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형, 2006년 3월 전 가족 귀농
▲ 2012년, 귀농 7년차 농부
우리가 뿌리는 씨들은 땅의 양분과 하늘의 기운을 받아 싹을 띄우고 이 싹은 별을 보며 자랍니다. 밥상에 오르는 모든 먹거리가 하늘이고 별이고 땅인 셈이죠. 우주의 기운은 농부의 애정 어린 땀과 만나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내지요.
원래 쌀을 뜻하는 한자 ‘미’(米)는 상형문자로서 벼이삭을 본뜬 것인데, 옛 사람들은 ‘米’를 팔십팔(八十八)로 나눠서 처음 볍씨를 뿌려 사람 입에 들어갈 때까지 무려 88번의 손이 가는 곡물이란 뜻으로 썼습니다.
볍씨부터 알곡까지 88번 손이 가는 곡물
볍씨가 모종으로 자라는 과정은 사람의 탄생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소금물을 풀어 쭉정이를 걸러낸 볍씨는 냉수온탕법으로 소독된 뒤 물속에서 48시간을 지냅니다. 마치 엄마의 양수 속에서 10달 동안 자라는 태아처럼 말입니다.
이틀을 물속에서 지낸 볍씨는 하얀 싹을 틔워냅니다. 생명이 탄생한 것이죠. 촉을 틔운 볍씨들은 깨끗한 흙(상토)을 이불처럼 깔아놓은 쟁반만한 모판에 담겨 비닐하우스로 향합니다. 이들은 흙속의 미생물, 햇빛, 물, 온도 등을 양분삼아 약 20~25일을 비닐하우스 안에서 키워집니다.
▲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우리 민족이 역사 속에서 왕부터 천민까지 가장 숭상해 온 정신이다. 그만큼 농업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천하의 근본이었지만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그 근본인 되는 쌀농사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13년 전과 가격이 같은 쌀 가격 때문에 밥 한 공기 값 270원은 인스턴트 커피 한잔 값인 300원 보다 못하다. <사진=필자제공>
모는 땅에 심겨져 비와 바람과 햇빛의 힘을 받아 초록색으로 성장한 뒤 가을들녘을 노랗게 물들입니다. 7개월을 산 벼는 나락 한 알 한 알에 생명을 품고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뙤약볕이 내리찌는 여름에 풀을 뽑고 물길을 내고, 장마철이 되면 터진 논둑을 때우는 농부의 수고가 있지만 자연이 벼에 주는 도움엔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저 역시 논바닥이 갈라져도 더 이상 퍼 올릴 물조차 없는 지독한 가뭄을 겪고 정성으로 키운 벼가 태풍에 쓰러지는 것으로 본 뒤에야 농사란 하늘이 짖는 것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인스턴트 식품 때문에 식탁에서 밀리는 ‘하늘’
그러나 이런 하늘이 식탁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습니다. 피자와 라면, 치킨과 같은 인스턴트 식품에 자리를 뺏기고 있습니다.
1인당 쌀 소비량은 매년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10년 전 쌀값이 지금과 같은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키워 누렇게 익은 논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은 풍족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논농사는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가 난다. <사진=필자제공>
실제 농수산물 유통센터의 통계를 보면 2000년 쌀 한가마(80KG)가 17만원대에 거래됐습니다. 13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일까요? 저희 동네 방앗간에선 쌀 한가마를 18만원에 팝니다. 그동안 비료값은 3000원에서 1만2000원으로 4배 정도 올랐는데 쌀값만 그대로입니다.
쌀농사 포기하고 비닐하우스 짓는 농가 늘어
쌀 120g이면 밥 한공기가 만들어 진다고 합니다. 쌀 한가마이면 666그릇이 되겠지요. 밥 한공기의 쌀값은 270원 꼴입니다. 저희는 지난해 우렁이를 놓아 키운 무공해 쌀이라는 이유로 한 가마에 24만원을 받고 시세보다 높게 팔았습니다. 그래도 밥 한공기의 쌀값은 360원밖에 안됩니다.
반면, 자동판매기에서 팔고 있는 인스턴트 커피 값이 300원입니다. 동네 마트에서 아이들이 먹는 껌값이 500원입니다. 자판기 커피 값과 애들 껌값 대접도 못 받는 것이 우리나라 주곡인 ‘쌀’의 현실입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동네 들판이 하얀 비닐하우스로 바뀌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가을이면 노랗게 변해야 할 들녘이 하나 둘 채소단지로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 쌀농사에 희망이 없다는 것은 하늘의 뜻으로 쌀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도 희망이 없다는 것과 같다. 농자천하지대본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도 쌀은 여전히 세끼 먹는 기본 주식이라는 점이 소중하다. 농민들에게 쌀농사에 대한 희망을 불어 넣어 주어야 ‘생명의 주식’을 지킬 수 있다. <사진=필자제공>
쌀농사에 희망이 없다는 반증입니다. 밥은 하늘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밥또한 서로서로 나누어 먹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이 없어지고 나눌 밥도 없어지는 우리 농업의 씁쓸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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