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애완동물로 길러진 동물에게 ‘버림받는다는 건’ 그 자체로 삶의 종말을 의미한다. 애완동물들에게 도시의 삶은 언제 죽음에 직면할지 모르는 콘크리트 정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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