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에 대하여, 마광수, 어문학사, 2만원
[책사모 회원=서정현]내가 마광수의 작품에 관심을 가진 것은 1년 채 안됐다.
마 작가의 초창기 소설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즐거운 사라’가 출간 금지되고 구속 됐을 당시만 해도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정도의 생각일 뿐이었다.
당시에는 다양한 소설이 있었다. 굳이 마광수의 소설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또, 당시의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언론과 법은 마광수의 작품들을 아웃사이더로 규정짓고 배척했던 기억이 있다.
그의 생각과 가치관은 시대를 앞서 나갔던 것이며, 지금으로 따지면 혁신에 가까웠다. 다만 세상은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광수는 ‘인간에 대하여’를 통해 자신이 고통 받아야 했던 세상의 부조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이 작품은 마광수의 소설이 아닌 에세이다. 그의 생각과 가치관이 쓰여 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확인해 보는 과정과 마광수 스스로의 생각과 가치관에 대해 탐구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학교에서 기존에 배웠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를 부정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동물로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답을 찾아가고 있다. 마광수는 인간이 만든 사회라는 개념은 인공적인 요소로 규정했다. 인간이 한곳에 정착하면서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하나의 틀이며, 처음부터 인간에게 사회라는 개념은 없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인간을 동물과 구분 짓기 위한 도구로서 언어를 사용한 것에 불과하며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 아닌 본능에 가까운 기존의 동물과 다를 게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건 죽을 때까지 45개의 단어만 알았던 늑대소녀 가바라가 대표적이다. 책에는 없지만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에서 늑대소녀 가바라와 같은 동물 형태의 인간의 모습에 대해 소개된 것을 본 적이 있기에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이처럼 그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규정짓는 것에 대해 거부하는 이유는 그 스스로 사회적 동물로서 고통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출간했을 뿐인데, 기존의 법과 제도는 그가 지당히 누려야 할 표현의 자류를 금지하고 또 구속했다.
그는 사회적 인간의 모습이 아닌 개인적 인간을 기준으로 그에 부합하는 증거들을 찾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작품들이 세상 속에서 재해석되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생각과 가치관 전부가 맞거나 혹은 틀리다고 규정할 수 없다. 일부는 충분히 공감했다. 마광수는 스스로 자신이 지향하고자 하는 것, 즉 기존의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와 틀에 대해 순응하는 것보다는 맞서고 저항하는 것을 해왔으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요소인 성욕에 대해서 다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사회라는 틀에 갇혀서 법과 제도를 이용해 금지와 통제를 함으로서 권력을 가지려고 인간이 존재하게 되고, 인간의 이성 안에 감춰진 도덕과 파멸과 잔혹함이 공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에 관한 본질을 찾아가는 마광수의 에세이 안에는 그의 그동안의 작품 세계를 간략하게 엿볼 수 있으며, 여전히 세상의 부조리함과 모순에 대해 싸우고 있는 마광수의 모습 또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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