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6-09-28 21:03
뉴스 > 연재기획
고태경 인문책방
“문명의 속물에서 벗어나려는 특수한 열망”
인문학 키워드 _ 18세기 독일의 문화 개념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8-12-22 13:01:50
▲ 문화평론가 고태경
“도덕의 이념은 문화에 속한다. 이 이념의 사용이 단지 명예욕을 위해 도덕의 모방과 외피적인 예절로만 흐른다면, 그것은 단순한 문명화를 의미할 것이다.”(칸트)
 
18세기 말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문화라는 개념을 위와 같이 정의하며 문명 개념에 대립시킨다. 18세기의 칸트에게 문화(Bildung)는 어떻게 문명과 구분되었을까? 오늘날 우리에게 문화란 곧 대중문화, 공동체 문화 혹은 민족문화 등을 함축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컨대, 한류는 글로벌 자본의 유통을 통해 만들어진 전 지구적 대중문화의 흐름이다. 추석에 귀향하는 것은 대한민국 시민들의 민족적 문화로 간주되며, 각 지역별 관행과 어투, 행동양식 등은 그 지역 공동체의 문화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는 단지 지난 2세기 간의 변화로 만들어진 결과일 뿐, 18세기에도 오늘날과 같은 문화의 관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18세기 독일 지식인들의 미적-관념적 관심
  
인쇄매체의 발달로 책과 신문 등이 ‘대중’적으로 보급된 것이 19세기를 전후로 한 시점이다. 20세기는 텔레비전을 보급시켰고, 21세기는 온라인의 새로운 혁명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발달이 있기 전까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를 만한 공통의 관습과 사고관 같은 것들은 온전히 존재하지 않았다. 문화는 기본적으로 공동체적인 공유기반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행동양식과 말투가 같을 수 없는 귀족과 노예 간에 ‘문화’가 존재할 리 없으며, 대중매체가 부재한 고대 로마 혹은 한반도의 신라시대에 지역을 초월한 문화적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8세기로 오며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인쇄기술의 확장으로 책이 널리 보급되었고, 지식인들은 지역의 카페나 살롱 등을 통해 세간의 정보와 지적 성취들을 긴밀하게 교류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지식인들은 특히 복잡한 신분적 위치에 놓여 있었다. 국경을 마주한 프랑스의 지식인들은 기존의 궁정귀족들과의 헤게모니 싸움을 할 물질적-환경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그 헤게모니 싸움의 근거로 사회통치의 합리성을 강조하곤 했다.
  
반면, 독일의 지식인들은 무력했다. 이들은 실질적으로 귀족들과 싸울 여력이 없었으며, 프랑스 지식인들의 세속적 가치지향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현실의 무력감은 관념적 이상향에 대한 열망을 수반했다. 지식인들의 물질세계에 대한 지적 열망이 강렬했던 프랑스에서는 경제학과 사회과학이 번성했다. 반면 독일에서는 미학과 철학이 발달했는데, 전자에서는 낭만주의 운동이, 후자에서는 사변적 관념론이 부상하게 된다.
  
특수성으로서의 문화
  
낭만주의가 그러하듯, 18세기 독일에서 문화는 어떤 과잉된 자의식의 세계를 수반했다. 프랑스의 문명 개념은 대단히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내용들을 수반했다. 사회는 시장의 법칙에 의해 합리적으로 통치되어야 한다는 것, 부의 순환은 이러한 시장과 인구 발달의 흐름 속에서 자기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 18세기 프랑스 부르주아 지식인들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프랑스 지식인들의 응답이 당대 물질문명의 주류적 흐름을 반영했다는 점이다. 신흥 부르주아지가 성장하고, 프랑스혁명으로 신분제가 타파되면서 프랑스 지식인들의 합리성 추구 혹은 문명화의 주장들은 헤게모니를 얻게 되었다. 같은 흐름은 나폴레옹 시대를 경유하며 식민지 개척을 이루게 되고, 제국의 권력하에 놓인 모든 식민개척지에 이식되어야 할 보편성의 패러다임으로 격상되었다.
  
‘문명화’의 논리가 시대의 권력구조 속에서 헤게모니를 획득하며 이른바 ‘보편성’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순간, 독일 지식인들이 주목하게 된 것이 특수성으로서의 ‘문화’였다. 칸트는 말한다. 문명화란 세속적이고 외피적인 예의범절에만 집착하는 속물적 논리라고. 그에게 있어서 문화란 속물적인 외피성 저편에 놓인 어떤 심층적 진실에 가까운 것이었다.
  
다시, 18세기에 낭만주의가 번성했다는 점에 주목하자. 젊은 베르테르는 샤를로테를 사랑하지만, 언제나 그것은 그의 상상 속에서일 뿐이다. 그는 귀족들의 화려한 허례허식을 증오했지만, 그것은 언제나 마음속에서일 뿐, 결코 현실의 저항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물질적(현실적)인 것은 관념적(진정성 있는)인 것과 대립한다. 칸트의 관념에서 전자는 (프랑스적) 문명을, 후자는 (독일적) 문화를 은유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문화는 보편성의 지위가 아니라 문명의 속물성으로부터 분리되고자 하는 특수성의 열망을 내포한다. 낭만주의가 ‘천재’를 필요로 했듯, 18세기 유럽 부르주아들의 세계에서 문화는 남들과는 다른 이질성 혹은 특수성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현실적 무기력을 수반한 것이기도 했다.
광고
후원하기
  • 정기 후원
  • 일반 후원
  •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는 공공성에 기반해 독자가 만들어 가는 언론을 지향합니다. 정기 또는 일반 후원시 맞춤형 뉴스, 독자에게 할당하는 지면 서비스, 동행하는 홍보, 유상증자시 참여기회 제공(법인에 한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0
방문수(PC&모바일)
오늘(실시간) 133,349 ▶
어제 140,329 ▶
최근 7일 ▶
대한민국 명사들
대면 기회를 가져보세요.
팬클럽 가기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2안길 82(방배동 463-18) 청송빌딩 3,4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종합일간지 등록번호 : 서울시 가50131,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민경두, 편집국장 : 주경준, 사업자 번호 : 214-88-81099 후원계좌 : 158-910019-39504(하나은행)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진강
본지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서약사로서 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