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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의 전지적 시점] 눈앞이 흐려진 자들이 감히 법을 들먹이다니
박혜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6-27 06:32:00
▲ 박혜수 시인·번역작가
“본시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나 감정이 작동하면 거기에 스토리가, 역사라는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그 공간의 주역이 사랑이라 할 것입니다. 그 기억된 공간은 시간 여행자를 다시 불러 모이게 합니다….”
 
6월 둘째 주와 셋째 주에 걸쳐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시간 여행자’라는 제목으로 지인의 전시회가 열려 다녀왔다. 화가도 아닌 그가 어느새 그렇게 많은 그림을 그린 건지 1‧2층 전시장 벽면에 새겨진 글과 함께 나름의 의미를 담은 그림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그림을 그린 건 엘로(Ello)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 지난해 이 무렵 떠날 때가 됐다며 스스로 곡기를 끊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 돈벌이를 안 한다는 조건으로 어느 날 멀쩡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더니 얼마 안 있어 아내와 아들을 서울에 두고 가평으로 내려가 청평 호수 끝자락의 산비탈에 집을 짓고 혼자 지냈다. 예전에는 그 집으로 가는 길 상당 부분이 포장이 안 되어 겨울이면 기름차가 못 들어갔기 때문에 그의 아내가 매주 일주일치 식량과 난방용 기름을 차로 실어 날랐다.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미끄러워도 그녀는 한결같았다.
누구든 이런저런 인연으로 그를 한 번 만났다 하면 첫눈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좋아하고 존경했지만 어찌 보면 착한 그의 아내가 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가 단식을 시작하자 두 사람이 끝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세상을 뜨자 한 부부가 그의 흔적을 간직한 기념관을 만든다고 그가 살던 산비탈의 집을 사서 말끔한 새 집을 짓고 있다. 그가 남긴 글이며 기록‧그림을 모아서 책과 화집을 내는 출판사를 차린 사람도 있다. 그를 알았던 사람들의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출간된 책과 화집을 보내 주고 전시회도 열었다. 나는 지인일 뿐 추종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대체 그 멀쩡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교주라도 모시듯 그를 좋아하고 따르는 건지 가끔 궁금하기도 했다.
 
사람들을 감동시킨 건 어쩌면 그의 한결같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늘상 한자리에 머물렀고 한결같이 말수가 적고 온화했으며 최소한의 것을 먹고 쓰며 살았다. 그렇게 살아서인지 그는 나이가 들면서도 훤칠하고 맑은 모습 그대로였다. 툭하면 시시때때로 유‧불리를 따져 언행이 뒤집히고 어긋나는 대다수 사람들 속에서 한결같음은 이제 찾아보기 힘든 미덕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 Ello 최일, 몽환의 나비, 20x30cm, 목판에 아크릴, 2015.
 
5월18일 대법원은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문재인정부 시절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으로 일하며 감찰무마 의혹을 폭로한 것이 그의 잘못, 공무상 비밀누설이라는 것이다. 막상 비위 혐의를 받는 조국 전 장관(당시 민정수석)에 대한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인데 비위를 폭로한 김태우 전 구청장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했다.
 
확정 판결과 동시에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구청장직을 잃게 된 김태우 씨는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자 책임감면 조치'를 신청했으나 기각당했다. 그러자 시민단체 ‘정의로운 사람들’은 확정 판결을 내린 박정화 대법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박정화 대법관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요구에 맞춰 재판을 서둘러 진행했다”는 것이 고발의 요지다.
 
우리가 법을 존중하는 것은 그것이 한결같이 공정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법이 한결같지 않고 다른 조건들에 의해 흔들린다면 그 믿음은 저절로 퇴색할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사법부는 문재인정부에서 임명한 좌익성향의 판사들이 큰 줄기를 이뤄 이끌어 가고 있다. 이들은 공정성보다는 단합된 편견을 기준으로 재판을 지연시키기도 하고 서둘러 진행시켜 ‘내 맘이야, 어쩔래’ 식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참으로 졸렬하고 우스꽝스러운, 그러나 웃지 못할 일이다.
 
“무릇 자기 바깥의 것을 중시하는 사람은 내면이 졸렬해진다(凡外重者內拙).”
 
이것은 장자가 외편 제19편 ‘달생(達生)’에서 물욕이나 외적 조건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선 밖으로부터 주입된 생각이 마음을 채워 졸렬한 판단과 적개심에 흔들리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박정화 대법관 또한 졸렬한 편견의 잣대로 판결을 내리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김태우 전 구청장이 물러난 자리를 놓고 강서구에서는 10월11일 새 구청장을 뽑는 보궐선거를 치른다.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인 강서구를 놓고 여야가 의미있는 싸움을 벌이게 될 판이다. 어떤 주의나 주장이 진영의 논리가 되어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흔들 때 내 마음이 졸렬해질 수 있음을, 그 졸렬함이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음을 강서구민과 함께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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