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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의 아트&컬처
춤의 법도를 그리다
시대별 ‘정재무도홀기’를 연구, 실연한 궁중무용
故 성경린 선생 무보 기반 10종 중 4작품 선봬
원형 그대로 이끌어 낸 무용사-무용학적인 수작
이주영 필진페이지 + 입력 2021-12-17 09:25:44
 
▲이주영 공연칼럼니스트・문학박사
통상 한국무용은 궁중무용, 민속무용, 한국창작무용 등으로 분류된다. 이중 궁중무용은 공연을 하는 실연자나 관객 모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전통무용이나 창작무용 또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무용이 지닌 특질상 창작과 미적 체험이 용이하지 않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궁중무용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궁중무용(宮中舞踊)은 궁중을 중심으로 계승, 발전된 춤이다. ‘정재(呈才)’ 혹은 ‘정재무(呈才舞)’로도 불린다. 이는 나라의 각종 행사, 의식, 궁중 연례 등에 춤이 사용되면서 기틀이 마련됐다. 의식의 한 절차에서 출발했으나 이후 독립적인 영역으로 춤과 음악이 발전한 것이다. 
 
궁중무용은 크게 두 가지 갈래가 있다. 하나는 ‘당악무용(唐樂舞踊)’이다. 이는 고려 문종 때 송나라로부터 도입된 춤이다. 춤의 시작과 끝을 죽간자(竹竿子)가 인도한다. ‘죽간자’는 긴 대나무 장대 끝에 1백여 개의 가는 대 조각을 달아 빗자루처럼 장식한 의물이다. 즉, 죽간자를 든 사람이 춤추는 사람을 인도한다. 또 하나는 ‘향악무용(鄕樂舞踊)’이다. 이는 조선 세종 이후 체계화됐다. 무원(舞員)들은 죽간자의 인도 없이 무대에 등장해 한글 가사로 된 창사(唱詞)를 부르다가 면복흥퇴(俛伏興退) 형식으로 퇴장하는 춤이다. ‘면복흥퇴’란 꿇어앉아 엎드려 절하고 일어나서 퇴장한다는 의미다. 이렇듯 궁중무용은 예(禮)와 의(儀)의 총아라 할 수 있다.
 
궁중무용의 역사적 숨결을 춤결로 치환한 무대가 펼쳐졌다. 복미경무용단이 마련한 ‘무율(舞律)Ⅱ’(2021.12.1., 한국문화의집 KOUS) 무대다. 12월의 첫날을 아정하게 연 이번 공연은 쉽게 볼 수 없는 무대지만 꼭 봐야 할, 아니 기억하고 기억해야 될 무대다. 이 무대를 이끈 무용단 대표인 복미경 선생의 땀과 열정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복미경 대표는 국립국악원 무용단 단원, 국립남도국악원 무용단과 국립민속국악원 무용단 안무자를 각각 역임한 이 분야의 전문가이다.
 
▲무고 [사진=필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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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율(舞律)’은 춤의 법도를 뜻한다. 사회나 국가를 지탱하는 제도적 근원체가 법이다. 춤의 법도라 하니 그 무게감이 연상되리라 본다. 이 공연은 지난 해 10월, 국립무형유산원 주최 ‘2020 이수자전’ 선정작인 ‘무율(舞律)Ⅰ’에 이은 두 번째 무대다. 시대별 정재무도홀기를 비교 연구하며 진행되는 학술적, 연행적 가치가 공존하는 시리즈이다. 작년 공연에서는 정신문화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엮은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를 토대로 연구해 고종 30년 계사년(癸巳年) 홀기를 재현했다. ‘정재무도홀기’는 조선시대 궁중 연향 때 공연할 정재를 위해 만든 무보(舞譜)이다. 정재별로 배열도와 춤 진행 절차, 반주 음악과 창사(唱詞)가 수록되어 있다. 이 홀기는 당시 장악원(掌樂院)에 전승되는 정재 38종목의 그림과 춤 순서 등이 기록된 귀중한 자산이다.
 
▲ 봉래의
 
올해 진행된 ‘무율(舞律)Ⅱ’는 의미가 훨씬 크다. 그 가치를 네 작품은 고스란히 무대에서 궁중 성찬으로 전달했다. ‘봉래의(鳳來儀)’, ‘춘앵전(春鶯囀)’, ‘무고(舞鼓)’,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 등이다. 조선조 창업과 역사를 어느 정재보다 잘 담고 있는 ‘봉래의’는 용비어천가를 노래한다. 말 그대로 무율의 기운이 무대를 감싼다. 이어 복미경의 독무로 추어진 ‘춘앵전’은 좁은 화문석에서 추는 춤이다. 효명세자가 순원황후 40세 탄신을 축하하기 위해 예제(睿製)한 것이다.
 
▲장생보연지무
 
본래 이는 중국 당대에 창제된 무악이지만 순조 때 새롭게 지은 것이다. 이른 봄날 아침, 꾀꼬리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당고종이 악사 백명달(白明達)에게 명해 창제한 의미가 겨울 속 봄처럼 다가온다. 가장 오래된 정재 향악정재 중 하나인 ‘무고’는 원래 무원 2인이 한 대의 무고로 추었다. 성종대 이후로는 북의 수와 무원의 수가 변화를 보였다. 이번 무대에서는 8명이 출연해 나비가 춤을 감싸는 듯한 표정을 담아냈다. 의상과 두드림의 표정 또한 흐름에 따라 적절히 이에 화답했다. 피날레는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가 장식한다. 형태와 구성 변화, 춤사위의 다양성까지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번 공연에서 해설을 맡은 국가무형문화재 제40호 학연화대합설무 보유자인 이흥구 선생 말의 울림이 크다. 1985년 고 성경린 선생께서 이왕직아악부에서 시행됐던 영친왕 전하 근친 진연(進宴) 중 정재 10종 재연 시, 기록해둔 노트를 주면서 “이 노트에 기록된 대로 정재를 재연해 주게” 하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결국 그 꿈이 제자인 복미경 선생을 통해 세상에 빛을 보았다. 당시 시행되던 정재와 오늘날과는 차이가 있는 바, 이 부분을 정재로 재현한 것은 무용사적, 무용학적 의미가 크다.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궁중무용. 원형 그대로의 정재를 심도 있는 연구와 해석을 통해 풀어낸 무율(舞律)은 정재 그 이상의 의미를 던져주었다. 성경린 선생 무보에 기록된 정재 총 10종 중 나머지 작품도 순차적으로 만나길 기대해본다. 춤의 법도 가득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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