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가장 비슷한 함의를 갖는 단어는 무엇일까? 가장 쉽게 떠올릴 만한 것은 ‘불확실’이다. 청년 노동의 불안은 청년 취업과 고용의 불확실성을 뜻한다. 불안과 연관되어 또 떠올릴 만한 단어는 두려움 혹은 공포이다. 공포란 무엇에 대한 공포다. 예컨대, 한반도는 핵위협의 공포 속에 놓여 있다. 미세먼지는 SF소설에서나 볼 듯한 디스토피아의 공포스러운 미래를 암시한다.
불안은 대상보다는 현상을 갖는다. 하이데거는 불안은 곧 세계 자체에 대한 불안이라고 하는데, 이 모호한 말을 조금 더 쉽게 풀어쓰면 이렇다. 불안은 무엇이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에 대해 일어난다고, 불안은 주어진 환경 자체가 만들어내는 것이지 특정 인물이나 특정 도구에 대해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고용불안은 존재하지만, 직장 상사에 대해 갖는 감정은 불안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불안을 낳은 시대상
불안은 시대를 막론하고 나타나는 심리상태일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근대라는 특정한 시대상황 속에서 유독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심리임은 분명하다.
불안이 근대문명의 특성을 크게 반영한다는 말에 대해 조금 더 조명해 보자. 먼저, 근대세계는 유럽인들의 대항해를 수반하며 나타났다. 말을 달리고 걸어서 강행군을 하면 닿을 듯한 대륙 내부의 세계가 아니라 저 바깥의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다는 자각은 ‘세계’에 대한 인간의 감각을 바꿔 놓았다. 익숙한 내부세계가 아니라 완전히 이질적인 저편의 세계가 있다는 것, 나의 공동체는 저 알 수 없는 광활한 세계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비슷한 시기를 경과하며, 요컨대 16세기를 넘어가며 유럽에서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체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주지하다시피,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다. 시장이라는 상품교환의 익명적 관계는 좁은 지역공동체 내에서 친인척 기반의 친밀성이 확보된 삶과는 완전히 다른 생활패턴을 수반했다. 시장의 익명성은 공동체의 친밀성에 이질감을 부여하고, 상품교환자들에게 (오늘날 우리가) 소외라고 부를 수 있는 감각들을 선사했다.
근대문명은 천문학에 대한 탐구가 종교논쟁까지 수반하며 거대한 혼란을 야기한 문명이기도 하다. 인간은 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는 성향을 갖는다. 지구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 역시 크게 어색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동설은 이러한 자기중심적 세계관 자체를 역전시켰다. 내가 중심이 아니라는 말은 내가 주변에 불과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혹은 내가 주체이기보다 타자일 수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소외’라는 말은 근대문명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였다. 익숙한 자기중심적 공동체에서 알 수 없는 미지의 광활한 대지로 넘어간 인간에게 새로운 물음이 등장한 것이다.
파스칼의 물음과 근대 이후
“내가 저곳이 아닌 이곳, 그때가 아닌 지금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팡세>에 나오는 파스칼의 유명한 물음이다. 공동체에 붙박힌 삶에서 ‘저곳이 아닌 이곳’의 삶 자체를 물음에 부칠 일은 없다. 이 질문은 마치 우주 한복판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의 물음과도 같다. 대항해의 시대, 혹은 지동설을 통해 지구의 위치를 상대화한 시대는 명확한 이정표가 부재한 시대이기도 하다. <팡세>가 출간된 17세기 후반에, 유럽인들이 이정표의 부재 앞에서 느꼈던 것이 바로 이 ‘불안’의 감각이다.
앞서 말했듯, 불안은 공포와는 달리 대상을 갖지 않는다. 무엇이 일어날지, 내 주변으로 누가 다가와 줄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은 오직 구체적 대상과 명확한 이정표가 없는 근대의 시공간 속에서만 일반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감각이다. 청년들의 고용불안이 나타나는 것은 시장이라는 공간이 누구의 통제에도 환원되지 않는 익명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올해의 농산물 재배가 잘 되도록 제사를 올리는 농민들의 불안은 ‘기후’라는 것이 손에 잡히지 않는 미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불안은 곧 세계에 대한 불안을 뜻한다고 말했다. ‘세계’는 대상도 공동체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둘러싼 추상적이고 존재론적인 어떤 환경 같은 것을 말한다. 이 말은 근대에 와서 인간들이 이정표 없는 무한한 공간에 던져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대항해와 자본주의 시장과 천문학의 등장을 수반했는데, 그렇다면 디지털 네트워크의 세계 속에서는 또 어떨까. 나의 모든 삶이 인터넷의 기록 속에 남겨져서 모두의 시선 속에 노출되지 않을까라는 느낌은 불안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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