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철, 2005년 2월 탈북
▲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재학
지난 1월 23일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에 대해 연일 강도 높게 비난하던 북한당국은 30일 0시를 기해 전국에 전투동원 준비태세를 선포하고 민병조직인 로농적위군(대)에까지 총기를 지급하고 실전대비 훈련을 하는 등 전쟁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전투동원 준비태세는 비상사태 하에서 북한군 최고사령관 명의로 군을 포함한 전 무장병력에 하달되는 작전명령이다. 전투준비 태세에는 최고단계인 전시상태, 준전시상태, 전투동원태세, 전투동원준비태세, 전투경계태세, 경계태세 등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최고사령관 명의의 이런 작전명령은 거의 해마다 선포되고 있으며 북한주민들에게 비상사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필자도 93년 3월 8일 최고사령관 명령 제 0034호로 하달된 준전시 상태를 시작으로 많은 비상사태를 경험했다.
▲ 학습도 전투다! 모든 북한 학교 복도에 볼 수 있는 포스터. 김정일은 학생들에게 비록 우리가 잡고 있는 것이 총이 아니지만 적을 무찌르는 심정으로 공부하라고 말했다. <사진자료=필자제공>
당시 방송으로 ‘전국, 전민, 전군에 준전시 상태를 선포한다!’는 중대발표를 청취하며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6.25전쟁 소년영웅들처럼 용감히 싸우리라! ‘비장의 결의’를 다졌던 기억이 난다.
준전시 기간 내내 곤봉을 차고 고등학교 형님 누나들과 함께 있지도 않은 ‘적’의 침입으로부터 마을과 학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김일성혁명사상연구실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밤 새 경계근무를 서기도 했다.
93년 3월 준전시상태 선포 이후 북한에선 거의 매년 비상사태가 선포됐고 매번 같은 과정, 같은 결과를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북한주민들은 말뿐인 비상사태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 기간에는 방어진지 이동 및 행군, 전술 훈련 등 각종 군사훈련과 등화관제, 대피훈련 등 민간인 훈련이 수시로 진행된다. 아울러 한 밤중에 실시되는 비상소집 훈련, 숙박검열, 불심검문 등으로 인해 북한주민들은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 붉은청년근위대원들. 중학교(5~6학년. 15~17세) 학생들로 의무 가입해야 한다. 북한정권사수의 친위대로 불리기도 하는데, 유사시 정규군 예비 병력의 역할을 한다. 여름 방학 중 7일간 입영집단훈련과 연 450여 시간의 군사교육을 받는다.
한번, 두 번, 세 번,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일부 주민들은 ‘우리는 365일 전투중이고 그 속에서 나는 항상 비상사태에 살고 있는데 뭔 전투준비를 또 하냐? 히틀러는 전쟁 중에도 국민들의 배를 곯게 하지 않았다’며 김씨 일가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사실 북한엔 총을 들고 싸우는 전투 외에도 참 많은 종류의 전투들이 있다.
일찍이 김정일은 모든 일을 결사의 각오를 갖고 적과 싸우는 심정으로 해야 한다며 수십, 수백 가지의 이상한 전투들을 만들었다.
밭갈이 전투, 모내기 전투, 김매기 전투, 풀베기 전투, 가을걷이 전투, 농촌지원전투, 200일 전투, 70일 전투, 김장전투, 운송전투 등. 주민들을 항상 전쟁터에 나선 각오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훈련 중인 노농적위대원들. 지난 6.25전쟁 때 사용했던 구 소련제 무기들과 중국제 무기까지 다양한 무기들로 무장한다. 매년 동·하계로 나뉘어 합숙훈련을 하지만 농민들의 특성상 동계훈련만 진행된다.
이 때문에 초등학생들도 미제와 남조선을 쓸어버리는 심정으로 공부하기를 강요당하며 학습전투에 참가해야 했다.
▲ 북한의 100일전투 선전포스터. 작은 시골마을에도 벽보설치가 의무화 돼 있어 이런 선전 포스터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대학생 등은 학습 전투 외에도 식량생산을 감소시키는 적들을 무찌르기 위해 사계절 농촌지원전투와 화목전투 등에 참가해야 한다.
정규교육을 받는 초등학생 이상 북한주민들은 누구나 이런 전투에 조직적으로 무조건 참가해야 하고 무조건 복종의 북한식 전시법규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런 환경으로 인해 일상이 그대로 전투이고 전투가 일상이 돼 버린 북한주민들에겐 전투동원 준비도, 준전시도 그냥 일상이나 다름없이 되었다.
또한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북한당국이 선전하던 ‘철천지원수’들의 진실에 대해 많이 알게 되면서 오히려 그들처럼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증가, 적이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으로 바뀌어 북한 당국의 거짓 선전선동은 나날이 그 효력을 상실하고 있다.
한편 연일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와 이에 동참하는 국가들에 대해 강도 높게 비난하는 북한당국을 보며 어찌 보면 이번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가 그만큼 불안정한 김정은 정권에 치명적이라는 방증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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