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변흥례. 충남 천안군 빈농 집안의 딸로, 17세에 경성으로 가서 일본인 집의 하녀가 되었다. 흥례라는 이름이 발음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 집에선 그녀를 마리아라고 불렀다. 마리아는 19세 되던 해, 조선총독부 철도국 사무관 오하시(大橋) 집 하녀로 들어가 1931년 봄에 주인을 따라 부산으로 갔다. 그녀는 당시 월급 15원을 전부 부모에게 보내는 효녀였다….”
부산으로 내려간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그녀는 엽기적인 모습으로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1930년대 초반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마리아 참살사건’이다. 마리아가 살해된 1931년 7월 이후 수사가 시작되어 재판 기간만 무려 3년을 끌었지만 결과는 1심 판결문에 범인으로 명기된 일본인 두 명 모두 구속조차 되지 않은 채 영구 미제로 남은 사건이다.
처음에 범인으로 지목된 건 오하시 부인의 정부인 이노우에(井上)였다. 하지만 범행을 자백했던 이노우에가 진술을 뒤엎고 이어서 경찰서로 범행 과정을 상세히 묘사한 투서가 날아들면서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사건의 진상은 하녀 마리아에게 불륜 현장을 들킨 오하시 부인과 이노우에가 공모해서 살인을 저지른 것이었다.
결국 사건이 일어난 지 2년 5개월 만인 1933년 12월14일 1심 공판이 열렸다. 배임판사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판사·검사·변호사·피고·증인 모두 일본인인 이 재판에 피고는 이노우에 한 명뿐이었다. 검사가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들어 오하시 부인의 기소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결문에는 사건의 주범은 오하시 부인, 종범은 이노우에로 밝혀져 있었다. 재판에 참석한 유일한 조선인인 배임판사 민경준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대로 묻혀 버릴 뻔했던 조선인 하녀 죽음의 진상이 판결문에 기록된 것이다. 오하시 부인을 주범으로 명시한 판결문이 알려지자 여론은 들끓었다. 당시에 더불어민주당이 있었으면 대대적인 촛불시위라도 일어났을 사건이었다.
이 재판의 배임판사 민경준은 독립운동의 죄목으로 기소된 피고에 대해 무죄 의견을 냈다가 경성에서 부산 지방법원으로 좌천된 30대의 젊은 판사였다. 그는 이 재판 이후 얼마 안 있어 갑작스럽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이후에라도 변심해 친일행각을 벌였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소신을 지키는 꼿꼿한 판사였던 그가 친일파 명단에 올라 있다. 일제강점기에 관직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친일·반일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이렇게 일차원적이고 단세포적이다. 그리고 그 단세포적인 판단에 근거한 원한과 분노가 일제강점기를 체험한 적도 없는 세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이상한 현실이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 해법을 놓고 여론이 떠들썩하다. 과거를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충정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이 분명함에도 야권에선 계묘늑약에 이어 삼전도의 굴욕까지 들먹이며 정부를 몰아붙이고 있다. 그들이 의도한 대로 대통령 지지율도 급락했다. 하지만 정치인이라면 말을 뱉기 전에 자신이 언급하는 역사적 사실의 전후사정을 따져 보고 최소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라도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이 내뱉는 말이 기사화되어 상대국에까지 전해질 것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일본은 5억 달러를 배상했고 그 돈으로 한국은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등 경제 발전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 협정서엔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후 1993년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고노 관방장관이 일본 내각을 대표해서 공식 사과를 했다. 그런데 정부가 바뀔 때마다 한국에선 이전 정부가 허술하게 처리한 것은 인정할 수 없다며 다시 문제를 들고 나선다. 사과한 적 없다 하고 개인에 대한 배상 청구권은 살아 있으니 배상도 하라고 한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가 어떻겠는가.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인과 업무상 마주하게 되는 한국인을 그들이 어떤 시각으로 보고 대할 것인가.
우리는 이미 여러 부문에서 일본을 앞질러 가고 있다. 승자와 패자를 가리자면 우리는 승자에 좀 더 가깝다. 과거를 털고 앞으로 나아가도 될 자격을 갖춘 것이다. 그런데도 젊은 세대에게까지 기억에도 없는 과거의 원한을 주입하고 한풀이를 선동하는 자들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잘못을 따지자면 가장 큰 잘못은 백성을 지키지 못한 나라에 있다. 가해자가 따로 있다 해도 사실 보상은 일차적으로 나라에서 하는 게 맞다. 저들이 반성을 하든 안 하든 그건 그들의 문제고 우리의 상처와 피해는 우리가 알아서 해결하는… 우린 좀 그렇게 멋있으면 안 되나?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