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하면 생각나는 것이 규칙을 지키기 위해 똘똘 뭉치는 집단주의 문화다. 가족에서 시작해 친구, 지인, 회사 동료와 같이 뭉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향을 갖고 있는 민족이 일본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같은 추세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사회)로 접어들면서 독거노인이 늘어나고 이혼과 유학(留學)으로 혼자 사는 1인가구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개인주의 성향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일본은 예전부터 집단주의가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개인주의 문화의 싹도 자라나고 있었다. 전근대 일본에서 찾을 수 있는 개인주의 문화로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 物作り, 장인정신)’가 있다. 모노즈쿠리는 말 그대로 풀면 ‘물건 만들기’라는 의미지만 일본인은 물건을 만들 때 혼을 실어 만듦을 강조, ‘장인정신’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사무라이는 전쟁을 하는 동안 많은 물자가 필요했고 그들의 지배 아래 있던 상공인과 천민을 통해 이를 조달했다. 그 과정에서 사무라이는 특정 기술자를 선정해 대를 이어 한 가지 기술만 익히며 살아가는 전통을 이어가도록 지시했다. 대를 이어 가업을 계승하고 혼을 실어 물건을 만드는 일본의 장인정신은 이때부터 싹튼 것이다.
역설적으로 일본의 집단주의 문화는 지배 계급에서, 개인주의 문화는 평민에게서 시작됐다. 이런 상극의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문화 기원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구조다.
장인정신과 개인주의가 결부된 현대의 일본문화가 바로 오타쿠(おたく, 宅, 영어로 mania, 마니아)다. 오타쿠는 애니메이션, SF영화 같은 특정 취미나 사물에는 관심있으나 다른 분야에는 지식이 부족하고 사교성이 결여된 인물이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다. 하지만 1990년 대 이후부터 의미가 확대돼 마니아 수준을 넘어선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오타쿠라는 말이 들어와 ‘오덕후’, 이를 줄여 ‘덕후’로 변형돼 쓰이고 있다. 비슷한 말로 한 가지 일에 광적으로 몰두하는 사람, 낚시광, 바둑광, 골프광 등으로 불리는 광(狂)이라는 말에 맥락이 닿는다.
한마디로 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몰두한다는 의미다. 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몰두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오타쿠를 특별 채용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개인주의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단어인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 은둔형 외톨이)는 차원이 다르다. 히키코모리는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1990년대 중반 은둔형 외톨이로 규정되면서 사회문제로 떠오른 용어다.
히키코모리는 ‘틀어박히다’라는 뜻의 일본어 'ひきこもる(히키코모루)‘의 명사형으로 사회생활에 적응 못해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을 말한다.
오타쿠와 히키코모리가 개인의 성향 문제라면 이혼이나 유학(留學), 독거노인 등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1인 가구 생활을 해야 하는 경우다.
특히 일본은 초고령화 사회로 배우자와 사별해 혼자 사는 경우가 많으며 열등의식이나 내성적인 성격으로 1인 가구로 생활하는 사람도 적잖다.
이에 따라 나타난 것이 바로 ‘혼’ 문화. 혼자 밥을 먹는 ‘혼밥’, 혼자 술을 먹는 ‘혼술’ 등 사실 ‘혼’ 문화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먼저 자리 잡았다. 일본에서는 음식점이나 술집에 1인석이 따로 마련돼 있는 곳이 많다.
일본의 1인 가구 비율은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30%를 겨우 넘었지만 일본은 40%에 육박한다. 10명 가운데 4명은 1인 가구다. 그래서인지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가라오케(노래방)에서도, 술집에도 혼자 오는 손님을 위한 '1인용'으로 변신 중이고 혼자인 인생을 즐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혼자 사는 1인 가구를 ‘오히토리사마(おひとりさま, 一人様)’라고 말한다. 이 말은 원래 음식점에 혼자 온 손님을 가르키던 말인데, 아예 싱글(특히 싱글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 잡았다.
솔로충(일본어 발음은 소로쥬)이란 말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충은 벌레 충(蟲)이 아니고 ‘충실하다’라는 의미의 충(充)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충실하게 즐기며 보내는 사람을 뜻한다.
수년 전부터 일본에서는 ‘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는 젊은이’가 하나의 사회 문제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50세까지 결혼하지 않는 사람의 비율인 ‘생애 미혼률’이 높아지면서 출산율도 줄고 있다(2017년 기준 1.44명). 일본의 1인 가구 비율은 1995년 25%에서 2017년에는 35%로 급증했고 현재는 40%에 육박하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이 ‘오히토리사마 무브먼트’라는 이름까지 붙이며 소개한 일본의 ‘솔로 문화’ 얘기가 한국인에게도 회자되고 있다. ‘혼자 놀기의 달인’이라 자부하는 당신, 어디까지 해 봤나. 한번 체크해보자.
1단계 ‘혼밥(혼자 밥먹기)’, 2단계 ‘혼술(혼자 술먹기)’, 3단계 ‘혼야키니쿠(혼자 고기먹기, 야키니쿠(やきにく)는 우리나라의 불고기)’, 4단계 혼가라오케(혼자 노래방에서 노래하기), 5단계 혼여행(혼자 여행가기). 여러분은 어느 단계까지 경험해봤나요. 분명한 것은 일본 사람의 경우 1단계 혼밥에서 5단계 혼여행까지 모두 경험한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절대로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 하지만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나홀로 밥 먹고 술 마시고 여행하는 것이 꼭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아무런 간섭 없이 최고의 자유와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야말로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보는 일탈의 자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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